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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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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헛발질 英총리, 집권 3주만에 조기퇴진 전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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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리겠다고 내놓은 ‘감세’

시장선 “국가재정 나빠져” 혹평

CNN “트러스, 현재 최악 상황”

집권당인 보수당 지지율도 하락세

노동당과의 격차 최근 20년래 최고

조선일보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유엔 총회 기간인 지난 2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기자회견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트러스 총리는 취임 직후 ‘제2의 대처’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지만, “경제 성장 동력을 회생시키겠다”며 내놓은 대규모 감세안이 시장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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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집권 한 달도 안 돼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는 진단이 쏟아지고 있다. 트러스 내각이 “영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회생시키겠다”며 야심 차게 내놓은 감세 정책이 시장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외환과 채권 시장을 혼돈으로 몰아넣었고, 민심마저 식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CNN은 “트러스 총리의 시작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28일(현지 시각)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10월 14일까지 장기 국채를 필요한 만큼 사들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지난 23일 영국 정부의 대규모 감세 정책 발표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한때 역대 최저치로 급락하고, 국채 금리가 2거래일 만에 1%포인트 넘게 급등한 데 따른 조치다. BoE는 다음 주로 예정됐던 통화량 긴축 조치도 연기했다. BoE의 ‘깜짝 발표’로 이날 연 5%를 넘어서며 20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던 30년 만기 영국 국채 금리는 1%포인트 이상 하락, 3.9%로 내려왔다. 1.0327달러까지 떨어졌던 파운드화 가치는 이날 1.0887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외신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 주요 매체들은 “언제든 상황이 다시 악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러스 정부가 “경제 정책에 ’유턴’은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경제 성장을 위해 긴급하게 행동을 취해야 했다”며 “기존 정책을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앤드루 그리피스 재무부 부장관도 “감세 정책은 옳으며, 경제 경쟁력을 키운다”고 옹호했다.

세계경제 환경도 영국에 불리하다는 평가다. 세계 각국 금융시장에서는 자본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 악화로 주식과 채권 수익률 하락이 우려되는 가운데, 지역 화폐 가치 하락으로 인한 환손실을 우려해 투자금을 달러로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이는 주로 경제 규모가 작고 자본 규제가 덜한 한국과 동남아, 남미 국가에 직격탄이 된다. 영국 파운드는 주요 통화(기축통화)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최근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극단적 ‘달러 선호’ 현상으로 엔화와 파운드화 등도 추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재정 상태마저 악화할 것으로 보이자 영국 경제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졌다.

특히 금리 인상기에 긴축 없는 감세 정책은 적자 재정을 심화할 뿐만 아니라, 국채 상환 부담을 늘려 정부 재정을 이중으로 악화시킨다. 이는 국가 신인도를 낮추고, 자본 이탈을 부추긴다. “영국이 IMF 구제금융까지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롤모델로 삼은 트러스 총리의 미래가 빠르게 어두워지면서 영국 정계의 판세도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노동당이 극단적 좌향(좌파 정책)만 안 하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전망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집권 보수당을 17%포인트 앞서 20년래 최대 격차를 냈다”며 “집권 3주 만에 영국 총리가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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