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인터뷰] “룩셈부르크, 유럽 진출 노리는 기업에 최적의 실험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룩셈부르크는 작은 나라다. 세계 시장을 이끌 만한 큰 산업도 거의 없다. 그러나 이곳은 유럽 진출의 관문이다. 유럽 물류의 중심이기도 하다. 더 많은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룩셈부르크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 한다.


룩셈부르크 경제사절단이 수교 60주년을 맞아 지난달 27일 한국을 방문했다. 기욤 장 조세프 마리 대공세자와 프란츠 파이요 경제부 장관을 주축으로 87명의 사절단은 나흘간 한국에 머무르며 경제협력 의지를 다졌다. 룩셈부르크는 인구 65만명의 작은 나라지만 유럽의 대표적인 강소국가다. 지난해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13만5683달러(약 1억8000만원)로 수년째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이 나라가 한국 1인당 GDP의 4배에 달하는 부국이 된 데엔 개방적인 혁신 문화가 있다. 룩셈부르크 경제부 산하 혁신기관 ‘룩스이노베이션’에서 글로벌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제니 헬렌 헤드버그는 “룩셈부르크는 유럽에서 일곱 번째로 혁신적인 곳이다. 이 수치는 상당히 의미있는 신호이자, 룩셈부르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만났다.

조선비즈

헬렌 헤드버그 룩스이노베이션 국제사업 책임자가 룩셈부르크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운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동력이 무엇이었나.

“정부의 의지가 컸다. 룩셈부르크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최근 20년간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2017년부터 5년 간의 성장이 눈부셨다. 2017년 전까지만 해도 10개정도에 불과했던 스타트업이 500개를 넘어섰다. 민간과 정부기관 인큐베이터도 15개에 다다른다.

룩셈부르크는 그동안 금융산업과 은행업에 의존해왔는데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는 미국의 유명 액셀러레이터(AC·창업기획자) 중 한 곳이 룩셈부르크에 첫 해외 지사를 내는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유입되면서 생태계가 (민간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

-룩스이노베이션은 어떤 기관인가.

“룩스이노베이션은 룩셈부르크 경제부 산하의 혁신기관(Innovation Agency)이다. 기업이 룩셈부르크에서 더 혁신적이고 더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경제부와 교육부, 상공회의소 등이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핏 포 스타트(Fit 4 Start)’라는 스타트업 AC(Accelerator·스타트업이 성장하도록 돕는 기관) 프로그램이 있다. 연간 30개 기업을 선정해 6개월 간 코칭과 업무공간, 네트워크를 지원하고 최대 15만유로(약 2억원)를 직접 투자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할 혁신기업들을 발굴하고 있고 이들이 룩셈부르크에 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스타트업이 국내외로부터 민간 투자나 정부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하고, 마케팅과 홍보를 지원하기도 한다. 특히 산업별 기업이 모인 ‘클러스터’가 있는데, 각 클러스터에는 그 분야 전문가인 매니저가 있어 분야별로도 세세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스타트업이 대학이나 연구기관과 협업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현재 90개국의 130개 스타트업이 핏 포 스타트를 거쳐 갔다. 한국의 ‘포스처에이아이(Posture AI)도 올해 선정됐다.”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지원과 개입이 장기적으로는 자생력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핏 포 스타트 참가를 희망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초기 단계부터 매우 꼼꼼히 듀딜리전스(현장 실사)를 진행해 선별하고 있다. 단순히 가능성만 지닌 곳이 아니라 기술력과 자생력을 고루 가진 곳들을 뽑아 지원하고 있다. 그것이 AC 프로그램의 목적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엄격한 기준을 두고 선별해야 우리 프로그램의 잠재력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 덕에 핏 포 스타트에 참가한 기업들의 수준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매우 고무적이다.”

-선별하는 기준이 있나.

“소수의 기업에 심층지원을 하는 것이 핏 포 스타트의 취지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측면을 따진다. 기업의 연구개발(R&D) 활동, 기술력, 혁신성, 팀 구성, 재무 상황, 타국에서의 사업 성공률, 룩셈부르크와의 기술 연관성 등이다. 물론 그 중에서 이곳에 적합한 사업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룩스이노베이션은 구성원이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조직이지만, 참가 기업들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 참가 기업도 과도하게 많이 뽑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참가 기업이 실제로 제품화에 성공하고 시장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조선비즈

룩스이노베이션의 스타트업 AC 프로그램 '핏 포 스타트' 참가 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룩스이노베이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룩스이노베이션은 어떤 분야에 주목하고 있나.

“단연 기술 분야다. 헬스테크, 핀테크, 에듀테크, 클린테크, 우주, 모빌리티 등 분야를 유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이 때문에 아시아 최고 기술연구원 중 하나인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글로벌기술사업화센터(GCC)와도 양해각서(MOU)를 맺어 지속적인 교류를 약속했다.”

-사업지로서 룩셈부르크의 강점은 무엇인가.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에 가장 좋은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유럽연합(EU) 국가 중 다국적 인구가 가장 많다. 인종도 다양하고 언어도 다양한 데다, 유럽에서 큰 시장인 프랑스와 독일과 이웃하고 있어 유럽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에는 최적의 실험장이다.

또 룩셈부르크는 유럽 물류의 중심이기도 하다. 룩셈부르크에는 유럽에서 여섯 번째로 큰 화물공항이 도시 한가운데에 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화물 항공사 ‘카고룩스’도 룩셈부르크 샌드윌러에 본사를 두고 있다. 중국으로 곧장 가는 기차도 룩셈부르크에 있다. 이 때문에 아마존, 이베이 등 글로벌 대기업의 유럽본사가 룩셈부르크에 있다.

혁신에 개방적인 문화도 있다. 우리는 어떤 기업이 가진 아이디어나 기술력이 흥미롭고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면 조건 없이 네트워크에 불러들이고 열정적으로 돕는다. 사업 환경도 기업 친화적이다.”

-최근 글로벌 침체로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전 세계 스타트업들이 불황에 빠졌는데 룩셈부르크는 어떤가.

“다행히 아직 큰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규모 자체가 한국보다 작고 아직 성장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내년엔 올해보다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는 하지만, 룩셈부르크는 아직 인공지능(AI), 우주산업 등 딥테크 분야에서 기회가 많은 나라다.

벤처캐피털(VC)들도 투자를 활발하게 하고 있고 오히려 투자할 기업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등 아직 여력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특히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디지털 전환 분야 기술기업들은 시장에 진입한 비율이 각각 15%, 30%밖에 되지 않는다. 선진국 기준으로도 이 정도로 추산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을 넘으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영 기자(eunyoung@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