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전남 광양장
광양은 크게 제철소가 있는 지역과 광양읍이 있는 지역으로 나눌 수가 있다. 광양장은 제철소와 떨어진 광양읍에서 매 1, 6이 든 날에 열린다. 커다란 시장 건물과 주변으로 장이 들어선다. 아침 일찍이라 사는 사람보다는 파는 사람이 더 많았다. 파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곧 사람이 몰린다는 방증이다. 사람 없는 장은 파는 사람도 적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몇 바퀴 도니 살 것이 보였다. 씀바귀, 냉이를 비롯해 지난 울진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쑥도 여러 곳에서 팔고 있었다. 보랏빛 살짝 도는 나물이 있길래 여쭈었더니 할머니 왈, “씹나물,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치면 맛나”. 이름은 생소하지만, 모양새는 익숙하다. 씀바귀를 그 동네에서 저리 부르는 듯싶다.
도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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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에서는 낯선 생선이 보였다.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없는 생선이다. 이름을 물으니 “통금생이”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광양장 구경 끝내고 이웃한 여수 선어 시장을 잠시 들렀다. 거기에도 통금생이가 있었다. 거기서는 광양 이름에서 ‘생’이 빠진 ‘통금이’로 통했다. 원래 정식 명칭은 통구멍으로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고 한다. 그런 사냥 습성으로 인해 눈이 하늘을 향해 있다. 이런 물고기의 특성이 입이 커야 하기에 대가리가 크다. 매운탕용으로 아주 좋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스타게이저(Stargazer, 천문학자)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작은 물고기에게는 저승사자다. 통구멍 옆에는 낯선 가자미가 보였다. 모양도 낯설고 이름도 낯선 ‘담베’ 또는 ‘담배’란 이름으로 불리는 녀석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김새는 낯설지만 이름을 들으면 “아~” 소리를 낸다. 이 녀석의 이름은 바로 ‘도다리’다. 봄이면 으레 찾는 도다리쑥국의 그 주인공이다. 쑥국 먹을 때 나온 생선 생김새와는 다른 이유는 도다리라 알고 먹었던 모든 쑥국에는 가자미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도다리로 끓인 쑥국은 거의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가자미나 도다리는 봄에 산란한다. 이미 산란을 끝낸 것은 살이 쏙 빠져 있다. 사실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도다리가 아니라 쑥이다. 지금이야 사시사철 채소를 구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대보름이 지나면서 김장김치는 시어 터진다.
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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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바다, 그리고 산을 품어
철의 도시지만 포근한 광양 5일장
도다리·가자미에 매몰되어 있는 쑥국
흰살생선 쏨뱅이를 넣어 보자
요리 젬병도 라면 끓이듯 하면 끝~
익숙한 조합보다 훨씬 기막히다
어딜 가도 쉽게 볼 수 없는 통금이는
매운탕으로 끓여먹기에 제격
포일에 싸서 굽기만 하는 백합구이
벚굴·제첩이 범접 못할 진미다
처음으로 봄을 알리는 채소 중에 쑥이 있다. 모자란 비타민 공급에 이만한 것이 없었다. 봄이 오면 산란하기 위해 얕은 바다로 물고기가 몰린다. 좋지 못했던 어구에도 차고 넘치게 잡을 수 있어 제철이라 여겼다. 산란의 시기로는 제철이 맞지만, 맛의 관점에서는 철이 지난 시기가 산란 철이다. 산란 철의 생선이 가장 맛없기 때문이다.
시장 구경하며 쑥을 샀다. 작은 바구니에 5000원이었다. 쑥 한 바구니 사고는 맛없는 가자미나 도다리를 사지 않고 흰살생선인 쏨뱅이를 샀다. 쑥국을 끓이기 위함이다. 미역국을 생각해보면 재료+미역국 구성이 꽤 많다. 소고기, 닭고기, 전복, 조개, 황태 등등 들어가는 재료가 다양하다. 쑥국은 이상하리만큼 도다리에 매몰되어 있다. 물 좋은 생선이 있다면 쑥국의 재료가 되고도 남는다. 쑥국 끓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요리 젬병도 라면 끓이듯 끓이면 된다. 물을 끓인 뒤 된장을 푼다. 공장식 된장보다는 제대로 발효 숙성한 된장이 깊은 맛이 있어 좋다. 생선을 넣고 한소끔 끓이면 된다.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을 치면서 간을 보면 거의 완성이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쑥을 넣으면 모든 요리가 끝난다. 생각보다 쉽다. 라면 끓이는 시간이면 쑥국이 완성된다.
쏨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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쏨뱅이로 끓인 쑥국은 가자미로 끓인 쑥국보다 정확히 삼천육백 배 맛있다. 쏨뱅이는 맛있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어종. 특히 매운탕이나 맑은탕 재료로 톱 오브 톱이 쏨뱅이다. 거기에 된장의 들쩍지근한 맛에 진한 쑥의 향이 더해지니 이보다 맛날 수가 없다. 우럭이나 볼락 등등 어느 흰살생선이라도 쑥국의 재료가 된다. 봄의 향을 즐기는 데 굳이 가자미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씀바귀무침까지 더한다면 봄맞이로 더할 나위 없다. 쑥국 끓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쑥 넣고 바로 불을 끄거나 아니면 국을 뜨기 직전 넣어야 향이 제대로 산다. 푹 끓이면 쑥의 향이 반감한다. 이른 봄, 쑥의 향을 즐기기에 끓이는 것이 쑥국이다. 쑥만 넣기 심심하니 다른 것을 넣었을 뿐이다. 쑥이 주인공이다. 쑥 한 바구니 5000원, 쏨뱅이 2만원으로 차린 봄 밥상이다.
광양은 매실이 유명하다. 한동안 청매실로 청을 담그는 것이 유행했다. 전국에 매실 열풍이 불 정도로 봄이면 매화 꽃구경, 여름 초입이면 푸른 매실로 청을 담갔다. 매실 종류가 많아도 황매실이라는 품종은 없다. 청매실을 따서 하루 정도 두면 푸른 매실이 노랗게 변할 뿐이다. 푸른 매실을 나무에서 익히면 노랗게 변하다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다. 익은 매실의 향은 청매실의 향이 비빌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익은 매실을 베어 물면 덜 익은 자두 먹는 것처럼 새콤한 맛에 단맛이 아주 살짝 비치는 정도다. 대신 향은 오래간다. 익은 매실로 담근 것은 음료용으로 좋다. 청매실은 요리용으로 추천한다.
백합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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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은 바닷가다. 광양에 강이 있다고 하면 살짝 놀란다. 섬진강이 하동과 광양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흐르고 있지만, 섬진강은 왠지 하동에만 흐를 것같이 생각한다. 섬진강이 광양 사이를 지나기에 재첩이 나고 백합이 난다. 매화 필 무렵부터 커다란 벚굴이 나기도 한다. 대부분 꽃구경 왔다가 벚굴을 선택한다. 필자의 선택은 벚굴이 아닌 백합이다.
봄과 여름 사이에 산란하는 조개는 지금이 제철이다. 특히 조개의 제왕 백합은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의 모래펄 지역에서만 난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모이는 강화도에서 맛있는 백합이 생산되는 것이 같은 이유다. 한때는 부안 지역이 백합 생산지로 유명했지만, 새만금으로 강물과 바닷물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막히면서 백합은 이웃한 고창에서 많이 나기 시작했다. 전골, 죽, 회무침, 구이로 즐길 수 있는 백합이다. 오랜만에 백합구이를 선택했다. 백합을 포일에 싸서 굽는, 아주 단순한 요리다. 재료가 좋으면 방식은 간단해도 완성도는 최고의 요리가 된다. 그 요리가 바로 백합구이다. 첫 번째 포일을 조심히 벗겨서는 조개에서 나온 물을 초장 그릇에 따른다. 조개의 향이 초장에 잘 섞이게 하기 위함이다. 그다음부터는 잘 익은 조갯살을 먹으면 천하일미다. 벚굴, 재첩이 범접할 수 없는 백합만의 맛이 있다. 봄철 광양에서 간다면 백합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벚굴이 유명한 망덕포구 주변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 굴보다는 백합이다.
씀바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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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불고기는 즉석에서 양념한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 요리다. 여럿이 먹기에 좋지만 혼자 여행하는 이에게는 부담스럽다. 광양읍에서 고기로 메뉴를 선택한 1인이라면 여기를 추천한다. 국내산 암소의 등심, 안심, 채끝을 채소와 함께 커다란 철판에서 구워준다. 예약하면 부위를 선택할 수 있지만, 예약 없이 가면 그날 있는 부위 중에서 여유 있는 부위를 먹어야 한다. 예약 없이 가서 선택 없이 먹은 부위는 채끝이었다. 고기양은 섭섭하지 않을 정도인 200~250g, 일반 고깃집의 1인분 양보다 많다. 같이 나오는 찬은 하나하나 공력이 깃들어 있다. 많은 찬을 내기보다는 정성을 들여 만드는 몇 개의 찬이 훨씬 낫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정식이나 고깃집의 가짓수만 많은 거보다 낫다. 밥은 따로 없고 라면이나 누룽지를 선택할 수 있다. 혼자도 좋고 여럿이라면 더 좋다. 광양에서 고기가 당긴다면 여기다. 혼고기바 010-2787-3472
▶ 김진영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8년차 식품 MD.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8년차 식품 MD.
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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