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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갓달러 시대’의 명암… 수입기업·유학생은 ‘비명’ 달러로 월급받는 주재원은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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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식품을 수입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A씨는 올해 연말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연초부터 오르던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자 달러로 결제를 하는 회사가 직격탄을 입었기 때문이다. 국내산과 비교할 때 가격경쟁력이 아예 사라지는 수준이라 손해가 커지기 전에 회사를 접을 수밖에 없다. A씨는 “버티다 부도나기 전에 얼른 사업을 접고 쉬려한다”면서 “직원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재난급 상황이라 도저히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2년째 유학중인 B(22)씨는 최근 한인타운에서 식당 서빙 일자리를 구했다. 환율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부모님이 보내주는 생활비로는 생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B씨는 “환율이 1400원을 넘어가니 생활이 어려워졌다. 일을 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기는 ‘갓달러(God Dollar)’ 현상에 수입기업과 유학생 등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환율로 치솟은 원자재 값을 감당하지 못해 기업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으며, 유학생들은 구직을 하거나 아예 학업을 쉬고 한국으로 ‘유턴’하고 있다. ‘환전’ 타이밍을 놓고 눈치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해외에서 근무하는 주재원들은 월급을 달러로 받느냐 원화로 받느냐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조선비즈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서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를 넘어서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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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421.5원) 보다 18.4원 오른 1439.9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 26일 기록한 장중 연고점(1435.4원)을 2거래일 만에 다시 넘어선 것으로, 장중 고가 기준으로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고환율까지 덮치면서 생존의 갈림길에 선 기업들이 늘고 있다. 동남아에서 펄프를 수입해 화장지를 만들어 유럽·미국에 수출하는 중소기업 대표 C씨는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데다 달러 외 통화의 가치가 떨어진 영향이다.

해외납품 단가를 맞추지 못해 폐업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타이어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D씨는 최근 해외거래처가 요구하는 납품단가를 맞추지 못해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원자재를 수입해 중간재를 만들어 납품하는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은 대부분 영세기업이라 생산비용이 올라도 해외 거래처나 대기업을 상대로 납품 단가를 올리기가 어렵다.

역대급 고환율 상황에 희비가 엇갈리는 사람들도 있다. 해외에 있는 국내 기업 주재원들은 월급이나 수당을 원화로 받느냐 달러로 받느냐에 따라 처지가 나뉜다. 달러 등 현지 통화로 받는 사람들은 한국으로 송금할 때 소득이 늘어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원화로 지급받는 경우에는 실질소득이 줄어들어 울상이다.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주재원 김모(40)씨의 회사는 전년도 평균 환율을 기준으로 월급과 수당을 달러로 지급한다. 지난해 원·달러 평균 환율은 1144.6원으로 현재 환율보다 300원가량 낮다. 김씨는 “요즘 같은 고환율 시대에는 달러로 월급을 받는 것이 든든하다”면서 “소득이 훨씬 늘어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이모씨는 현지 체류 수당은 달러로 지급받지만 기본급은 원화로 지급받고 있다. 한국으로 가족들을 위한 생활비를 송금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지출을 줄이고 있다.

환율 영향으로 국내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영양제나 식품 등을 대상으로 한 해외직구가 주춤한 것이다. 미국 사이트인 ‘아이허브’에서 가족 영양제를 직구하던 박모(29)씨는 최근 상품 가격 상승에 깜짝 놀랐다. 평소 두 달치 구매에 10만원가량이 들었는데, 불과 두 달 만에 가격이 40%나 뛰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온라인쇼핑 해외직접 구매액은 10억3000만달러로 직전 분기(11억4000만달러)보다 9.2% 감소했다.

환율이 치솟자 ‘환전’ 눈치 싸움도 이어지고 있다. 연말까지 달러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미리 환전에 나서고, 현재가 최고점이라고 판단한 이들은 환전을 미루고 기다리는 식이다. 올 연말에 미국으로 연수를 준비중인 직장인 이모(38)씨는 최근 은행에서 2000만원을 미리 환전했다. 추가적인 원·달러 환율 인상에 대비한 조치다.

반면 선모(43)씨는 자녀 유학자금을 환전하지 않고 최대한 버틸 예정이다. 원·달러 환율이 곧 최고점을 찍고 내려갈 것이란 생각에서다. 선씨는 “내년에는 다시 1300원선으로 돌아올텐데 미리 환전을 해두면 후회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효정 기자(saudad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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