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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슈 물가와 GDP

GDP 대비 기업빚 환란후 최고치 … 베트남 이어 증가속도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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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부채 경고등

매일경제

한국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기업부채비율'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적극적인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성장과 고물가 상황 속에 기업 부채의 질이 악화되면 금융시장 전반으로 위험이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출 규모나 파괴력에서 가계부채를 압도하는 기업부채는 문제가 발생하면 경제 전체에 미칠 충격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25일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비율(금융기업 제외)은 2019년 2분기 약 6년 만에 100%를 넘긴 뒤 분기마다 상승 중이다. 작년 4분기엔 113.7%를 기록하며 이전 최고 수준이었던 1999년 1분기를 뛰어넘었다. 이후 3개 분기 연속으로 최고점을 돌파했다.

지난 3분기엔 119.1%를 기록하며 일본(118.9%)을 뛰어넘어 주요 국가 가운데 네 번째로 높았다. 한국은 해당 조사에서 2020년 3분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보다 낮은 비율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유동성 확보를 위한 기업대출이 늘었고, 2년 만에 순위가 다시 역전된 것이다. 실제로 2분기 대비 3분기 기업부채비율 증가폭을 보면 한국은 1.2%포인트로 베트남(2.0%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다.

상위 10개국 가운데 중국(0.6%포인트), 일본(0.4%포인트), 한국을 포함한 4개국을 빼면 다른 나라들의 기업부채비율이 낮아진 것과도 대비된다.

국내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현황에서도 이 같은 경향은 뚜렷하게 발견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3분기 말 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기업대출은 709조5000억원으로 집계돼 처음으로 700조원을 넘었다. 1년간 증가액은 65조1000억원으로 전체의 10.1%에 달한다. 국내 은행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한 달간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은 13조7000억원 증가해 10월 기준 통계 작성 후 사상 최대 증가액을 기록했다.

기업 차입금이 커지는 가운데 이자도 연일 오르고 있다. 한은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전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등 올해에만 2.25%포인트를 올렸다. 기준금리 상승에 대출금리도 덩달아 올랐다. 9월 예금은행 가중평균금리상 기업대출 금리는 연 4.66%를 기록해 전년 말보다 1.52%포인트 올랐다.

한은 통계상 9월 국내 기업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잔액 기준)은 72.7%에 달한다. 기업들이 금리 인상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채권시장의 수요 감소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며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까지 기업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말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기업대출액은 연평균 기준 예금은행에서 10.9% 늘어난 데 비해 비은행기관에선 27.5% 증가했다.

문제는 커지는 기업부채가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액을 다수에게 빌려주는 개인대출과 달리 기업대출은 거액이 한 기업에 몰린다. 부실이 발생하면 파장이 더욱 커지는 구조다. 외환위기 당시 기업금융 비중이 높았던 한일은행이 기업 연쇄도산으로 부실이 커지자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대출이 금리 인상에 따른 타격이 큰 것도 약한 고리다. 한경연 실증분석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가계대출 연체율은 0.1%포인트 증가한 반면 기업대출 연체율은 0.2%포인트 상승한다.

이 때문에 기업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최근 들어 커지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금리가 오르며 중간재 비용도 상승해 운영자금이 많이 늘면서 기업대출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이자 부담 때문에 한계에 내몰리는 기업이 늘어나며 기업부채 위험성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금융법인 85만8566곳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기업들의 비중은 40.5%에 달했다. 전년도(40.9%)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전체 기업의 99.9%인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이 개선되지 않으며 '한계기업'이 절반에 육박한 것이다.

여기에 국내 경제가 내년 저성장에 접어드는 것도 불안 요소다. 전날 한은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1.7%로 전망했다. 지난해부터 경기를 받쳐온 내수 회복세는 둔화되며, 수출 역시 내년 상반기 역성장하는 등 침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입장에선 이익 하락과 비용 증대가 불가피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통화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금리 인상 기조를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상호 한경연 경제조사팀장은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통해 시중 자금이 마르는 것을 방지하지 않으면 기업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부채를 포함해 경기 경착륙을 야기하는 불안 요인 해소를 위해 규제 완화, 통화정책 전환 등을 고려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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