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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대중 칼럼] 윤 대통령, 총선 승리 전까지는 ‘임시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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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꼬리 잡기’ 내막은 尹 타도 위한 좌파 결집

부패 척결·정권 재창출은 총선에서 승리해야 가능

사방이 지뢰라는 생각으로 실책하지 말고 조심해야

조선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소회를 밝히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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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 입법부를 의회(議會)라고 부른다. 국회(國會)라고 부르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입법부를 국회라고 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지난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뉴욕에서 글로벌 펀드 공약회의가 끝난 뒤 퇴장하면서 곁에 있는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했다는 말은 미국 의회가 아니라 우리 국회를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기자로서의 상식이다.

‘XX들’이라는 비속어를 썼다는 것을 문제 삼는데 대통령으로서 그런 표현을 안 했으면 좋았겠지만 공석(公席)이 아닌 사석에서 자기들(참모들)끼리 그런 표현 쓴 것이 그렇게 공노(共怒)할 일인가? 우리 속담에도 ‘없는 데서는 임금님도 욕 먹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서전이나 영화를 봐도 외국 정치인들의 SOB(선 오브 비치)는 입버릇 같고 여과 없이 그냥 쓰인다. 일생을 범죄자 또는 혐의자들만을 다뤄온 ‘검사’ 출신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우리다.

MBC의 자의적인 ‘해석’이 맞다고 치자. 우리 대통령이 우리끼리 있는 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이나 의회 욕 좀 하면 안 되나? 대통령실의 해명이 맞다고 치자. 대통령이 자기들끼리 있을 때 야당의원 욕 좀 하면 안 되나? 야당이나 좌파세력은 대통령을 동네 강아지 부르듯 하지 않는가? 그것도 사적 발언이 마이크에 담기는 것을 모르고 한 말 아닌가? 굳이 ‘XX들’이라는 표현을 안 썼으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경천동지할 사안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번 ‘말꼬리 잡기’의 진정한 내막은 좌파 언론과 좌파 세력의 ‘윤석열 타도 총공세’의 합작품이라는 데 있다. 이것은 윤 정부가 협치를 포기하고 ‘이재명 잡기’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윤 정부가 ‘이재명’을 포기했더라면 민주당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윤 정권은 민주당의 협조 이전에 보수의 등 돌리기로 스스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과 좌파 세력은 이제 국회 다수 의석을 등에 업고 윤 대통령 찍어 내리기에 나섰다. ‘광우병 사태’ 등 과거 보수·우파 정권을 무너뜨린 노하우를 최대한 되살리고 있다. ‘뉴욕 발언’도 그 공세의 일환이다. 좌·우 진영의 대립은 이제 본격화하고 있다.

여기서 윤 정부가 밀리면 1년 반 뒤 총선은 물론이고 5년 뒤 보수의 정권 재창출도 이룰 수 없다. 지금의 국회 의석 구조로는 윤 정권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못 한다. 소수 대통령이고 불능(不能) 정부다.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고 어떤 정책적 접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흔히 윤 정부가 지금 지지부진한 원인을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걸고 있는데 그가 일할 수 있는 의석이나 환경이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간과하고 있다. 윤 정부가 지금 입법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거부권과 시행령 단 두 가지뿐이다. 그런 여건에서 윤 정부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은 지난 정권의 적폐와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정권이 살고 정권 재창출까지 이어지려면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하는 길뿐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때까지 윤 대통령의 할 일(?)은 실수하지 않는 것이다. 영빈관 신축이라든가 교육감 후보 단일화 같은 실책이 반복돼선 안 된다. 사방에 지뢰이고 시한폭탄이라는 생각으로 조심해서 가야 한다. 총선에서 과반을 가져올 때까지는 그렇다. 당내 정치로는 당대표를 잘 뽑아 공천을 잘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도 그가 할 일이다. 그는 스스로 ‘임시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병(病)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이 자기 발 아래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교만함에 빠지기 십상이다. 주변에서 대통령을 그렇게 만든다. 대통령 부인의 주변에서도 부추기는 부류들이 있다. 역대 대통령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또 그러고 싶은 충동에 빠져 왔다. 하지만 만기친람해서 성공한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 성공한 대통령은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상응해 국력을 집중한 사람이다.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대통령이란 자리에 집착하고 천착한 사람 치고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신출(新出)의 ‘어쩌다 대통령’이 보다 좋은 업적을 남겼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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