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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이슈 5세대 이동통신

밀리미터파 사용하는 ‘진짜 5G’ 한국에선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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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28㎓ 대역 5G 상용화…국내 5G 평균 속도보다 8배가량 빨라

이통사들, 비용·기술보다 28㎓ 주파수 활용할 사업 모델 없는 게 문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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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8일(현지시간)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개막전이 열린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SoFi 스타디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의 5세대(G) 이동통신을 쓰는 관람객들은 경기 영상을 찍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업로드하거나, 경기장 곳곳의 카메라가 찍은 다양한 고화질 실시간 영상들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확인했다. 이날 기록된 최고 다운로드 속도는 3.1Gbps(초당 기가비트)다.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5G 이동통신의 평균 다운로드 속도가 382~470Mbps(초당 메가비트)보다 8배가량 빠른 셈이다. 국내 5G의 이론상 최고속도인 1.5Gbps보다도 2배 이상 높다. 버라이즌의 5G 속도가 빠른 이유는 밀리미터파(㎜Wave)라고 불리는 28㎓ 이상 초고주파 대역 주파수를 활용하는 덕분이다.

버라이즌은 2019년 NFL 경기장을 중심으로 밀리미터파 5G 네트워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경쟁사인 T-모바일과 AT&T 등도 경기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핫스폿 지역에 밀리미터파 5G 네트워크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밀리미터파는 기존 이통사에서 사용한 주파수에 비해 대역은 높지만 폭이 넓어 많은 데이터를 지연 없이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향후 자율주행차, 증강·가상현실(AR·VR), 사물인터넷(IoT), 스마트공장 등의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밀리미터파 기반의 5G가 필수다.

현재 밀리미터파 기반 5G를 상용화한 곳은 미국과 일본 정도다. 한국은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5G 주파수 할당 당시 이통3사에 3.5㎓ 대역(당시 280㎒폭)과 28㎓ 대역(2400㎒폭)을 할당했지만, 지난해까지 실제로 구축한 28㎓ 대역 기지국은 당초 약속의 10% 수준에 그쳤다. 이통사들이 3.5㎓ 대역 중심으로 고가 요금제를 유지하면서도 28㎓ 확대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과기정통부는 LG유플러스와 KT에는 28㎓ 주파수 할당 취소 처분을, SK텔레콤에는 28㎓ 주파수 이용기간 5년 중 10%(6개월)를 줄이는 기간 단축 처분을 통지했다. 최종 결과는 이통3사 대상 청문회를 진행한 뒤 이달 중 나온다.

■ 한국, 밀리미터파 5G 못하는 이유

주파수는 높아질수록 통상 대역폭이 늘어 더 빠른 속도의 무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전파도달 범위가 작고 장애물이나 건물 벽 등을 만날 때 피하거나 뚫지 못하고 충돌해 사라진다. 특히 밀리미터파는 워낙 도달률이 작아 이동통신에는 활용되지 못하고 군용 레이더와 기상관측 위성용으로 쓰였다. 예컨대 군용 레이더에서는 탐지 정확도를 높이려고 파장이 짧은, 높은 주파수 대역을 선호한다. 탐지거리는 짧지만 탐지 정확도가 높아지고 안테나 크기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군용 레이더에선 전파를 더 멀리 전송하게 하는 최적화 기술인 ‘빔포밍’ 기술이 활용되는데 이는 28㎓ 5G에도 활용되고 있다.

다만 빔포밍 기술 등을 이용해도 28㎓ 기지국 커버리지는 반경 100~150m(도심 기준)에 불과하다. 28㎓ 5G 통신장비를 만드는 삼성전자는 지난달 호주에서 10㎞까지 통신에 성공하는 등 최장 전송거리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인구와 건물이 밀집하고 복잡한 지형이 많은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3.5㎓ 주파수 기지국은 도심 기준 커버리지가 반경 300m이지만 이조차도 4G(600m 이상)에 비해 더 많은 기지국을 설치해야 음영 지역을 해소할 수 있다.

이에 28㎓ 대역을 차질 없이 서비스하려면 그 이상으로 기지국 설치에 많은 비용이 든다. 미국과 일본에서조차 28㎓ 대역을 전국망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버라이즌이 경기장에 28㎓ 5G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도 경기장이 장애물 없이 탁 트인 환경이라 기지국 설치에 용이하다는 점이 작용했다. 또 수만명의 관중이 만들어내는 통신 트래픽을 28㎓ 5G 네트워크가 분산하는 효과도 있었다.

다만 국내에서는 기존 네트워크가 워낙 잘 구축돼 있어 28㎓ 네트워크의 트래픽 분산 효과가 떨어진다는 견해가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통3사는 지난 9월 미국 버라이즌 등을 방문한 뒤 작성한 ‘28㎓ 서비스 구현의 의미’ 보고서에서 “한국은 3.5㎓도 용량 및 속도가 충분해 (미국과 달리) 28㎓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지난 6월2일 오후 8시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과 브라질 대표팀 평가전에서 이통3사의 3.5㎓ 5G 트래픽 포화율은 31%에 그쳤다. 수만명의 트래픽이 몰리는 공간에서도 여전히 70%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강남역은 평균 트래픽 포화율이 8%, 서울 전체 평균은 6%로 나타났다. 이통사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트래픽이 많이 발생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지 않는 한 28㎓ 네트워크 수요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누가 28㎓ 주파수를 가져갈까

향후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장 등 5G에 기반한 서비스를 위해서는 28㎓ 대역의 5G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전문가들 간 이견이 없는 편이다. 다만 문제는 언제, 누가, 어떤 방식으로 28㎓ 5G 네트워크를 만들 것이냐는 점이다. 당장 과기정통부가 이달 중 KT와 LG유플러스의 28㎓ 주파수 할당 취소를 최종 확정하면 새로운 사업자가 뛰어들어야 할 판이지만, 업계에서는 신규 사업자의 등장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28㎓ 5G가 필수인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당장 이런 망에 투자를 할 만한 의지와 규모가 있는 기업이 얼마나 있겠냐”며 “결국은 KT나 LG유플러스에 다시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돈이 없거나 기술이 없어서 28㎓를 못하는 게 아니라 현재 28㎓로 할 만한 사업 모델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단 주파수 혼간섭이 일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누구나 신고만 하면 특정구역에서 28㎓ 주파수를 쓸 수 있도록 3년 정도는 풀어줘서 자유롭게 사업 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28㎓ 네트워크에 힘이 실리고 정부도 제대로 된 망 이용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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