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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서울대의 방만함과 거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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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머니투데이

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최근 산사태, 논문표절, 무더기 비위적발 등 바람 잘 날이 없는 서울대에 무슨 일이 생겼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모양으로 서울대가 세계 일류 대학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지적은 더 뼈아프다. 시쳇말로 '방만한 자'(방향만 맞는 자)도 '거만한 자'(거리만 맞는 자)도 아니라는 비판이다. 정말 서울대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한 조직의 행동은 '귀결성 논리'(logic of consequence)와 '적절성 논리'(logic of appropriateness)로 설명할 수 있다. 귀결성은 '결과로 말한다'는 것이고, 적절성은 '절차적 정당성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검든 희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전자의 예라면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들이켠 것으로 (잘못) 알려진 소크라테스는 후자에 속한다.

대체로 격동의 시기에는 귀결성 논리가, 안정된 시기에는 적절성 논리가 많이 요구된다. 고약한 것은 두 논리 사이 갈등이 갈수록 커진다는 사실이다. 요즘 세상의 적절성 논리로 보면 덩샤오핑은 흑백 인종차별주의자요 동물권 침해자다. 플라톤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따르면 그의 스승이 의도한 바는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당당함이었다. 하지만 귀결성 논리로만 보면 소크라테스는 분명 생명존중 사상이 부족했다.

나라 안팎으로 때는 바야흐로 귀결성 논리가 중요한 격동의 시대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적절성 논리가 압도적이다. 결과보다는 '규정 준수'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요구가 넘쳐난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대정부 질문을 봐도 그렇고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두고 벌어진 여야의 설전도 그렇다. 누구도 '결과'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일하는 과정에서 생긴 작은 실수만 서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서울대에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도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다. 서울대만이 아니다. 다른 대학은 물론 공직사회에서도 "일하지 않으면 규정을 위반할 일도 없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규정과 절차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늘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면 좋으련만 적절성과 귀결성의 논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비례성의 원칙'이 사라지니 복지부동만 남았다. 얼마 전 태풍으로 물바다가 된 경북 포항에서 고립된 주민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해병 장갑차 부대장에게 '규정'을 어기고 부대를 이탈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다.

대학은 높은 덕성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함과 동시에 성과로 말해야 한다. 덕성이 '거리'라면 성과는 '방향'이다. 굳이 고르라면 '방향'이 더 중요하지만 거리와 방향 모두 맞아야 '세계 일류'다. 시시콜콜한 규제로 대학을 묶어놓고 그걸 어기면 모욕을 주면서도 세계 최고가 돼라는 교육부의 주문은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 모두 웃을 일이다. 서울대도 더 각성해야 한다. 고양이 목에 어떻게 방울을 달지를 놓고 전전긍긍하는 생쥐의 모습은 아닌지 말이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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