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맛있게 살자! 맛집·요리·레시피

비릿, 매콤, 달달…겨울 한 그릇 뚝딱 비우다[지극히 味적인 시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00) 울진·후포항 오일장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23년, 신년 맞이 해돋이도 볼 겸 울진을 찾았다. 동해에서 해돋이는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정도는 아니다. 밤새 운전할 생각으로 날씨를 검색하니 구름이 잔뜩 끼었다. 해돋이는 다음으로 미뤘다. 새벽 5시, 서울에서 출발했다. 새벽녘 차가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천까지는 차가 제법 많았다. 새벽길을 달려 울진장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가 넘었다. 거리상으로는 350㎞ 정도지만 직접 가는 고속도로가 없는 탓에 시간이 걸린다. 울진 오일장에 가까워지니 예전 울진 유기농박람회가 생각이 났다. 또 생각이 난 것은 홑게, 허물 벗은 게를 회로 맛본 적이 있다. 껍질이 부드럽기에 살짝만 힘을 줘도 다리 살이 쏙 빠졌다.

울진 오일장은 읍내 바지게시장에서 열리는 장이 가장 크다. 2, 7장으로 이웃한 동해시 오일장보다는 작아도 제법 규모가 있었다. 바지게시장 주변으로 한쪽은 선수들이, 또 다른 쪽은 할머니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바지게시장의 오일장 다음날은 두 곳에서 오일장이 열린다. 울진의 대표 항구인 죽변과 후포 두 곳에 3, 8장이 선다. 같은 날 두 곳에서 열릴까 하는 의아함은 지도를 보는 순간 이해가 된다. 울진의 남쪽 끝이 후포, 북쪽이 죽변이다. 거리상으로 40㎞가 넘는다. 두 곳 시장을 다 둘러봤다. 죽변항은 규모가 작고 후포항은 규모가 제법이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장 1000원짜리 돌김, 투박하고 달디 쓴 바닷물이 입 안에 확~ 잡자마자 배에서 말린 배오징어를 홍게살과 함께 라면에 쏙~ 짬뽕 저리 가라다

울진 오일장의 주 품목은 보름나물이었다. 울진은 2월2일에서 3일 사이에 다녀왔다. 2월5일이 정월 대보름인 까닭에 할머니들 앞에는 오곡과 나물, 그리고 해풍 맞아 시커먼 시금치 등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구경하며 시장을 다니는데 김이 눈에 띄었다. 보통의 예쁘장하게 포장한 김이 아닌 기다란 모양새다. 바닷가 바위에서 자생하는 김을 뜯어 말린 것이다. 가격이 제법이었다. 한 장이 1000원 남짓. 김 100장에 2만~3만원 하는 것에 비해 서너 배 비쌌다. 열 장 단위로 판매했다. 가격을 묻고는 ‘떨이로 가져가라’는 할머니의 강권에 그냥 스무 장을 샀다. 김을 살짝 뜯어 먹었다. 곱창김이나 다른 김에서 느낄 수 없는 날것의 맛이 났다. 단맛이 있으면서 바닷물의 쓴맛도 있었다. 향은 여리면서 길게 났다. 동해안의 여러 장터를 다녔다. 저 위의 강원도 고성부터 부산의 기장까지 장터를 다녔어도 돌에서 붙어 자란 돌김은 울진장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돌김은 돌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돌김 포자를 뿌려서 수확한 것이다. 장에서 산 김은 돌에서 채취한 이름 모를 김이다. 다른 짓 하지 말고 불에 살짝 구워 먹으라는 이야기를 해주며 할머니는 매가리(전갱이)로 담근 젓갈 두 통뿐인 봇짐을 쌌다.

울진장 구경을 끝내고는 후포항에 있는 로컬푸드 매장을 구경하러 갔다. 겨울철인지라 딸기 외에는 꿀이나 가공품 위주다. 여기서는 딱 하나만, 홍게 다리 살 말린 것을 사려고 했다. 울진의 사회적기업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소일거리 삼아 만든 것으로 그냥 살짝 구워 먹어도 좋고, 라면 끓일 때 넣으면 게 향 물씬 나는 라면이 된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게살 사러 갔다가 떡 본 김에 오징어도 샀다. 보통의 오징어는 몸체에 붉은빛이 돈다. 시간이 지난 것은 타우린이 우러나와 하얀 분가루 같은 것이 있어 몸통을 뒤덮고 있다. 마른오징어 중에서 몸통 중심부가 검은 것이 있다. 일면 배오징어라 부른다. 잡자마자 배에서 말린 것이다. 오징어 상태에 따라 배오징어, ‘당일바리(냉동하지 않은)’, 마른오징어(냉동한)로 나눈다. ‘당일바리’도 맛있지만, 배오징어는 더 맛있다. 마른오징어인데도 씹을 때마다 감칠맛이 톡톡 터진다.

마른오징어를 먹을 때 몸통만 구워 먹는다. 귀와 다리는 남겨뒀다가 라면 끓일 때 넣는다. 이번에 산 홍게살과 함께 오징어 다리를 같이 넣으면 웬만한 짬뽕라면보다 더 맛있다. 오징어 다리 살을 좋아하는 이도 있겠지만 몸통보다는 맛없다. 물 끓일 때 같이 넣으면 오징어 특유의 구수함과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다.

경향신문

울진 오일장의 깨다시꽃게와 메주를 흥정하는 상인과 주민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꼼치·가자미·불볼락·깨다시꽃게…눈으로 씹어보고, 혀로 음미하고…바닷가 마을 시장엔 각양각색 나물도 많고 송이버섯 냄새도 은은
메주를 꺼내놓은 식당, ‘그래, 장맛은 보장되겠지’ 들어가니 반가운 횟대 식해·가자미 조림…겨울의 감칠맛을 제대로 보았다

다음날 후포항 오일장에 구경 삼아 갔다. 취재는 얼추 끝난 뒤라 진짜 구경으로 시장을 봤다. 전날 울진장보다는 규모가 작아도 싱싱한 수산물은 훨씬 많았다. 도루묵, 한치, 오징어, 청어, 현지에서는 붉은 게라 부르는 깨다시꽃게, 꼼치(미거지), 가자미 등등이 있었다. 한편에서는 다리 떨어진 대게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따로 쪄주지는 않는다. 그냥 올라갈까 하다가 다리 떨어진 대게를 샀다. 후포항 상가에서 게를 쪄서 나오다가 동해안에서만 나는 째복(비단조개)과 명주조개(개량조개)도 샀다. 슬쩍 구경 갔다가 장을 푸짐하게 봤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미리 조사하고 떠난다. 첫 번째 집에서 처절하게 실패를 했다. 게살이 올려진 음식이다. 먹어보니 게 맛도 네 맛도 아닌, 향은 없고 씹는 맛뿐이다. 게 산지에서 게로 만든 음식을 맛나게 그리고 저렴하게 먹은 것은 강원도 고성밖에 없는 듯싶다. 그다음을 찾아갔지만, 거기는 아예 문을 닫았고 상호마저 바뀌었다. 그냥 후포항 동네를 돌아다녔다. 숙소로 갈까 하다 한 번 더 돌아보다가 식당 한 곳에서 차를 멈췄다. 식당 문 앞에 붙은 “낚시한 것으로만 음식을 냅니다”에 꽂혔다. 혼자인지라 조심스럽게 식사할 수 있는지 물으니 앉으라는 대답. 생선찌개의 생선이 뭔지 물으니 오늘은 열기라고 한다. 게다가 무늬오징어볶음도 판다. 찌개와 무늬오징어볶음을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짐이 잔뜩 쌓인 작은 방에는 낚시용 아이스박스 몇 개가 보인다. 게다가 선수들만 알 수 있는 세월의 흔적까지 보였다. 다른 방에는 지깅릴부터 다양한 낚싯대까지 있었다. 제대로 골랐다는 확신이 들었다.

음식이 나오고 맛을 보니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열기(불볼락)는 구워도 조려도 맛있는 생선이다. 볼락류의 매운탕은 어느 생선과 견주어도 시원함이 전혀 밀리지 않는다. 지난 중문 오일장 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오징어의 황제 무늬오징어로 만든 볶음은 말하면 입만 아프다. 음식을 내주면서 오징어볶음에 밥을 비비라고 한다. 비빈 밥을 한 번 먹고 시원한 열기 매운탕을 먹었다. 반찬도 맛있지만 두 가지만으로 밥 한 공기 뚝딱이다. 후포식당 010-6619-9985

첫날 저녁에는 죽변항으로 갔다. 숙소도 근처에 잡았다. 아침에 열리는 경매를 볼 생각이었다. 원래는 저녁으로 야생버섯 찌개를 먹을 계획이었다. 울진은 태백산맥의 끄트머리로 가을이면 이웃한 영덕, 봉화와 함께 송이버섯을 많이 생산하는 곳이다. 울진 하면 바닷가에서 나는 것만 생각하는데 산 깊은 울진의 버섯 또한 좋다.

구경 삼아 후포항을 거닐었다.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 구경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점심처럼 한 식당에 꽂혔다. 울진 여행에서처럼 계획대로 뭘 먹지를 못하고는 우연히 마주친 식당에서 해결했다. 이번에는 문구가 아니라 식당 앞 메주를 보고 80% 선택을 했다. 웬만한 식당에서는 메주로 된장을 담그지 않는다. 오일장에서도 나물 다음으로 관심을 끌던 것이 바로 메주, 정월 대보름 전후로 장을 담그기에 그렇다. 메주를 식당 앞에 꺼내 놓고 있다는 것은 곧 장을 담근다는 의미다. 게다가 식당 입구에 붙여놓은 여러 내용 중에서 식해 주문받는다는 문구에 나머지 20%를 채웠다. 식해라는 것은 생선에 찐 곡식,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고 버무린 다음 숙성한 것이다.

이 집은 가자미와 횟대, 두 종류의 식해를 팔고 있었다. 아니 선택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듯싶었다. 버섯찌개는 다음으로 미루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택은 탁월했다. 횟대로 식해를 담그고 있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자미조림을 선택했다. 동해안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가자미가 기름가자미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니 이내 상이 차려진다. 식해 주문받는 곳이니 식해가 찬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횟대와 가자미로 만든 식해가 나왔다. 가자미조림보다 식해를 먼저 맛봤다. 살짝 나는 젓갈 냄새 다음에 매운맛 조금과 감칠맛이 쏟아졌다. 대게와 홍게 고장에서 맛보는 제대로의 바다 것이었다. 기름가자미 조림도 맛났지만, 식해나 같이 나온 깻잎지가 훨씬 맛있었다. 조림이 아닌 식해를 주문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파도식당 (054)783-8123

울진 오일장이 100번째 시장이다. 2019년 1월24일 인천 어시장을 시작으로 만 4년이 지나고 있다. 모든 게 독자 여러분 덕이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김진영

경향신문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김진영 MD

▶ 나는 뉴스를 얼마나 똑똑하게 볼까? NBTI 테스트
▶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 10시간 동안의 타임라인 공개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