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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수림문학상] 이정연 "영원한 삶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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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은 장편 '속도의 안내자'…"3년간 쓴 작품 생명 얻어 기뻐"

연합뉴스

제10회 수림문학상 수상자 이정연 작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제10회 수림문학상 수상자 이정연 작가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 취하고 있다. 2022.9.29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사람들은 건강하고 영원한 삶을 꿈꾸죠. 하지만 영원한 삶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할까요. 또 그런 욕망을 위해 우리 사회 약자는 짓밟혀도 되는 걸까요."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10회 수림문학상 수상 작가 이정연(44)은 당선작 '속도의 안내자'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작가는 29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통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거시적인 주제를 품은 듯하지만 '속도의 안내자'는 추리물의 외양을 띠며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경마장 도핑 검사소 아르바이트 직원 채윤이 의문의 '약'을 비밀리에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노화 방지 약을 개발하고자 개인의 욕망을 미끼로 불법 임상 시험을 하는 기업, 젊음과 생명을 향한 인간의 욕망, 주인공 부모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 얽히며 과잉된 탐욕이 폭로되는 지점으로 치닫는다.

작품의 모티프가 된 것은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염색체 보호 이론이다. 당시 세포의 노화 메커니즘을 규명해 노화와 암 등 질병 치료법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편이 신기하다면서 관련 기사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과학소설(SF)은 시도해보지 않아 처음엔 관심이 없었는데, 유튜브 등을 찾아보니 흥미로웠죠. 또 4년 전 어머니가 암 투병 4개월 만에 돌아가셔서 생명 연장과 중병 치료가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있었고요."

작가는 작품 속 임상시험 대상자들이 '지원'이나 '보호'란 말이 어울리는 취약 계층이 주를 이룬다는 점도 예리한 시선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인류를 위한다는 담론 아래 권력이 개인의 삶을 일그러뜨릴 수 있을까"라며 "실험대상자나 배달자로 이용당하는 이들은 사회 부속품이자 거대 자본에 휘둘리는 현대인의 삶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엔 부작용 위험에도 늙지 않는 삶이 축복이라며 약을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더 길어질 인생이 두려워 강하게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의 삶이 고단한 사람에게도 영원한 삶이 공평한 가치인지 묻는 지점이다.

연합뉴스

제10회 수림문학상에 이정연 작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제10회 수림문학상 수상자 이정연 작가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 취하고 있다. 2022.9.29 mjkang@yna.co.kr


이 작가는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준이나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점에선 빈부의 이야기이기도, 개인적인 행복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전북 고창 출신인 이 작가는 동국대 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하고 2017년 문예중앙에서 단편소설 '2045 택시'로 등단해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2020년에는 경력단절 여성과 워킹맘을 다룬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을 펴냈다.

이번 소설 주인공으로 경마장 도핑 검사소 아르바이트 직원을 등장시킨 건 한국마사회에서 2001년부터 12년간 일한 경험 덕이다. 수림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설정된 1장의 경마장 묘사를 높이 평가했다.

이 작가는 "한국마사회에선 전산직을 거쳐 광고 홍보 분야 일을 했다"며 "말들이 경주 전후에 하는 도핑검사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이번 소설을 쓰면서 담당 업무를 하는 분들을 취재했다. 경주마는 승용마와 달리 국제 규율로 유전자 조작을 할 수 없어 유전자 조작 약을 배달하는 소설과도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지난 3년간 이 작품을 쓰며 불편하고 조급한 마음에 심적인 고통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첫 장편이 나온 지 2년이 돼 제대로 가는 길이 맞는지 마음이 조급하고 불편했다"며 "수림문학상을 통해 계속 나아가면 된다는 에너지를 얻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설은 그 자체가 가진 생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식 같은 작품이 수림문학상을 통해 생명을 얻은 것 같아요. '헛된 시간은 아니었구나, 살 수 있는 생명을 낳았구나'란 생각에 기쁩니다."

그는 "앞으로도 삶과 밀착해야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어디에 생각이 머물면 그걸 기반으로 창작을 확장할 것이다. 평생 재미있게 쓰고 싶다"고 했다. 다음 작품으로는 여성 심리 스릴러를 구상하고 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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