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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새 교육과정 총론에서 ‘통편집’된 노동교육, 개별 교과목에서도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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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3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이 50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 28일 오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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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부터 일선 학교에 차례대로 적용될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가 삭제된 데 이어 각 교과목의 단원별 성취기준에도 노동 관련 내용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초중고 학교급 간의 연계를 통해 일과 노동의 의미와 가치가 반영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논의했다”고 해명했지만, 실제 학생들이 배워야 할 목표를 다룬 성취기준을 따르더라도 ‘노동교육’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현장 교사들이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초·중·고 교과목별 시안 전체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초등학교 교과별 교육과정 시안 성취기준 가운데 ‘노동’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한 것은 사회과 성취기준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탐색하도록 한 것, 영어 학습의 소재를 ‘일·노동·직업윤리 등 근로에 관한 내용’을 사용하도록 한 것 등 2건이 유일했다. ‘노동자’라는 용어는 사회과 교육과정 시안 성취기준 해설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들의 유입’을 언급한 데서만 사용됐다.

‘일과 노동’ 또는 ‘진로’와 연계할 수 있는 성취기준은 전 교과목에서 12개뿐이었다. 그나마 8개는 ‘다양한 진로가 과학과 관련됨을 안다’ ‘자신의 진로를 탐색한다’ 등 노동의 의미와 가치가 아닌 직업·진로교육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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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별 교육과정 시안 전체에서 ‘일’·‘노동’·‘근로’라는 단어가 포함된 성취기준은 모두 11건에 불과했다. 일·노동·근로는 중학교 교육과정에는 도덕·일반사회·진로와 직업에 모두 3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는 현대사회와 윤리·통합사회2·법과사회·진로와 직업에 8건 언급됐다.

고등학교 교과목 중 노동권의 역사 등을 다룰 수 있는 한국사나 세계사, 일과 연관이 있는 기술가정 등에서도 노동 관련 내용이 빠져 있었다. 고등학교 진로와 직업 교과는 노동자의 권리보다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더 주요하게 언급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노동과 임금에 대해 다뤘던 경제 교과도 새 교육과정 시안에서는 노동을 언급하지 않았다.

시안을 분석한 현장 교사들은 “교육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노동이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장윤호 안양공고 교사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총론 노동 명시와 제대로 된 노동교육 실현을 위한 긴급 좌담회’에서 “충분히 노동에 대해 언급할 만한 교과목의 성취기준이나 해설 등에도 노동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소희 경기 동삭초 교사는 “국가가 노동교육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면 학생들은 미디어에서 바라보는 노동에 대한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며 “학생들이 은연중에 받아들인 ‘일과 노동의 가치’가 세계시민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게 형성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직업계고 교육과정에는 전문공통과목에 ‘성공적인 직업생활’, ‘노동인권과 산업안전보건’이 포함됐다.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신설된 노동인권과 산업안전보건 교과는 노동계약과 노동조합, 현장실습, 산업안전보건법 등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일선 학교들이 전문공통과목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수업을 개설하는 경우가 많고, 수능 직업탐구영역의 공통과목인 성공적인 직업생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노동인권과 산업안전보건 과목 선택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직업계고 교사들은 지적한다.

정보형 전남공고 교사는 “직업계고에 입학하는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재학 중에도 일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손님이나 사장으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을 당하고도 꾹 참고 일하는 때도 많다”며 “이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노동인권과 산업안전보건 교과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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