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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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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깜빡, 순간적 헛소리...본인도 자각 못하는 '뇌전증 신호' [건강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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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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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은 편견이 유난히 많은 질병이다. ‘불치병’ ‘유전병’ ‘소아 질병’ ‘정신병’으로 오해해 적절한 치료와 관리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많다. 뇌는 세포들끼리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며 활동한다. 건강한 상태에선 전기신호가 적절히 만들어지고 제어되지만 여러 원인으로 뇌 조직이 과다한 전기를 방출하면 발작이 일어난다. 뇌전증은 이런 발작이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2회 이상 발작이 나타나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본다.

뇌전증은 생각보다 흔한 병이다. 신경계 질환 중 치매·뇌졸중 다음으로 환자가 많다. 인구 1000명당 5~10명 정도다. 소아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졌지만, 최근엔 인구 고령화로 성인 환자 규모가 늘었다. 소아기(0~9세)에서 발생률이 가장 높고 이후 감소하다 50세 이상부터 다시 증가하는 U자 곡선을 띤다. 뇌전증은 유전이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 뇌 손상의 후유증이나 감염, 외상, 뇌 질환과 같은 후천적 요인이 대부분이다.

주요 증상은 발작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전신이 뻣뻣해지고 떨거나 침을 흘리는 등의 대발작 외에도 갑자기 멍해지면서 잘 대답하지 못하는 증상,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 아주 짧게 움찔하는 증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문혜진 교수는 “확실한 대발작이 있던 경우가 아니면 환자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수 있다”며 “반복되는 이상 행동이나 의식 변화, 본인 의지와 상관없는 운동 증상이 주변 사람들에게 관찰되면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환자는 명확하게 기억하기 어려우므로 증상 발생 시 주변인이 동영상을 촬영해 두면 도움된다.



노년기 발생 땐 재발 위험 더 높아



특히 나이가 들어 새로 발생한 뇌전증은 발작 양상이 젊은 시기의 뇌전증과 다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기억이 깜빡깜빡한다’ ‘순간적으로 헛소리한다’ 등으로 표현하는데 노화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의식 혼란이나 기억력 상실, 경련 후 마비 등이 더 잘 나타나고 지속 시간 역시 더 길다. 젊은 연령대에 비해 재발의 위험이 현저하게 높다. 한 번의 발작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어 치료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 소아 역시 조기 치료가 중요한 건 마찬가지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유진 교수는 “소아는 어른보다 증상이 심하고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아 성장과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뇌전증 환자의 50~60%는 발작이 나타날 조짐, 즉 전조를 경험한다.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 느껴지는 저림·통증 등의 감각 이상, 가슴이 답답하거나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증상, 공포감, 환청, 환시, 환각, 기시감, 미시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전조는 발작이 뇌의 한 부위에서 시작될 때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이다. 전조를 정확하게 파악해 분석함으로써 발작이 시작되는 뇌 부위를 추정할 수 있다.

뇌전증이 의심되면 뇌파 검사를 시행해 뇌전증파를 발견함으로써 확진할 수 있다. 자기공명영상(MRI)은 발작을 일으키는 구조적인 뇌 병변을 찾아내는 데 효과적이다. 치료는 약물이 기본이다. 뇌전증 환자의 약 70%는 항경련제와 같은 적절한 약물치료로 발작을 멈추게 할 수 있다. 나머지 30%가량은 약물치료로도 조절되지 않아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 이땐 수술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바늘로 손발 따거나 주무르기 금물



고지방·저탄수화물·고단백 식이를 공급하는 케톤 생성 식이요법도 방법이다. 일반인에겐 다이어트용 식사법으로 알려졌지만 의학적으론 난치성 소아 뇌전증 환자의 발작 증세를 줄이는 데 쓰인다. 최근엔 성인에서도 치료 효과를 입증한 연구결과가 보고됐다. 문 교수는 “뇌전증은 고혈압·당뇨병처럼 상당 기간 관리하며 치료해야 한다”며 “단기간에 치료하겠단 조급한 마음을 갖기보다 환자 특성에 맞게 처방된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규칙적이면서 건강한 일상생활을 해야 쉽게 지치지 않고 치료 결과도 좋다”고 당부했다.

주변에서 발작 환자를 보면 환자가 숨을 쉬는지 확인하고 발작이 멈출 때까지 환자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억지로 누르거나 팔다리를 붙잡지 않으며 숨 쉬기 편하도록 넥타이나 단추, 허리띠를 풀어준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줘 입안 내용물에 질식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손발을 바늘로 따거나 주무르는 행위는 금물이다. 대부분 1~2분 지나면 자연 회복하므로 곧장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하루에도 수회 이상 반복하거나 5분 이상 경련이 지속하면 위급한 상황이 올 수 있으므로 곧바로 병원에 가 치료받도록 한다.

환자·보호자는 처방대로 약을 꾸준히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년 이상 발작이 없는 경우 서서히 감량해 약을 끊을 수도 있지만, 증상이 사라졌다고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는 건 위험하다. 발작을 부추기는 생활습관은 피한다. 수면량이 부족하거나 불규칙하면 경련을 유발하므로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갖는다. 알코올은 항경련제와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그 자체로 발작 유발 요인이다. 술은 될 수 있으면 마시지 말아야 한다. 또 간헐적 의식장애 증상이 자주 발생하는 환자라면 안전을 위해 운전은 하지 않는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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