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지진 구조까지 정치적으로?" 튀르키예 언론인이 분노한 까닭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강진으로 국민 삶은 생지옥 됐는데
"붕괴된 아파트 6,000여 개"
"대통령이 여당 출신 시장에만 대책 의논"
"비상사태 선포도 35시간 만에야 늑장"
비판여론 의식? 트위터 차단 조치까지
한국일보

강진 발생 다음 날인 7일(현지시간) 지진으로 붕괴한 튀르키예 하타이의 건물 잔해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 끌어안고 있다. 전날 튀르키예에서 규모 7.8, 7.5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80여 차례 여진이 일어나 튀르키예와 인접국 시리아에서 지금까지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비상사태를 바로 선포해야 군인들이 동원돼 구조를 했을 텐데, 무슨 정치적인 걸 일으킬까 봐 그 걱정으로 선포가 안 된 거예요."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 기자· 8일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인터뷰에서)

비통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를 덮친 초대형 지진 피해의 구조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골든타임'(생존 가능 기간)을 속절없이 흘려보내 게 된 배경에 '정치적 판단'이 있었다는 의구심이 나오는 탓이다.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하자 현지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 접속도 차단됐다.

"여당하고만 대책 의논"


튀르키예 출신 언론인으로 한국에 귀화한 알파고 시나씨 기자는 8일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에 나와 "시민 분노가 심각하다"며 정부의 정치적 판단 탓에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분개했다.

그는 "붕괴됐다고 보고되는 아파트 수가 6,000개가 넘어서 최소한 10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무너진 집 아래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며 "그런데도 구조대가 거의 가지 않아 분노가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구조가 늦은 도시 하타이 시민들은 '우리는 무슨 양아들이냐', '우리도 세금을 내지 않느냐', '똑같은 시민 아니냐' 하며 분노하고 있다"며 가장 많은 피해를 봤는데 구조는 다른 지역에 비해 늦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유로는 "강진 직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자기 당에서 당선된 (여당) 시장들에게만 전화를 해 '걱정하지 마라', '국가로서 우리가 일을 다 해낼 것이다'라고 대책을 의논했다"는 점을 지목했다. 상대적으로 야당 시장이 있는 곳에 구조 인력이 덜 파견됐다는 것이다.

특히 군인을 구조활동에 선포할 수 있도록 비상사태 선포라도 시급하게 이뤄졌어야 했는데 "35시간 만에야 뒤늦게 비상사태가 선포됐다"며 "군인들이 혹시나 비상사태에서 자치권이 생기면 정치적인 문제를 일으킬까 봐 그 걱정으로 선포를 늦춘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구조를 어렵게 만드는 도로 파손 문제를 두고도 "하타이 공항을 만들 때 지리학자들이 정말 위험한 곳이니 여기에 만들지 말라고 그렇게 반대를 했는데도, (정치권이) 고집을 부려서 거기 공항을 만들어서 지금은 쓸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일보

6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아다나에서 구조대와 주민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있던 생존자를 구조해 옮기고 있다. AP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비난 일자 트위터 접속도 차단"


구조의 골든타임이 흘러가는데도 구조 인력과 장비의 태부족이 이어지고 일부 지역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지자, 현지에서는 붕괴된 건물 잔해 사이에서 들려오는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직접 땅을 파헤치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진다.

시민 분노가 심상치 않자 현지에서는 트위터 이용이 가로막힌 상황이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인터넷 모니터 업체 넷블록스와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대부분의 통신·인터넷 사업자는 현재 이용자들의 트위터 접속을 제한하고 있다.

넷블록스는 "튀르키예 내 실시간 네트워크 데이터 분석 결과 트위터가 차단됐다"면서 "튀르키예는 국가 비상사태나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셜미디어 접속을 제한해온 광범위한 역사가 있는데, 이런 제한은 지진 피해 현장에서 진행되는 지역사회 구조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AFP는 지진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한 SNS 이용자 18명이 현지 경찰에 의해 구금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튀르키예 지진 실종자 수색 등을 위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 대원들이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군 수송기 탑승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외교부, 소방청,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국방부 등으로 구성된 110여 명의 긴급구호대를 튀르키예로 파견한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형제의 나라로"


현재 지진 현장에서는 약 7만 명이 구조 활동을 펴고 있으며, 세계 70여 개국에서 3,000여 명의 구조대가 현지에 도착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도 급파됐다. KDRT는 8일(현지시간) 오전 6시 57분께 튀르키예 남동부 가지안테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앞서 7일 공군 수송기인 KC-330 시그너스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를 통해 인천공항에서 이륙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긴급구호대는 도착 후 구조 인력이 특히 부족한 하타이 지역에서 수색·구조 활동을 편다. 세부 계획은 튀르키예 정부와 현지에 나온 타국 긴급구호대·유엔 측과의 협의를 통해 정한다.

이번 KDRT는 정부 파견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튀르키예 측 요청에 따라 탐색 구조팀 중심으로 꾸려졌으며 외교부 1명, 국방부 49명, 소방청 62명, KOICA 6명이 포함됐다. 원도연 외교부 개발협력국장이 구호대장을 맡았다.

외교부는 "우리 정부의 튀르키예에 대한 긴급구호대 파견과 인도적 지원이 대규모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튀르키예 국민들의 조속한 생활 안정과 피해 복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