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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제주에 ‘BTS길’이 있었네… “누군가 잘 알고 싶다면 함께 걸어라” [줌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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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5주년 맞은 제주올레길 닦은 안은주 대표

길 통해 지역·사람 연결하고 관계 회복…“최고의 접대는 함께 걷는 것”

제주 구석구석 뻗은 437㎞ 올레…추자도 새 코스 개장하며 27코스로

15년간 언론인으로 일하다 ‘길멍’에 빠져…지난 2월 후임 대표로 취임

이미 완주자 1000만명 넘어…“순례길처럼 1000년 가는 길 되길 바라”

트레일 국제 모임 제주 발원…“그들은 올레를 트레일계 BTS라 부른다”

산책은 목적지를 향한 걸음과는 다르다. 산책에 나서는 이는 바삐 걷지 말고, 마음은 가벼워야 한다. 그래야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겨나고, 일상에 지친 나를 오롯이 자연에 맡긴 채 쉴 수 있다. 산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길은 그래서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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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제주올레 21코스를 걷고 있는 올레꾼(올레길 걷는 사람)들. 하도리(제주해녀박물관)에서 종달리(종달바당)까지 이어지는 21코스는 구좌읍의 바다를 바라보며 시작하여 마을과 밭길, 바닷길, 오름 등 제주 동부의 자연을 고르게 체험하는 길이다. 제주올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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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한 카페에서 만난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는 “손님이 왔을 때 최고의 접대는 함께 걷는 것”이라며 “누군가를 잘 알고싶다면 같이 걸으라”고 조언했다.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시작하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안 대표는 길이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고, 관계성을 회복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왔다.

“제주 올레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걷는 여행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제주 올레 1코스를 만들고 후배들과 같이 가서 걸었는데 색다른 제주도를 발견한 듯 했다.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갔었는데 그때보다도 좋더라. 이제는 걷기에 중독된 것 같다.”

안 대표는 시사저널, 시사IN에서 약 15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다. 같은 언론사 선배였던 서명숙 이사장이 2007년 제주올레를 발족하자, 그는 잠깐씩 일을 돕다 다음해인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처음에는 기자를 그만둘 생각이 아니었지만, 막상 가서 보니 기자로 일할 때보다 행복했고, 결국 생각지 않았던 다른 인생의 갈림길로 나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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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주 제주올레 대표가 7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한 카페에서 “누군가를 잘 알고싶다면 같이 걸으라”고 조언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조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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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 선배가 제주도로 내려가 퇴직금 털어서 길을 내고 있었다. 처음엔 편집국장까지 했던 분이 보도자료 쓰고 홈페이지에 댓글달고 하는걸 보고 좀 도와주려했다. 그래서 ‘그러지 말고, 후원금을 받아서 운영자금을 마련하라’고 조언했는데, 대뜸 ‘그러면 네가 내려와서 후원시스템 만들어주고 가라’ 하더라. 시사IN이 창간한지도 1년 밖에 안된 때 였지만, 양해를 구하고 4개월 무급 휴직을 받아 제주도로 갔다. 후원, 자원봉사 시스템 등 운영을 위한 기틀을 잡는 일을 했는데 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간 쓰던 기사가 이만큼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을까.”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은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이사장과 법인대표 직제를 분리 운영키로 결정하면서, 그는 지난 2월 대표직을 맡았다. 안 대표는 취임과 함께 새 미션 ‘우리는 걷는다, we walk’를 내걸었다. 제주 올레길을 완주한 이만 해도 1000만명. 그동안 걸을만한 길을 닦기 위한 여정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지역, 이웃, 환경을 위한 프로젝트로 확장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15년동안 많이도 걸었다. 걸으면서 내 몸과 마음을 힐링하라는 게 (그간의) 주제였다. 이젠 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뭔가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고, 걷는 사람과 지역민, 인간과 자연 등 공존을 꾀하는 방안을 더 많이 찾고자 한다. 캐치프레이즈 ‘놀멍, 쉬멍, 걸으멍’에도 ‘꿈꾸멍, 나누멍’을 추가했다.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길도 사람도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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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주 제주올레 대표(왼쪽 두번째)가 지난해 봄 탐사팀과 올레길 4코스를 정비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올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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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 코스, 총 길이 437㎞에 이르는 제주 올레길은 이제 규모로서는 충분한 수준에 이르렀다. 2007년 9월 첫번째 코스를 개장했고 2012년 11월 26번째 코스인 21코스를 열면서 제주 섬의 큰 원형 루트가 완성 됐다. 올 6월에는 추자도에 18-2코스를 추가 개장하면서 총 27개 코스가 됐다. 제주올레길이 통과하는 제주의 마을만 해도 약 130여개 읍, 면, 동에 이른다. 다만 길은 내는 것보다 유지 관리가 더 어렵고 중요하다. 안 대표는 생긴지 1000년이 됐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예로 들며 올레길도 1000년 동안 걸을 수 있는 길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제주도 구석구석 퍼져있는 올레길은 제주를 가장 깊이 있고 입체적으로 만날수 있는 생태여행 플랫폼이다. 차에 탄채로 점을 찍고 다니던 그동안의 제주 여행과 달리 올레길에 다녀온 사람들은 자연스레 제주도를 더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주하는 사람도 늘었다. 올레의 생명력은 제주도의 지속가능성하고 맞물려있다. 그렇기에 올레를 만들고 관리할 때 제주의 환경, 지역성, 지역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길을 통한 상생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운영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는 게 차기 목표다.”

안 대표는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이자, 올레길을 즐기는 다른 방식으로 제주올레가 주관하는 환경 캠페인을 제안했다. 올레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환경정화 활동 ‘클린올레’부터 ‘나·꽁·치’(나부터 꽁초를 치우자), 제주 해안에 밀려드는 해양쓰레기 수거 캠페인 ‘바당길, 깨끗하길’까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누구나 ‘제주 지킴이’로 거듭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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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주 제주올레 대표(왼쪽)과 서명숙 이사장이 지난 7월 스페인 산티아고길과 공동완주협약 맺고 간세와 돌하르방을 설치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제주올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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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시작한 ‘클린올레’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일반 관광객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길을 낸 올레길 특성상 지역에 수십년 묵은 쓰레기가 드러나는 계기로 작용했다. 여행자들이 쓰레기를 줍는 모습은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도 역할을 했다. ‘나·꽁·치’는 풍광 좋은 곳은 다 담배꽁초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문제였기에 별도 캠페인으로 만들었다. 바다에서 떠밀려 오는 쓰레기는 개개인이 치우는 데 한계가 있기에, 10명 이상의 단체가 모이면 장비를 제공하고, 모인 해양 쓰레기는 따로 처리하고 있다. 이런 캠페인은 환경정화의 의미도 있지만,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효과적이다. 한 번 쓰레기를 주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죄의식이 생겨서 이후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올레길부터 27번째까지 손수 일궈온 안 대표가 가장 추천하는 코스는 어딜까.

“항상 코스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최근에 걸은 곳을 이야기하는 편이다. 아니면 숙소와 가까운 코스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어느 하나 빼놓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맛뵈기 코스를 하나 골라달라고 하면 보통 초심자가 걷기 쉽고 무난한 5, 6코스를 추천한다. 압축적으로 올레길을 경험하고 싶다는 분들에게는 1, 10코스를 권하곤 했다. 만약 죽기 전에 딱 한 곳만 걸을 수 있다면 추자도 올레코스를 걸어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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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주 제주올레 대표(왼쪽 두번째) 지난 1∼5일 대만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트레일즈컨퍼런스에서 10여년동안 교류해온 캐나다브루스트레일 관리위원회 재키 랜들(왼쪽)과 애팔래치안트레일 보호정책위원회 로라 벨래빌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올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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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 올레길은 크게 성장했지만, 세계의 많은 길이 가진 역사에 비춰보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그런데도 세계 트레일 분야에서는 입지가 두텁다. 각종 국제 컨퍼런스 등 교류에 앞장서며 각국에 존재감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올레를 ‘트레일계의 BTS’라고 추켜세울 정도다.

“올레는 본래 집에서 거리로 나가는 길을 가리킨다. 그 이름처럼 제주와 육지를, 제주와 세계를 연결하는 길이 됐으면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2010년 월드트레일즈컨퍼런스(WTC)를 시작했는데, 만나고 보니 이게 세계 트레일 관계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거였다. 5년 동안 제주에서 매년 개최했고, 지금은 2년에 한 번씩 나라별로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월드트레일즈컨퍼런스는 이제 21개국 300여명이 모이는 세계 트레일 네트워크 교류의 대표적인 장이 됐다. 최근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트레일즈컨퍼런스(ATC)도 참가하고 돌아왔는데, 국제 컨퍼런스에 갈때마다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우리의 싹을 틔운 것이 한국의 제주올레’라며 K트레일, 트레일계 BTS라고 부른다. 그럴때마다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제주올레는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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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 등을 포함, 몽골, 규슈, 미야기올레에서 온 자매의 길 관계자들이 올레길 11코스를 함께 걷기 전 출정식하는 모습. 제주올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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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을 위한 토대를 굳건히 하려한다. 2016년 제주올레 여행자 센터를 열고 길과 공간이 함께 있는 모델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다만 옛날 건물을 재활용해 쓰다보니 장애인 등 접근성 문제가 있다. 앞으로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개선할 생각이다. 늘 완주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시각장애인 완주자들과 이야기 나누며 같이 걸을 수 있는 자원봉사자 시스템을 고안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온 청각장애인 완주자들에게서는 4코스에 해안도로가 겹쳐져 있어 차가 올까 불안해 자꾸 뒤를 돌아봤다는 말을 듣게 됐다.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놀랍고 또 부끄러웠다. 누구나 올레를 즐길 수 있게 보완하는 것도 당면 과제다. 자매의 길, 우정의 길도 각국에 계속 확장해 나갈 생각이다. 길을 교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는 장이 되도록 기획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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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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