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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反난민’ 거세지는 유럽… 英, 불법이민자 무조건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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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민 늘수록 사회불안 심각

수낙 英총리, 오늘 佛 마크롱 만나

불법이민 원천봉쇄 새 협정 논의

조선일보

지난 달 26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남부 해안가에서 이주민들이 타고 오던 배가 전복돼 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이 사고로 최소 30명이 숨졌다고 이탈리아 당국은 밝혔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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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주요 국가들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보트 난민’ 등 불법 이민자에 대해 ‘불관용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지중해상의 난민 구조선 활동을 “불법 이민을 부추긴다”며 제한하고 나선 데 이어, 영국이 도버 해협을 건너 불법적으로 넘어오는 난민을 모두 추방하고 재입국을 금하는 입법을 하기로 했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10일(현지 시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불법 이민을 원천적으로 막을 새 협정도 논의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반(反) 난민 여론이 커지고 있다. 유럽의 언론 매체들은 “불법 이민자 증가가 중요한 사회 불안 요인으로 부각되며 정당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자 각국 정부가 적극 대응에 나섰다”고 보도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7일 사전 허가(비자) 없이 불법 이민을 시도한 모든 외국인에 대해 영국 체류를 허용하지 않고, 영국 도착 후 4주(28일) 내에 본국으로 송환하거나 제3국으로 추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불법 이주민 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도버 해협을 통해 영국에 무단 상륙한 보트 난민, 이 해협 아래 해저터널을 지나는 화물차에 숨어 밀입국한 사람 등이 대상이다. 이들은 추방되기 전 영국에 머무는 동안 망명 신청이 금지되고, 별도의 시설에 격리 구금된다. 또 한 번이라도 불법 입국을 시도했던 사람은 영구적으로 영국 입국이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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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7일(현지 시각) 런던 총리 관저에서 ‘불법 이주민 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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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낙 영국 총리는 이날 ‘보트를 멈춰라(Stop the Boats)’라고 쓰인 총리실 회견장 단상에 올라 “불법 이민은 영국의 납세자들과 합법적으로 영국에 이주해온 이들에게 불공정하다”며 “이 법이 매우 엄격해 보이겠지만 꼭 필요하고, 공정한 조치”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영불해협을 통해 들어온 불법 이민자는 4만6000명에 달한다. BBC는 “올해 들어서 벌써 약 3000명의 불법 이민자가 들어왔다”며 “이런 추세면 올 한 해 불법 이민자 수가 8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강경책은 영국이 처음이 아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해 9월 총선을 앞두고 “지중해를 넘어오는 보트 이민을 막기 위해 해군을 동원, 북아프리카 해안을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리가 된 후에는 지중해의 난민 구조선을 “불법 이민 셔틀(왕복선)”이라고 비판하며 난민 구조선의 구조 활동 횟수를 제한하고, 이탈리아 정부가 미리 지정한 항구에만 입항토록 하는 규제법을 제정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중해를 통해 이탈리아로 들어온 난민은 지난해 10만5000여 명, 올해 들어서는 1만4000명을 넘어섰다.

서유럽 주요국들은 불법 이민 문제에 유럽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멜로니 총리는 유럽연합(EU)이 나서 불법 이민자 수출국인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를 직접 압박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유럽행 불법 이민 통로 중 하나인 발칸반도 서부의 경우, EU가 직접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세르비아 등 이 지역 국가에 외교적 압력도 넣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 100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을 받았던 독일도 “유럽 각국이 짐을 나눠 져야 한다”며 보수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최근 세력이 커진 극우 정당들이 앞장을 섰다.

영국은 프랑스와 공동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양국은 지난해 11월 프랑스가 해안 감시를 통해 난민 보트의 출발을 막으면 영국이 7220만유로(약 1075억원)의 비용을 대기로 약속했다. 수낙 총리는 10일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으로 프랑스를 찾아 마크롱 대통령과 추가 협력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오스트리아는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추가 수용을 거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불법 이주민 입국을 막기 위해 슬로베니아 등 서부 발칸 쪽 국경 수비 병력을 대폭 증강했다.

유럽은 그동안 아프리카와 중동발 불법 이민에 관대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인도주의라는 명분에 더해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를 쉽게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의 경제 사정이 악화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복지 비용 문제가 대두되고, 소외된 이민자들이 범죄와 테러 등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됐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스웨덴에서 극우 성향 정당이 급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은 “이민자 가정 출신의 수낙 총리가 불법 이민 강경책을 내놓은 배경엔 브렉시트 이후 경제 악화로 급락한 보수당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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