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20년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성여(55)씨가 지난 1월 충북 청주에서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아픈 심정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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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가 저지른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5)씨에 대해 법원이 “국가는 18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김경수 부장판사)는 16일 윤씨와 형제자매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선고 공판에서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이 윤씨를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구금해 가혹 행위를 하는 등 위법한 수사를 했다고 판단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과정에도 위법성이 인정돼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다만 검찰 수사의 위법성 부분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윤씨가 옥살이한 20년 동안 일하며 얻을 수 있었던 소득을 약 1억 3000여만원으로 책정했다. 또 윤씨가 입은 고통의 내용, 유사 사건의 재발 억제 필요성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40억원으로 판단했다. 다만 여기서 윤씨가 앞서 받은 형사보상금 25억여원 등을 공제해 고유 위자료를 약 18억 2000만원으로 봤다. 형사보상은 위자료 손해배상과는 별개로 형사재판에서 억울하게 구금 등 형의 집행으로 입은 피해와 재판으로 지출한 비용을 국가가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다. 무죄 확정판결로부터 5년 이내 청구할 수 있다.
재판부는 또 국가가 윤씨의 형제자매들에게도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 몫의 위자료도 2억원으로 책정해, 이를 윤씨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1/4씩 상속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윤씨가 누명을 쓴 사건은 지난 1988년 9월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의 한 가정집에서 일어난 13세 여아 성폭행 살해 사건이다. 당시 불편한 다리로 인근 농기계수리점에서 일하던 윤씨는 이듬해 7월 검거됐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씨는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한 것"이라며 항소와 상고에 나섰지만, 형은 바뀌지 않았다.
21세의 나이에 검거돼 20년간 복역한 윤씨는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지난 2019년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한 뒤에야, 윤씨는 2020년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춘재가 같은 해 11월 윤씨 재심 재판에 나와 “내가 진범”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윤씨는 같은 해 12월 재심 무죄를 확정받은 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배상 책임을 부인했다. 윤씨의 장애를 근거로 손해배상액을 축소하려는 취지의 주장 역시 이어갔다. "소아마비로 인해 노동능력이 상실됐다"며 이를 일실수입 계산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윤씨 측은 "윤씨의 살아온 세월과 현실에 비춰봐도 매우 부당하다"고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재판부 역시 정부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대리한 이주희 변호사(법무법인 다산)는 "재판부가 재판 과정에서 정부의 노동력 상실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보통인부 소득 상당의 일실수입으로 정리해주신 것이 재판 장기화를 막았던 아주 중요한 대목이었다"고 짚었다.
이날 승소 판결을 받아든 윤씨는 담담하게 법원을 나섰다. "긴 세월을 있다 보니 이런 날이 올 줄 생각도 못 했다"는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짧은 소회를 밝혔다. "오랜 생활 격리돼있다가 나오니 세상이 바뀌어 적응하는 것이 아직 힘들다"며 "지금 직장을 다니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때와 비교해 어떤 기분이 드느냐는 질문에 그는 "똑같다", "만족한다"는 답을 짧게 내놨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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