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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5 (토)

[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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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두 권 갖고 있는 사연은 무엇일까. 깜빡하고 다시 샀다거나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경우를 제외하면 이유를 짐작하기 쉽지 않은데, 면지(책 표지 안쪽에 있는 종이, 보통 본문 종이와는 다른 두꺼운 색지를 사용한다) 때문에 같은 책을 나란히 서가에 꽂아두었다면 수긍이 갈지 모르겠다. 사연인즉 앞표지를 젖히면 두 장, 본문 마지막 장을 넘기고 뒤표지에 가기 전에 두 장씩 들어가던 면지가 2010년 전후로 점차 한 장씩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여, 두 장씩 들어갈 때와 한 장씩 들어갔을 때의 차이를 살펴보려 굳이 같은 책을 마련해두었다면, 그럴 만하다 싶을지 모르겠다.

경향신문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조금 더 설명해보자면, 책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늘어나는 터라 아쉬운 마음에, 정말 사라져도 무방한지 궁금한 마음에, 나름대로 비교 자료의 확보와 사례의 보존을 위해 굳이 책값을 한 번 더 치른 것인데, 책에서 사라지는 것들, 다른 말로는 만나보기 어려운 것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서가를 다시 둘러본다.

앞뒤 두 장씩의 면지에 이어 사라져가는 책의 요소로 앞날개와 뒷날개를 꼽을 수 있겠다. 최근 책의 분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만듦새도 간소화되는 경향이 짙어지다 보니, 앞날개와 뒷날개를 없애 가벼운 느낌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를 문고본의 인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10여년 전 문고본 유행 때에는 책의 날개가 당연한 요소로 여겨진 터라, 문고본의 특성보다는 책의 분량과 장정에서 모두 무게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로 봐야지 싶다.

요즘 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 구성 요소로는 찾아보기(색인)가 있겠다.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등 지식을 다룬 책은 대체로 찾아보기를 두어 독자가 필요한 정보에 쉽게 접근하도록, 더불어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 세계의 범위와 집중하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근래에는 이론서나 학술서로 분류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분야의 도서에서도 찾아보기를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왕왕 참고문헌 목록을 웹에 별도로 게시하고 책에는 아예 싣지 않는 경우도 보게 되는데, 정보접근성과 편의성, 책의 완결성 등 여러 맥락에서 어느 쪽이 나은 방향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근래에는 더욱 적극적인 사라짐도 마주하게 되었다. 책을 펼치면 1쪽에는 책의 제목만 담은 약표제지가, 3쪽에는 제목과 저자, 출판사 로고를 담은 표제지가 차례로 나오는데, 이 가운데 1쪽 약표제지를 생략하고 바로 3쪽 표제지를 담은 사례다. 어차피 3쪽에 제목이 다시 나오고 본문을 펼치기 전 책의 앞표지와 책등에도 제목이 나오는데 굳이 제목만 담는 1쪽을 넣어 종이를 낭비하며 분량만 두껍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마땅한 대답은 없으나, 늘 있던 것이 사라질 때에 그 상황을 어찌하지는 못하여도 사연이라도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닐까 싶어 아쉬운 마음이다.

각각의 사라짐이 연결된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으나, 왠지 점차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질 것 같다는 예감은 피할 수 없겠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애초 그것들이 있었는지조차 이야기되지 않고, 사라진 상황이 원래 그러했던 것으로 여겨지기도 할 터, 무언가 줄이거나 사라질 때 나름의 생각과 이유를 나누어 그 이야기만이라도 책과 출판의 세계에 남기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한 살, 두 살 등에 붙이는 수관형사를 앞과 붙여 한살, 두살로 표기하며 띄어쓰기도 사라지거나 줄어들고 있으니, 여기에서부터 시작해볼까 싶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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