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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손님이 담배를 만들어 사가는 가게...대법 “처벌 안 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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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사업법상 ‘제조·판매’로 볼 수 없어”…무죄 판단

세계일보

대법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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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잎 등 담배 재료와 제조기계를 비치해두고 손님이 직접 담배를 만들어 사갈 수 있게 하는 ‘수제 담배 업소’가 합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담배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식품유통업체 대표 A(51)씨와 가맹점주 B(67)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2016∼2017년 담배제조업 허가와 담배소매인 지정을 받지 않은 채로 연초잎 판매 가맹점을 모집한 뒤, B씨 등 가맹점주 19명에게 연초잎과 담배용지, 필터, 담뱃갑, 담배제조기계를 공급한 혐의를 받았다.

B씨 등은 불특정 다수의 손님에게 A씨에게서 받은 연초잎과 필터, 담뱃갑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 가맹점은 손님이 직접 기계를 조작해 담배를 만들면 1갑(20개비)당 2500원에 판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의 쟁점은 가게를 방문한 손님에게 담배를 만들게 한 행위가 담배사업법이 정한 ‘담배의 제조·판매 행위’에 해당하는지였다.

2심은 이들이 무허가 담배 제조·판매를 했다고 보고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A씨가 가맹점주들에게 담배 재료와 담배제조시설을 제공한 것은 ‘물품 공급’이지 담배사업법이 규정한 ‘담배의 제조’가 아니고, B씨 같은 가맹점주도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담배 재료와 기계를 쓰게 해줬을 뿐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구상한 영업 방식에 따르면, 손님과 가맹점주들 사이에 수수되는 돈은 ‘완성된 담배’가 아닌 ‘담배 재료 또는 제조시설의 제공’에 대한 대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B씨 등의 가맹점에선 손님이 습식, 분쇄, 튜빙(담배용지에 담뱃잎 삽입) 등 궐련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수행했고, 일부 가게가 고객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담배 몇 갑을 대신 만든 일이 있긴 하지만 A씨가 이런 변칙 영업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담배사업법상 연초 잎의 판매와 개별 소비자에 의한 담배 제조가 금지돼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구상한 영업 방식이 담배사업법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설령 피고인이 구상한 영업 방식을 아무런 제한 없이 허용할 경우 담배의 품질과 공급량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감독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입법적인 보완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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