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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동네 아저씨도 쉽게 커피 볶는다…문과생의 로스팅 머신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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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창업의 길] 32. 스트롱홀드 우종욱 대표



중앙일보

우종욱 스트롱홀드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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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쌓아올린 탑은 쉬 무너진다. 2014년 만난 두 청년 스타트업이 있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 벤처 1호로 소문난 아이카이스트, 또 하나는 스마트 커피 로스팅 머신을 개발하는 스트롱홀드. 아이카이스트는 당시 정부의 추천을 날개 삼아 훨훨 날았다. 전자칠판에서 시작해 짧은 시간 안에 사업을 급속하게 확장했다. 창업자는 30대 청년에 마당발이었다. 정ㆍ관계 두루, 네트워크가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리더니,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KAIST 출신의 전도유망했던 청년사업가가 사기꾼으로 내려앉았다.

스트롱홀드는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대표를 맡은 우종욱은 회사 이름 스트롱홀드(stronghold)처럼 단단하고 조심스러웠다. 언론이 제 발로 찾아오기 전에 먼저 두드리지 않았다. 2014년 10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월드 IT쇼’에서 스트롱홀드를 만났다. 3D 프린터 등 첨단 기기들이 가득한 전시장의 한구석에 커피 향이 가득했다. 커피 생두를 볶아내는 로스팅 머신이었다. ‘IT쇼에 웬 커피?’라는 생각에 다가가 보니 미끈한 원통형 머신 본체에 10.1인치 LCD 모니터가 달려있고, 컴퓨터와 전기를 이용해 로스팅을 하고 있었다. 로스팅은 원래 가스불을 정밀하게 조절해가며 생두를 볶는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간이나 불 조절을 잘못하면 생두가 타버린다.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힘든 노동이기도 하다. 스트롱홀드는 이 모든 과정을 컴퓨터화했다. 전세계 커피 산지별로 최적화한 80개 이상의 로스팅 조리법(프로파일)을 입력한 태블릿을 탑재하고, 가스가 아닌 전기로 열을 발생시켜 정밀하고 일정하게 콩을 볶을 수 있게 했다. 로스팅 전문가가 아닌 카페 사장님도 커피 로스팅 프로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스트롱홀드는 로스팅기계로 2011년 독일 국제아이디어발명 신제품전시회(iENA)와 2012년 미국 피츠버그 국제발명전시회(INPEX)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두 전시회는 스위스제네바 국제발명품 전시회와 함께 세계 3대 발명전시회로 손꼽힌다.

당시 30대 초반의 창업자 우종욱(41)은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이었다. 그는 “급성장하는 커피시장에서 블루오션을 찾으려 했다”며 “스마트 로스팅이란 신시장을 열어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말했다. 가마솥이 압력밥솥이 되고,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로 진화한 것처럼, 한 잔의 커피가 오르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로스팅을 디지털화했다. 대학 전공은 기계나 전기ㆍ전자와 무관했지만, 사업 아이템의 개념을 잡은 뒤 평소 발명과 개발에 소질이 뛰어났던 친구와 비슷한 또래의 프로그래머, 커피 로스터 개발자, 전기배선 전문가, 판금 용접 전문가 등을 모아 원하는 기계를 만들어냈다. 모교인 고려대 기술지주회사의 지원과 교내 연구개발(R&D)의 도움도 받았다.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연상됐다고 하면 지나칠까. 스트롱홀드는 서울 고척동의 조그만 아파트 상가를 본사로 삼고, 그 앞 천막으로 덮인 쓰러질 것 같은 건물을 공장으로 쓰고 있었다. 섭씨 600도까지 온도가 오르는 커피 로스팅 머신을 만드는 곳이라 화재가 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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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스트롱홀드 모습.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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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경쟁 속에서도 중국법인 운영



8년이 지나 다시 스트롱홀드를 찾았다. 회사는 1호선 독산역 앞 번듯한 건물에 있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6㎞ 떨어진 독산동으로 이사한 지 7년째. 휴대전화 플라스틱 케이스를 생산해 LG전자에 납품하던 회사 건물을 빌려쓰고 있다고 했다. 제품 생산 공간으로 쓰는 지하 1층엔 과거 회사의 이력을 말해주는 듯, 붉은색 천정 크레인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창업주의 아들이라는 건물주는 사업을 접고, 부동산업자로 변신했단다. 층고가 높은 2층 붉은 벽돌 건물은 회사 이름처럼 요새를 닮았다. 건물 정면에 난 유리창의 3분의2를 철판의 덧대고 조그만 공간만을 남겨 마치 포를 쏘는 총안(銃眼)을 연상케 했다.

이제 창업 13차. 2014년 첫 취재 당시 10억원 가량이던 스트롱홀드의 매출은 지난해 1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올해는 140억원 가량의 매출이 예상된다. 전체 매출의 절반은 해외에서, 해외 매출의 절반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투자도 이어졌다. 2011년 고려대 기술지주회사로부터 투자를 시작으로, 소프트뱅크벤처스ㆍ프리미어파트너스ㆍ한국투자파트너스ㆍSBI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총 14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첫 취재 당시 우 대표는 “13억 인구의 중국 커피시장이 매년 15%씩 급성장하고 있다”며 “스마트 로스팅 기계뿐 아니라 커피 농장에서부터 원두에 대한 정보와 로스팅 비법 등 커피와 관련한 모든 것의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던 만큼은 아니지만, 회사를 다져가며 성장하고 있었다.

미ㆍ중 기술패권 경쟁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스트롱홀드에게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큰 시장이다. 우 대표는 “2014년만 하더라도 중국 커피시장은 한국보다 작았지만, 지금은 한국의 3배에,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중국은 직접 원두를 볶아내서 마시는 고급 커피시장은 아직도 작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13년 스트롱홀드 차이나를 설립, 현재 현지인 15명으로 중국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우 대표는 “사드나 코로나로 중국 매출이 일시적으로 급감한 적은 있지만 연 단위로 볼 때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다시 중국 시장이 살아나는 분위기여서 투자를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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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홀드 스마트 로스팅 머신의 알림창. 각종 제작정보가 실시간으로 나온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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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장 개척과 인사 문제가 고통"



스트롱홀드는 그간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했다. 성장세를 물어보니 2017~2019년까지는 연매출이 50억원에서 정체 상태였다고 한다. 그가 꼽은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시장이 스마트 로스팅 머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다. 로스팅을 장인의 ‘예술’영역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커피 시장의 분위기가 컴퓨터와 전기열을 이용해 원두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개념을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였다는 거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가는 시기에도 비슷한 고통이 있었다고 우 대표는 그간의 어려움을 비유했다. 더구나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시장을 여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이 투입됐다고 말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사람이었다. 우 대표는 “2016년에 직원이 25명이었는데 1년 만에 80명 넘게 조직을 키웠더니 조직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초창기 멤버와 경험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대거 들어오다 보니 일하는 방식이 너무도 달라 서로 불신하고 의견이 충돌했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는 조직이 망가지고, 매출이 정체됐다. 투자를 받아 새로운 일을 벌이는데,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자금은 뚝뚝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더구나 당시 우 대표는 국내 시장에 대한 권한을 임원들에게 위임하고, 중국 등 해외시장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회사는 망가져 가고 있었다. 되는 일이 없고, 회사 내엔 패배주의가 팽배했다. 그는 “2019년부터 제가 회사를 직접 들여다보면서 그간의 문제가 정리되고 분위기도 돌아왔다”며“그 2년차가 작년이었고, 의미있는 성장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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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리 솔루션으로 세계 원두 10%를 생산할 것"



스트롱홀드는 처음의 포부처럼 ‘스마트 로스팅이란 신시장을 열어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란 비전을 향해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우 대표는“원두시장을 바꿔보고자 하는 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원두를 직접 볶는 것을 얼마나 편하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원두를 구매하는 것보다 더 편하면 직접 로스팅 안할 이유가 없다는 게 우 대표의 논리다. 인터넷으로 생두를 구매하고, 스마트 로스팅으로 어떻게 원두를 볶아내는지 전 과정을 하나의 솔루션으로 묶어내겠다는 목표다. 그는 “스트롱홀드의 솔루션으로 전세계 원두의 10%를 생산(연간 5조원)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젊은 대학생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대학의 구성원들과 같이 구체화해 사업화 아이템으로 발전시켰고, 이를 대학이 지원한 형태의 대표적인 초기 벤처 학생 창업 사례”라며“이런 혁신 모델이 계속 더 나오려면 대학의 기술지주회사가 스타트업과 투자자본을 연결하는 컨설팅 역할을 더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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