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율 인상, 찬반 절반으로 팽팽… 폐지는 반대
"청년 주머니 생각도… 개혁하려면 더 적극 소통을"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직원들이 국민연금 지급 신청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개혁 작업이 본격화된 국민연금에 대해 2030 청년세대는 "미래에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여전히 불안하다"면서도, "노후 보장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절반가량은 국민연금 제도 유지를 위해서라면 "보험료율을 올려도 좋다"고 했다.
한국일보가 22일 개혁 논의가 본격화한 이후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당초 연금에 대한 인식은 어땠는지, 최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의 개혁안 논의를 보며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만 20~34세 청년 5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금 개혁에서 청년들의 생각이 중요한 것은 기성세대에게 지급할 연금을 미래세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결국 청년층이 동의해야 연금 개혁도 성공할 수 있어, 정부는 3대 개혁 과제(노동·교육·연금) 중 유독 국민연금에 대해선 청년층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년들은 '국민연금 기금 2055년 소진', '보험료율(현행 9%) 12~15% 인상', '의무가입 상한 연령 65세 상향' 등 검토 내용이 알려지자 즉각 반응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국회 연금특위가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조정 등 모수개혁보다 기초연금·퇴직연금·사학연금 등 다른 연금 간의 통합 등 구조개혁을 우선 진행하기로 하자 청년들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국민연금 불안감, 기금 고갈론에 더 강해졌다
한국일보가 만 20~34세 청년 5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최근 연금 개혁 관련 보도와 정부 발표를 본 이후, 34명은 '더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답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청년 50명 중 34명은 국회 연금특위의 개혁 논의 이후 "국민연금에 대한 인식이 더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답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권준오(26)씨는 연금 기금 소진 시점이 2057년에서 2055년으로 앞당겨졌다는 재정추계(시산) 결과에 대해 "미래에 연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커졌고, 또래와 공유하는 정서 역시 그렇다"며 불안해했다. 경남 창원에서 회사를 다니는 최한얼(27)씨도 "사회초년생이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 힘든데 보험료율이 얼마나 오를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개혁 논의 이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답한 청년은 7명이었다. 서울에 사는 대학생 이일중(24)씨는 "예상보다 적게 받겠지만 지금이라도 연금을 개혁한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나라에서 주겠다는데 설마 못 받겠냐"고 반문했다.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한 청년은 9명이었다.
한국일보가 만 20~34세 청년 5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27명은 '미래에 연금을 못 받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청년들이 떠올리는 국민연금에 대한 이미지는 '불안감'이 우선 꼽혔다. 기금이 빨리 고갈될 것이란 이야기가 반복되고,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악화 등 어두운 전망만 가득한 탓이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안나현(23)씨는 "공무원인 언니가 '연금 못 받게 생겼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일반인인 난 오죽할까 싶다. 기금 고갈 등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 때문에 매우 불안하다"고 말했다.
50명 중 33명 "연금 폐지 안 돼… 사회 위해 유지해야"
한국일보가 만 20~34세 청년 5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연금 폐지론에 대해 33명은 '어떻게든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런 불안감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청년들을 중심으로 '이럴 거면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지금까지 낸 돈은 돌려달라'는 성토가 나온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 참여한 청년 중 33명은 "연금 폐지는 반대"라고 선을 그었다. 그래도 노후를 위한 마지막 보루이자 생계가 막막한 노인이 기댈 유일한 제도란 생각이다. '사적연금보다는 국민연금이 낫다'는 의견도 많았다.
강원도에서 일하는 직장인 박모(32)씨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인 빈곤율 1위라고 하는데, 국민연금을 없애면 가난한 어르신은 어떻게 사느냐"고 지적했다. 직장인 황모(31·서울)씨는 "시중에 나온 연금 상품 중 국민연금만큼 수익률이 높은 걸 못 봤다. 사적연금은 대체제가 아닌 보완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연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답한 김모(34·서울)씨는 "낸 보험료에 물가상승률을 적용해 돌려준다면 받고 싶다. 각자도생이 낫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에서 일하는 김자안(29)씨도 "국민연금은 '폰지사기'와 다를 바 없는 시한폭탄 같다"고 했다.
보험료율 인상 시 "정부의 친절한 설명 반드시 필요"
한국일보가 만 20~34세 청년 5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보험료율 인상에 대해 묻자 찬성과 반대가 각각 25명으로 팽팽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청년 응답자의 절반은 연금제도 유지를 위해 "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한 제도에 왜 내 돈을 써야 하느냐"고 했다. 최근 경제 악화와 난방비·전기요금 폭등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반대한 청년들은 "청년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달라"고 토로했다. 충북 제천에서 일하는 김지수(22)씨는 "안 그래도 오르는 물가와 세금이 부담스러운데, 사회초년생의 급여로는 보험료가 부담스럽다"고 고개를 저었다.
"청년, 기성세대와 돈에 대한 인식 달라, 맞춤형 설명 필요"
한국일보가 만 20~34세 청년 5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지급 보장 명문화에 대해 응답자의 32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부는 국민연금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지급 보장'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응답자 중 32명은 이에 "신뢰도가 크게 오를 것 같다"고 찬성했다. 하지만 반대한 17명 중 대학생인 문준호(21·인천)씨는 "법은 또 바꾸면 그만 아니냐. 명시되는 순간 특정 세대의 희생이 불 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가 만 20~34세 청년 5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현재 연금 개혁 작업에 대해 응답자의 16명은 '청년을 위한 맞춤형 설명이 부족하다', '청년에게 책임을 넘기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청년들은 정부가 연금 개혁에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년의 의견을 듣겠다면서 정작 청년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강정현(23)씨는 "개혁한다는 말만 반복하지 정작 국민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이솔아(23·광주)씨는 "불만만 잠재우려고 하는 것 같다. 보여주기식 행정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대전에 사는 한모(33)씨는 "지금의 청년세대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어렵고 금융시장에서 자산을 잃어 본 경험이 있어 돈에 대해선 기성세대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며 "연금이 지속돼야 하는 이유, 청년이 기여해야 하는 이유를 청년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전나경 인턴기자 jnak0215@gmail.com
임지선 인턴기자 gisun1012@naver.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