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과점 체제 해결 지시로 은행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은행 간의 금리 경쟁을 유도함과 동시에 스몰 라이선스 등을 통한 '작고, 특화된 은행' 도입이 논의될 예정이다.
16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5대 은행의 예수금 시장 점유율은 73.5%로 집계된다. 국민 10명 중 7명은 5대 은행의 예금상품을 이용한다는 의미다. 5대은행의 대출금 시장 점유율은 63.1%다. 가계대출로 범위를 좁히면 점유율은 더 상승한다.
5대 은행의 과점 형태는 금융산업경쟁도평가위원회의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은행권의 총 자산기준 CR3(상위3사 시장집중도)는 2021년말 기준 61.4%에 이른다. 통상 시장집중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CR3가 60% 이상이면 과점시장으로 본다. 국내 은행업의 시장 경쟁도는 OECD 국가 중 중하위권이다.
국내 일반은행은 1998년 외환위기 직전 26개에서 부실은행 구조조정, 은행 간 인수·합병 등을 거치며 12개로 줄었고, 이후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했다. 인터넷은행 등장 후 은행업의 경쟁이 다소 늘었으나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
특히 최근 역대 최고 수익을 낸 주요 은행 등이 성과급과 희망퇴직으로 '돈잔치'를 벌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날 윤 대통령은 "우리 은행 산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고 지적하고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금융당국에 지시했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은행 간 △예대금리차 공시 및 대환대출 플랫폼, 예금 비교 추천 플랫폼 등을 통한 경쟁 강화 △금융 영업장벽을 낮춰 유효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 등으로 검토될 예정이다.
은행업 내 경쟁 촉진은 꾸준히 제기된 문제다. 과점 상태에서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해 대출로 수익을 내는 이자장사가 굳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핀테크와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이 은행 업무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고, 경쟁을 통한 혁신도 필요한 시기다.
금융당국은 은행업 인가단위를 세분화하는 '스몰 라이선스'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스몰 라이선스는 소규모, 특화 금융사를 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인허가 단위를 세분화해 진입요건을 완화하는 방식이다.
우선 최저자본기준을 완화해 은행업 진입을 보다 수월하게 하는 방안이 꼽힌다. 현재 전국 단위 은행업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0억원의 최저자본금이 요구된다.
자본금 등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대신 사업자는 영업모형을 만들어 인허가를 신청해야한다. 투자업무를 제외한 예금, 대출 업무만 하거나 영업대상을 소상공인·중소기업 등으로 한정해 인허가받는 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금융과 벤처투자에 특화된 충청권 은행 설립을 국정과제에 포함해 추진 중이다.
해외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기존 은행권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서 '스몰 뱅킹 라이선스'가 탄력을 받았다. 영국과 호주에서는 일정기간 낮은 자본금이 적용되는 대신 예금한도와 업무범위에 제한을 둔 스몰 뱅킹 라이선스를 운영 중이다. 운영 과정을 보고 정식은행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대출 등 제한적 범위에서 은행업 인허가를 내주되 예금 업무가 금지된 방식을 이용 중이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금융산업경쟁도평가위는 업무행위 리스크에 비례하는 건전성규제 등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현재 은행법, 인터넷전문은행법, 저축은행법과 전자금융거래법 등으로 나눠진 법안을 '은행업법'으로 통합해 운영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에 논의한 스몰 라이선스 방식도 TF에서 재논의될 것"이라며 "금융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우선 금리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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