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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유엔사의 전례 없는 ‘대북 확성기 방송’ 조사…“방송 재개 경고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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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정당한 자위권 행사” 입장

대북 확성기 방송 조사 전례는 없어

“미국, 한반도 충돌 원하지 않아”

경향신문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9일 대북 방송을 즉각 시행하는 상황에 대비해 전방 지역에서 실제 훈련을 최근 실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과거 기동형 확성기 차량 및 장비의 운용을 점검하는 훈련 모습. 합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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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은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는 입장을 14일 밝혔다. 유엔군사령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 조사에 들어가자 협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이다. 유엔사가 과거 대북 확성기 방송을 두고 조사를 진행한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미국이 유엔사의 조사를 통해 한국에 확성기 방송을 자제하라는 의사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유엔사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조사하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 “대북 확성기는 자위권 차원에서 판단하고 시행하는 정책적 사안”이라고 말했다. 유엔사는 전날 최근 남북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사안들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에는 지난 9일 북한군의 군사분계선(MDL) 침범과 남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도 포함됐다. 다만 이 관계자는 “유엔사로부터 (조사 여부를) 통보받은 건 없다”라며 “유엔사가 조사를 하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유엔사가 국방부에 조사 개시를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은 만큼,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수준의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남북 충돌 우려하는 미국 의사 반영된 듯


대북 확성기 방송은 과거에도 송출됐다. 그러나 유엔사가 조사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1963년 5월 최초로 시작돼 1972년 11월 중단됐다. 이후 1980~2004년까지 실시됐고, 2015년 8월에는 보름 동안 송출됐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재가동됐다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멈췄다.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맞대응했다. 정전협정에는 DMZ 안이나 DMZ를 향해 적대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유엔사가 이전 확성기 방송은 놔두었다가 이제 와서 조사를 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엔사가 이번 조사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확성기 방송 재개에 간접적으로 우려를 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특히 한반도 내 충돌 발생을 우려하는 미국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폴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미 육군 대장)은 한·미연합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 주한미군 선임장교 등 4개 직책을 겸임하고 있다. 유엔사도 미군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선임장교는 때에 따라 미국의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을 대리하는 역할을 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엔사의 조사는 남북 양측에 자제를 촉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특히 한국이 대북 확성기 방송 같은 일종의 자극적인 행위들을 하지 않도록 견제하거나 경고하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 위원은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대중국 포위에도 군사력을 집중을 하고 있다”라며 “여기에 남북 간 국지전 등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미국 입장에서 안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동맹국의 주권과 합법적 행동 존중”


유엔사와 한·미연합사, 주한미군사 등 3개 사령부는 14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어떤 우려나 작전 결정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긴밀한 협력과 의사소통은 여전히 중요하다”라며 “동맹국의 주권과 합법적 행동을 존중한다”라고 밝혔다. 국방부가 전날 다소 높은 수위의 입장을 밝히자 내자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경향신문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이 2023년 7월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 앞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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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한 언론은 폴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이 지난 12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의 회의에서 한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제동을 걸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에 국방부는 입장을 내고 “러캐머라 사령관이 연합방위태세 발전과 관련한 사안을 장관에게 보고하고 관련 토의 및 장관의 지침을 받은 건 사실”이라며 “확성기 관련 사항은 러캐머라 사령관이 보고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러캐머라 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이 아닌 한·미연합사령관 자격으로 왔다는 것이다. 당시 동행한 유엔사 참모도 없었다고 한다.

국방부는 또 “동맹국의 상급자인 국방부 장관의 정당한 조치에 연합사령관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되는 사항”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국방부가 유엔사의 조사에 불만을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유엔사 등 3개 사령부는 이날 입장문에서 해당 언론보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사령부는 “지난 12일 회의는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령관 및 주한미군 선임장교로서의 한국의 연합방위태세에 대한 그의 역할과 책임을 논하기 위해 미래 예정돼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방부의 말처럼 회의에서 연합방위태세 관련 논의가 오간 것은 인정하면서도, 4개 직책을 가진 폴 러캐머라 사령관이 어떤 자리에서든 그 직책에 걸맞은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유엔사는 또 “우리의 강력한 동반자 관계가 상호 존중, 공유된 가치, 지역 안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바탕으로 계속 번창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라며 “우리의 약속은 여전히 굳건하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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