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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북적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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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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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363 :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맥주를 따르며 생긴 거품이 스르르 꺼져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은 맥주 거품처럼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즐겨야죠.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할 것만 같은 금요일 오후 2시. 어느새 캔 맥주 하나를 비웠고 기분이 맥주 한 캔만큼 좋아졌다."


"우리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들어주고 매일매일의 피곤으로부터 위로해 주는 건 사랑이나 헌신, 열망 같은 거창한 명제들이 아니라 어쩌면 맥주나 두부, 토요일 오후 같은 소소한 것들일지도 모른다."


제 차례를 한 번 건너뛰고 나니 겨울이 됐습니다. 26년 만에 가장 추운 '겨울의 시작'이었다는 12월 1일을 보내면서 그동안 넣어뒀던 두툼한 파카를 꺼내 입었습니다. 얼마 입지 못한 가을 옷들을 아쉬워하며 겨울을 맞습니다. 아, 이렇게 추운 날에는 따뜻한 온돌방에서 엉덩이 지지면서 따끈하게 사케라도 데워먹거나 아니면 잘 열린 와인을 한 병 비우거나,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맥주를 들이켜거나... 어째 다 술이긴 하지만 소소하게 저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겨울 초입, 올해를 정리하는 시기에 가져온 책, 최갑수 작가의 신작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입니다. 최갑수 작가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작가 소개를 잠시 옮기면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작가다. 여행을 다니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매일 아침 8시에 뉴스레터 〈얼론 앤 어라운드 alone&around〉를 발행한다. 일과 삶, 여행과 음식에 대한 에세이를 구독자들에게 보낸다. 글을 쓰면서 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렇습니다. 저는 10년 전쯤 최 작가를 알게 돼 종종 이 분의 글을 찾아 읽어왔습니다.
"살수록 음식을 먹는 일이 즐겁다. 찬 두부를 잘라먹다가 옛 기억을 더듬더듬 꺼내고, 불고기를 먹으며 좋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국수 가락을 건져 올리다가 반짝이는 지혜를 얻는다. 복어나 같이 먹자고 친구에게 전화하는 일이 좋다. 물론 혼자 먹는 도시락도 나쁘지 않다. 예전엔 먹지 못했던 음식을 지금은 맛있게 먹을 줄 안다. 맛있게 먹는 척이라도 하는데, 이만큼 살았으니 그럴 수 있게 된 거다."


"돌이켜보니, 인생 아무것도 없다. 열심히 일하고 악착같이 살았던 기억은 머릿속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먹고 놀고 사랑했던 기억만이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맥주를 따르며 생긴 거품이 스르르 꺼져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은 맥주 거품처럼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즐겨야죠.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할 것만 같은 금요일 오후 2시. 어느새 캔 맥주 하나를 비웠고 기분이 맥주 한 캔만큼 좋아졌다.


"거품이 적당히 나도록 유리잔에 맥주를 따른 후 꿀꺽꿀꺽 맥주를 마신 후 젓가락으로 두부를 투박하게 잘라 한 입 먹는다. 그 순간 '이 일도 그럭저럭 할 만하구나, 조금만 더 가보자.' 하는 마음이 김처럼 모락모락 생겨난다. 두부와 맥주가 놓인 식탁은 내 앞에 펼쳐지는 가장 평화로운 세계다. 적어도 두부를 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동안에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해야 할 일, 미뤄둔 일, 하지 못한 일에서도 벗어난다."


북적북적에서 음식과 여행에 관한 책을 꽤 많이 읽어왔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좋아하나 따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가만히 보니 최갑수 작가의 생각과 겹치는 데가 많습니다. 좋은 여행은 즐겁고 유쾌하고, 맛있는 음식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좋다면 금상첨화가 되겠죠.
"문득 뭔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콩나물국밥, 미역국, 소고기뭇국? 미역국에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음식은 예상외로 수프다. 은은하면서도 향긋하고 고소한 버터 향이 은근히 올라오는 수프 한 접시. 병아리색의 따뜻한 수프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으면 이 가을날이 행복할 것 같다."


제가 요즘 주로 하는 게 '스프'라고 이름 붙인 스브스프리미엄, SBS의 지식구독플랫폼입니다. 이름의 유사성을 빌려서 이를테면 "지식인싸들의 프리미엄 지식레시피", "뉴스에 지식을 담다", "지식을 떠먹여 드린다", 이런 표현들을 쓰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더 수프에 대한 글이 꽂혔던 건 그래서였겠습니다.

각자 꽂히는 대목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소박하고 다정한 글들로 가득 찬 책입니다. 이 겨울, 수프와 스프를 함께 하시면 어떨까 하고 혼자 바라봅니다.
"수프(스프)는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따뜻한 스웨터 같은 이 음식의 감촉을, 포근함을, 온기를, 다정함을 사람들이 영원히 좋아하고 즐겼으면 좋겠다."


*출판사 얼론북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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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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