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음주는 건강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가정불화와 사회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최근 음주량이나 횟수가 늘고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을 자주 경험했다면 음주 습관을 점검해 보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단계에 들어서면 술을 끊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완전히 금주하는 게 어렵다.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전용준(내과) 원장의 도움말로 술에 점점 의존해가는 조짐과 이로 인해 악화하는 건강 문제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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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주 횟수·양이 늘었다
식사와 함께 반주하는 건 경계해야 할 음주 습관의 하나다. 적은 양이어도 습관적으로 자주 술을 마시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는 조건반사로 술을 찾게 된다. 술은 뇌 신경전달물질을 자극하는 의존성 유발 물질이다. 어떤 행위를 통해 쾌감을 경험하면 뇌는 이를 기억하고 그 행위를 반복하게 한다. 습관적인 음주는 내성을 만들어 주량을 늘게 한다. 특히 집에서 편안한 분위기에 마시면 술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진다. 음주량을 가늠할 수 없고 스스로 자제가 어려워 과음·폭음하기 쉽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음주의 횟수·양이 증가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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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억이 자주 끊긴다
술을 마신 뒤 기억을 잃는 블랙아웃은 과음자의 절반 이상이 겪는 증상이다. 알코올은 혈관을 통해 흡수된 후 뇌세포로 침투해 일시적으로 뇌 기능을 마비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억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인 해마를 공격한다. 알코올은 뇌에 정보가 입력되는 과정 자체를 방해하기 때문에 기억 자체가 아예 기록·저장되지 않는다. 블랙아웃이 반복되면 일시적으로 그쳤던 뇌 신경 세포 손상이 영구적으로 이어진다. 블랙아웃이 6개월에 2회 이상 나타났다면 이미 뇌의 인지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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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분파가 되고 난폭해진다
술을 마시면 기분파가 되거나 우는 등 감정적이 되는 이유는 뭘까. 알코올이 대뇌 피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뇌 피질은 이성·의식을 담당하는 신피질과 감정·본능을 담당하는 구피질로 나뉜다. 평소에는 신피질이 구피질을 제어해 감정적인 말과 행동을 자제하게 한다. 하지만 알코올은 신피질의 구피질 제어력을 약하게 해 감정·본능이 자유롭게 행동하게끔 한다. 술을 마시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건 뇌 손상의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신피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뇌 앞부분의 전두엽은 감정·충동을 조절하는 기관인데 알코올에 쉽게 손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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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 취했다며 운전대를 잡는다
평소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일수록 음주 후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장 큰 예가 음주 운전이다. 뇌는 알코올을 소량 마셨을 땐 혈중 알코올 농도를 과대평가하지만 다량 마셨을 땐 오히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본인의 음주가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높은데도 정작 스스로는 괜찮다고 여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알코올의 심리적 이완 효과 때문이다. 음주 운전을 하고도 단속에 적발되지 않거나 사고가 나지 않은 경험을 하면 자신감이 상승한다. 알코올중독의 대표적인 증상은 부정이다. 술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폐해, 주변인의 상처·피해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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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장술을 찾는다
농담으로라도 해장술을 찾고 있다면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단계로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해장술은 아직 알코올 해독이 일어나지 않은 뇌의 중추신경을 또다시 알코올로 마비시켜 숙취를 느낄 수 없게 한다. 금주를 결심했는데 어지러움·나른함·피로·불안·근육통·두통 같은 일종의 금단 증상으로 다시 술을 찾게 된다. 알코올에 익숙해진 뇌 신경전달물질에 불균형이 생기면 금주 후 24~48시간 이후에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신체적·심리적 불편함을 견디기 싫어 계속 술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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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술 마시는 것을 숨긴다
주변의 걱정이 싫어 술 마신 것을 숨기거나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다. 음주 문제에 대해 잦은 지적을 받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음주 행위에 죄책감을 갖지만 결국 음주를 조절하지 못해 술을 찾게 된다. 이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술병을 숨기거나 몰래 술을 마시는 것이다. 혼자 술을 마시다 보면 문제 행동이 생겨도 스스로 발견하거나 자제하기 어렵다. 통제 능력에 어려움이 있거나 살이 급격히 빠지는 등 신체적인 증상이 드러난 후에야 주변 사람이 문제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 변명·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하다 보면 처음엔 주춤하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져 거리낌이 없어진다. 스스로 먼저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 과음·폭음이 부르는 질환
급성 췌장염·저혈당 술을 마신 뒤 심한 공복감이나 등 통증이 있으면 단순한 숙취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반복적인 과음·폭음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신호다. 속 쓰림·구토를 반복한다면 알코올 때문에 위가 손상돼 염증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위 점막이 손상돼 반사적으로 구토한다. 이 과정에서 식도가 손상되면 역류성 식도염이 생긴다. 술 마신 다음 날 공복감을 심하게 경험하면서 속이 좋지 않으면 저혈당이 온 것이다. 알코올이 포도당 합성을 방해해 혈당 수치가 낮아지면 공복감을 심하게 느낀다. 과한 알코올 섭취는 췌장 세포에 손상을 입혀 급성 췌장염의 원인이 된다. 등·가슴 쪽으로 극심한 통증이 뻗어 나가는 증상이 있다. 바로 누웠을 때보다 몸을 웅크릴 때 통증이 줄어든다.
지방간·간경화 일주일에 2병 이상 술을 마시면 알코올성 간 질환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해독 기관인 간은 알코올에 직접 손상되는 장기다. 술은 영양소가 없고 열량은 높다. 간에 지방으로 쌓이기 쉽고, 지방을 분해하는 단백질 생성을 방해한다. 간세포에 지방이 축적된 알코올성 지방간으로 진단받았다면 간이 더는 술을 견딜 수 없는 과부하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이 질환은 증상이 거의 없고 간혹 상복부 불편감이나 피로를 느낄 수 있다. 단주하면 4~6주 이내에 정상 간으로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방치하면 간염으로 급속히 진행된다. 이때 완전히 금주하지 못하면 간이 재생력을 상실해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한다. 간 질환은 조기에 증상을 발견하기 어려운 만큼 평소 술을 자주 먹는 사람이라면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거나 주기적인 검사·관리를 해야 한다.
알코올성 치매 술을 마시면 가장 먼저 타격받는 부위가 뇌다. 알코올은 뇌세포를 파괴하고 뇌와 신경계에 필수영양소인 비타민B1의 흡수를 방해해 알코올성 치매의 위험을 높인다. 알코올성 치매는 일반 퇴행성 치매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고 짧은 기간에도 급격하게 악화할 수 있다. 다행히 알코올성 치매는 술을 끊는 것으로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치매는 아직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는 만큼 예방이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치매 예방지침의 하나가 알코올 남용 금지다. 알코올 남용에 따른 뇌 손상은 모든 형태의 치매 위험을 3배가량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불면·우울증 알코올의 수면 유도 효과는 일시적일 뿐 오히려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각성 효과가 더 크다. 처음에는 잠이 들게 도와주지만 시간이 지나며 혈중 알코올 농도가 떨어지면 오히려 교감신경을 항진해 각성을 일으키고 잠에서 깨게 한다. 뇌를 쉬게 하는 깊은 수면을 방해한다. 또 자는 동안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이뇨 작용이 나타나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된다. 소변으로 체내의 수분·전해질이 빠져나가면 몸은 탈수로 갈증을 느끼고 다시 깨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술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도 일시적일 뿐이다. 알코올은 도파민과 함께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고 제어하는 GABA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수치를 증가시킨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파민과 GABA의 안정적인 수치 변화를 방해한다. 대다수의 기분장애 환자가 우울·불안으로부터 오는 슬픔·무기력함·외로움·수면 장애 등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술을 마시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술로 인해 겪는 갈등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다시 우울감이 커진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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