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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48] 가을에 부르는 편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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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최양숙의 ‘가을 편지’)처럼 가을은 편지 쓰기에 좋은 계절이다. 눈부시게 푸르른 날이나 선선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날에 소리 없이 찾아오는 가을 서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편지를 쓰는 이유야 여럿이나, 보통 하고 싶은 말이 넘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편지를 쓰곤 한다. “마음은 넘쳐도 입술은 인색”(김종국의 ‘편지’)할 때 말이다.

‘장모님 전상서’(이규남)와 ‘어머님 전상백’(이화자)처럼 장모님과 어머님께 편지를 쓰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동물원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가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서 쓰는 편지라면,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는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쓰는 편지다. 희망찬 아침에 쓰기도 하고(이정열의 ‘아침에 쓰는 편지’), 그리운 마음 담아 밤에 쓰기도 한다(아이유의 ‘밤편지’).

편지의 백미는 이성에게 쓰는 편지다. “외로이 스쳐 창을 흔드는 바람 소리 쓸쓸한 시간”에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고(임영웅의 ‘연애편지’) “밤이 아름다운데 잠이 오지 않을 때”도 편지를 쓴다(임백천의 ‘마음에 쓰는 편지’). 사랑하면 하고 싶은 말도 덩달아 많아져 매일 만나는 그대에게도 편지를 쓴다(박정현의 ‘편지할게요’). 멀리 있는 이에게 쓰는 편지(빛과 소금의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는 그 물리적 거리 때문에 더 애틋하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로 시작하는 김광진의 ‘편지’는 가슴 아픈 이별 편지다.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또 어떠한가. 이별을 고하며 마지막으로 상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고백하기에 애절하다. 짝사랑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기도 하고(성시경의 ‘눈물 편지’), 이별을 통보하는 편지를 받기도 하고(다비치의 ‘편지’), 편지로 뒤늦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김동률의 ‘편지’).

편지를 쓴다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순수한 마음으로 오롯이 상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기다림의 자세를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언제 올지, 혹은 아예 오지 않을지도 모를 답장을 기다리며 희망과 절망 사이, 기대와 낙담 사이에서 서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삭막한 세상에 편지를 보낼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니 이 가을 사랑하는 이에게,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기로 한다.

안도현의 시 ‘가을 엽서’에는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이란 구절이 나온다.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는 일은 그렇게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리라.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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