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4 (월)

미란다 원칙 세운 美 대법원장, 해군 함정으로 부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美해군, 최신 유류보급함 '월 워런'으로 명명

1953∼1969년 연방대법원장 지낸 법조 거목

'미란다 판결' 등으로 인권·평등 신장에 기여

형사사건 피의자의 권익을 보장한 일명 ‘미란다’ 판결로 유명한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미 해군 함정으로 부활한다. 군함 가운데 전직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이나 한 시대를 풍미한 장군 및 제독 이름을 딴 경우는 많아도 대법원장 명칭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 눈길을 끈다.

21일(현지시간) 미 해군에 따르면 이날 샌디에이고에서 해군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최신 유류보급함 ‘얼 워런’호(號)의 명명식이 열렸다. 명명식이란 새로 건조한 배에 고유의 이름을 붙이는 의식이다. 얼 워런(Earl Warren: 1891∼1974)은 1953년부터 1969년까지 약 16년간 미국 제14대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세계일보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장관이 21일(현지시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 해군 유류보급함 ‘얼 워런’호 명명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델 토로 장관 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행사는 카를로스 델 토로 해군장관이 직접 주관했다. 그는 기념사에서 “워런 대법원장의 유산은 시민권, 자유, 민주주의 속에서 계속 살아있다”며 “무엇보다 평등에 대한 그의 기여는 우리나라(미국)를 크게 강화시켰다”고 말했다.

원래 보수적인 법률가였던 워런은 공화당 소속 정치인으로 오래 활동했다. 1943년부터 1953년까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것이 대표적이다. 1953년 같은 공화당 출신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에 의해 일약 연방대법원장에 발탁됐다.

그런데 워런은 대법원에 입성한 뒤 정치적 신념이 조금씩 바뀌었다. 보수에서 중도로, 다시 진보로 이동하며 입법부와 행정부를 대신해 사법부가 사회 혁신을 주도하는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냈다. 그 때문에 훗날 아이젠하워는 “워런을 대법원장에 임명한 게 나의 가장 큰 실수”라고 후회했다.

워런이 대법원장으로서 남긴 가장 유명한 판례가 바로 브라운 대(對)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1954), 그리고 이른바 미란다 판결(1966)이다.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은 흑인 어린이를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흑인 학교에 다니도록 한 교육위원회의 조치가 발단이 됐다. 아이의 부모가 “집에서 가까운 백인 학교에 다니게 해달라”며 낸 소송을 대법원이 받아들여 “흑백 인종에 따라 학교를 분리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로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오늘날 흑인 민권운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판례로 받아들여진다.

세계일보

미 해군 유류보급함 ‘얼 워런’호. 미 해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란다 사건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에게 경찰이 ‘당신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고지하지 않고 받아낸 진술이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피의자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받아낸 자백 등은 적법한 증거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를 계기로 피의자에게 수사기관이 변호인 조력권 등을 반드시 고지해야 하는 일명 ‘미란다 원칙’이 생겨났다.

이날 명명식을 가진 얼 워런호는 해군 소속의 유류보급함이지만 항해 중인 함정에 연료를 공급하는 등 사실상 민간 유조선이나 거의 다름없는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승조원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이 점을 의식한 듯 델 토로 장관은 “장차 이 배에 탑승할 민간인 승조원들이 워런 대법원장의 유산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