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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공공요금 인상 파장

[기자칼럼] ‘난방비 폭탄’ 다음 ‘핵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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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난방비 폭탄’이 화제다. 지난해보다 덜 땠으면 덜 땠지, 더 때지 않았는데, 난방비(관리비)가 10만원 넘게 늘었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아예 이달 받아본 고지서에 찍힌 숫자를 난생처음 봤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경향신문

이호준 경제부 차장


민심이 흉흉해진 걸 직감한 정치권은 분주하다. 저소득층 에너지바우처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여당에 이어, 동절기에 1인당 10만원씩 모든 국민에게 에너지 지원금을 주자는 주장이 여야에서 동시에 쏟아져나왔다. 올려야 할 때 안 올려서 폭탄이 터졌다거나 이제 와서 대책 없는 너희들이 더 문제라는 네 탓 공방도 치열하다.

이번 겨울 난방비 폭탄이 터진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수입해 오는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물을 끓여 온돌 바닥을 데워야 하는데 땔감이 비싸졌으니 요금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이치다. 전 정부가 요금 인상을 미뤘건, 현 정부가 폭탄이 터질 걸 알면서 대책 마련에 소홀했건 어차피 언젠가는 지불했어야 할 돈인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는 지난해 동절기인 1분기를 지나서 2분기에 가스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가스요금 인상이 한 차례에 그치지 않을 것도 시사했다. 가스공사 설명에 따르면 가스공사가 주택용 도시가스를 원가 이하로 공급하면서 손해를 본 미수금이 9조원이라고 한다. 이 9조원의 미수금을 채워넣기 위해선 지금 가스요금 단가의 3배까지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내년의 난방비 폭탄, 내후년의 난방비 폭탄은 올해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핵폭탄’급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천연가스 소비 비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상황에, 에너지바우처 확대나 전 국민 난방비 지급 같은 작은 이야기들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도 각자도생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고, 국내 가스요금 현실화에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환경 비용까지 고려하면 앞으로도 관련 요금이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늘이 가장 싸다’는 주식시장의 호객 용어지만, 에너지시장에선 진실에 가깝다.

유럽에 잠시 머물렀을 때 겨울철만 되면 대형마트에서 늘 발견할 수 있는 스테디셀러들이 있었다. 뜨거운 물을 담아 껴안고 자는 난방용 핫 워터팩과 두툼한 슬리퍼, 보온용 가운이 그것들이다. 목재로 만든 유럽의 오래된 주택 난방은 전기나 가스로 돌아가는 부실한 라디에이터가 거의 전부였다. 보일러를 열심히 때봐야 온돌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민간 가스회사가 내미는 요금 청구서가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 대부분은 겨울에는 워터팩을 껴안고서야 잠이 들고, 침대에서 일어날 때면 가운을 걸치고서야 집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효율 좋은 온돌에 허리를 지져가며 난방비 걱정을 하고 있지만, 가운을 입지 않으면 집 안을 돌아다니기 어려운 유럽의 현실이 우리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난방비 폭탄에 치고받는 지루한 정치권 뉴스를 보다 슬그머니 일어나 보일러 눈금을 한 칸씩 낮췄다.

이호준 경제부 차장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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