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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일사일언] 하늘보다 큰 가족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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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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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들이 수강하는 교양강의에서 해마다 물어본다. 길 가다가 5만원 지폐를 발견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어떡하겠는가. 대부분 자기가 가진다고 대답한다. 경찰에 신고한다는 학생은 드물다. 타인의 분실물을 자기가 가지면 형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면 다들 놀란다.

이어지는 질문은 좀 무겁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큰 범죄를 저지른 것을 알게 됐다. 어떡하겠는가. 경찰에 신고하면 몇 년 징역을 살 가능성이 높다. 약간의 시간을 준 뒤 신고할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한다. 약 10년 전까지는 손을 드는 학생이 40명 중에 열 명 정도였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다. 두 질문을 따로 물어봐도 결과는 비슷했다.

흔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인륜을 넘어 천륜이라고 한다. 유명한 예가 ‘논어’에 나온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동네에 정직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비가 양을 훔쳤으면, 아들은 아버지가 양을 훔쳤다고 증언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우리 동네 정직한 사람은 다릅니다. 아비는 자식을 위해 숨겨주고, 자식은 아비를 위해 숨겨줍니다. 정직함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 ‘맹자’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순임금의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면 순은 어떻게 했을지 묻자 맹자가 말했다. “순임금은 천자 자리를 마치 헌신짝 버리듯 하고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가 바닷가 외진 곳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현행법에서 죄를 범한 자를 숨겨주면 처벌받는다. 하지만 가족은 예외다. 자식이 부모의 죄를 숨겨주어도 부모가 자식의 죄를 숨겨주어도 처벌받지 않는다. 한국이 유교국가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도 유사하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교실이 갑자기 숙연해진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드물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곳이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 가서 쉴 수 있을까. 문명대전환의 시대라고 해서 이제는 기계와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끝없는 경쟁 사회로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이 안쓰럽다.

[이영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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