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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비동의 간음죄는 안 된다는 尹정부…한국만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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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여성가족부가 법무부 반대로 '비동의간음죄' 개정 추진 의사를 철회한 가운데, 국제 인권기준에 맞지 않는 현행 강간죄 규정을 고집하는 정부여당의 태도가 '인권적 퇴행'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전국 222개 여성·인권·시민사회 단체 연대체인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는 27일 성명을 내고 "동의강간죄는 일상권력과 성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가 가고 있는 체계"라며 법무부 등에 "'한국만 퇴행하자'는 (식의) 선동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연대는 특히 비동의 간음죄와 관련한 국내외 입법 논의 및 기준을 들어 이번 입장 철회 사태가 '국제적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껏 유엔(UN) 고문방지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인권이사회 등 "한국이 비준하고 있는 국제규약"에서도 강간죄 개정을 한국사회에 촉구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엔 소속 국제인권기구는 국내 강간죄 구성요건에 대한 우려와 개정 권고를 꾸준히 전달해왔다. 폭행과 협박을 '강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하는 형법과, 그 폭행·협박을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으로 해석하는 소위 '최협의설' 판례가 성범죄 피해를 왜곡·축소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연대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2006년 제2차, 2017년 제3·4·5차에서,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 제7차, 2018년 제8차 최종견해에서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고,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할 것을 권고"했고 "2021년 유엔인권이사회는 강간에 관한 입법모델(프레임워크)를 채택하고 국가는 강간 정의의 핵심에 동의 없음이 포함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정부와 여당이 "시민들의 삶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연대는 "강간죄의 최협의설은 사실상 강간죄를 피해자의 저항유무를 심문하는 죄이게 해왔고, 이에 대한 비판은 오래된 법적 상식"이라며 "법원은 2005년경부터 폭행·협박 판단기준 완화를 판례로 실행해왔고, 2010년대 중후반 국회도 입법논의를 해왔다"고 강조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등 여당 인사들의 반대를 두고선 "비동의강간죄는 20대 국회 시기, 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발의하여 5개 정당 10개 국회의원실이 대표발의했던 법안"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도 같은 날 올린 소셜미디어 게시글을 통해 "비동의간음죄 신설은 모든 나라 여성계의 오래된 숙원 사업이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성폭력 의제에서 가장 핵심 과제"라며 여가부·법무부 측 행보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프레시안

▲지난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권인숙 위원장과 소속 의원들이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헌화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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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의원은 "비동의간음죄 추진은 양성평등위원회의 의결사항으로 이미 법무부도 동의해 발표한 계획이다. 발표 직후 법무부의 단순 반대로 범부처 합의 사안을 뒤집어 버린 것"이라며 이번 사태의 '절차적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앞서 여성가족부는 지난 26일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년~2027년)을 발표하고 형법상 강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법무부가 이에 반대의견을 밝히자 발표 8시간여 만에 해당 입장을 철회했다.

현행 양성평등기본법상 법무부장관은 해당 법 제11조와 시행령 제8조에 의거한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이다. 또한 비동의 간음죄 개정 추진 내용이 포함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은 해당 양성평등위원회의 의결사항이다.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법무부의 갑작스러운 '제지' 제스처가 절차적 공정성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이유다.

여기에 여가부 폐지 방침을 위시해 여성의제에 대한 평소 정부여당이 보여온 태도로 인해 논란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원내대표 시절부터 여가부의 존재 및 여성주의 이론 등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온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같은 날 비동의간음죄 추진 등 내용이 포함된 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두고 "여가부 폐지 명분이 증명됐다"고 발언했다.

권성동 의원은 지난해 7월 원내대표 시절에도 여가부의 '청년 성평등문화추진(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는 이유로 해당 사업의 철회를 부처에 지시하면서 '부적절한 업무 개입'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관련기사 ☞ 尹정부 '공정'은 안티 페미? ... 여가부 '버터나이프크루' 폐지 논란)

권인숙 의원은 27일 올린 글에서 "이번 사태는 여성가족부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증명했다"고 권성동 의원의 말을 반대로 꼬집었다. 지금도 정부여당의 입장에 흔들리는 여가부의 입지를 고려하면 "여성가족부가 각 부처로 흩어질 경우, 성폭력 대책 컨트롤타워로서 전혀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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