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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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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전쟁'의 기억에…74세 핀란드 대통령 군복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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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1월 발발한 '겨울전쟁' 83주년 맞아

핀란드 육군, 러시아 접경지역서 혹한기 훈련

"장병들 의지 대단… 안보 중요성 잊지 말자"

“핀란드는 안보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올해 74세의 노(老)대통령이 핀란드와 러시아 접경지역에서 시작한 혹한기 군사훈련을 몸소 참관한 뒤 장병들, 그리고 핀란드 국민들한테 던진 메시지다. 83년 전 러시아의 침공으로 쓰라린 패배를 맛본 핀란드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안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세계일보

올해 74세의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가운데)이 핀란드·러시아 접경지역에서 진행된 핀란드 육군의 혹한기 훈련을 참관한 뒤 군복 차림으로 장병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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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그가 전날 핀란드와 러시아의 접경지역인 카리알라에서 벌어진 육군의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사진이 게재돼 있다. 보통 정치인이 군부대를 방문하는 경우 양복 위에 군용 야전상의나 점퍼만 착용하는 것과 달리 니니스퇴 대통령은 전투복을 완전히 갖춰 입고 전투화까지 신은 모습이다. 핀란드군은 겨울에 설원에서 전투를 벌이는 상황을 가정해 흰색의 방한 전투복이 있다.

니니스퇴 대통령은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카리알라 북부에 가서 육군의 주요 군사훈련을 시찰했다”며 “장병들의 태도와 움직임에서 기량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핀란드는 안보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핀란군이 혹한기에 훈련을 시작한 것은 꼭 83년 전에 발발한 ‘겨울전쟁’(1939년 11월30일∼1940년 3월13일)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프랑스 등 서방 강대국의 관심이 온통 나치 독일의 공격을 막는 데에만 쏠린 틈을 타 소련(현 러시아)은 이웃 핀란드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영토의 대부분을 내놓고 소련의 속국이 되는 길을 택하라,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 점령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핀란드는 즉각 거부했고 결국 대규모 소련군이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침입했다.

전력 면에서 소련에 크게 뒤졌으나 핀란드는 용감하게 싸웠다. 겨울 추위에 익숙한 핀란드 장병들은 스키를 타고 설원을 빠르게 이동하며 곳곳에서 소련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신속하게 핀란드를 점령할 줄 알았던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은 적잖이 당황했다.

핀란드의 저항은 해를 넘겨 1940년 3월까지 이어졌다. 국력의 열세로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핀란드는 결국 항복하는 길을 택했다. 당시 핀란드 국토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넓은 땅을 소련에 빼앗겼다. 이번에 핀란드군의 훈련이 진행된 카리알라 지역도 상당 부분이 소련 손아귀에 들어갔다. 카리알라를 러시아어로는 ‘카렐리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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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왼쪽 2번째)이 핀란드·러시아 접경지역에서 진행된 핀란드 육군의 혹한기 훈련 참가 장병들에게 훈시하고 있다.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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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을 뛰어넘은 핀란드군의 선전은 스탈린한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핀란드와 싸워 일시적으로 이길 수는 있어도 완전히 복속시킬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2차대전 후 소련이 강제로 병합한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과 달리 핀란드는 독립국으로 살아남아 소련과 서방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배경이다.

올해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겨울전쟁의 악몽을 떠올린 핀란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안보역량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니니스퇴 대통령은 오랜 중립 노선을 벗어던지고 핀란드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신청했다. 미국, 영국 등 서방으로부터 국가안보를 보장받기 위해서다. 다만 니니스퇴 대통령은 “핀란드가 나토 회원국이 되더라도 우리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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