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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비자금 냄새’ 전두환 아들 와인은 왜 한-미 정상 만찬에 올랐나 [논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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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손자의 폭로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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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썰] ‘전두환 비자금 냄새’ 와인은 왜 한-미 정상 만찬에 올랐나. 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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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지난 14일부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가족과 지인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그는 “제 할아버지가 학살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라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라며 “제 가족이 행하고 있을 범죄·사기 행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폭로에 나섰다고 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으로 정권을 찬탈했던 전두환은 1997년 내란·뇌물수수 등 혐의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의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두환과 그 일가는 추징금 납부를 요리조리 피해나갔고, 지금까지 환수된 금액은 추징금의 58%인 1282억여원에 그쳤습니다. 전두환이 자진 납부한 것은 300만원이 고작입니다.

전두환은 2003년 4월 추징금 환수를 위한 재산 명시 관련 재판에서 “기업한테서 뇌물을 받은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게 받은 돈을 민정당 관리 등 정치 활동에 다 써서 남은 게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예금·채권 내역이 ‘29만1000원’이라고 밝혔지만 이후에도 골프를 치러 다니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전두환은 추징금 922억여원을 미납한 채 2021년 11월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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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결혼 축하금 160억, 페이퍼컴퍼니…

이번 전우원씨의 폭로가 관심을 끄는 것은 전두환의 후손들이 여전히 막대한 부를 누리며 호화롭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자금의 꼬리를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우원씨는 자신의 삼촌인 전두환의 셋째 아들 전재만씨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다나 에스테이트라는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와이너리는 정말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사업 분야다. 검은돈의 냄새가 난다.”

이 와이너리는 전재만씨와 그 장인인 이희상 전 동아원 회장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자산 가치가 10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인과 사위의 금전 관계가 수상합니다.

지난 2013년 <한겨레> 보도를 보면, 1995년 결혼 당시 이희상 회장은 ‘결혼 축하금’ 명목으로 160억원 규모의 채권을 전재만씨에게 건넸습니다. 당시 검찰은 여기에 전두환 비자금이 포함돼 있다고 보고 압류했지만 법원은 입증이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전재만씨는 서울 한남동 고급주택가의 100억원대 빌딩도 장인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전재만씨는 이 빌딩을 준공해 1997년 1월 등기를 한 뒤 이듬해 빌딩을 팔았다가 2002년 되샀습니다. 건축주가 빌딩을 짓고 팔았다가 다시 사들이는 비정상적인 거래 행태를 보였는데, 이 시기가 1997년 전두환 추징금 확정판결이 나온 시점과 맞물립니다. 추징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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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원씨는 자신의 큰아버지, 즉 전두환의 장남인 전재국씨에 대해서도 “바지사장을 내세워 운영하는 회사만 제가 아는 게 몇백억원 규모”라고 주장했습니다.

출판사 시공사를 통해 출판 재벌로 성장한 전재국씨에 대해선 그동안에도 초기 사업 자금의 출처가 의심스럽다는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또 전두환 추징금 확정판결이 나온 이듬해인 1998년부터 부동산을 집중 매입하고 사업체를 늘려나갔는데, 당시 수억원대에 그친 시공사 영업이익에 비춰 비정상적인 사업 확장이라는 의심의 눈길도 있었습니다. 전재국씨는 2004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도 2013년에 드러난 바 있습니다.

3대째 상속되고 있는 비자금의 긴 꼬리


전우원씨는 아버지인 전재용씨에 대해서도 “제 아버지와 새어머니(박상아씨)는 출처 모를 검은돈을 사용해가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재용씨는 과거 외삼촌 이창석씨와 자금 거래를 하며 재산을 불렸습니다. 이순자씨 남동생인 이창석씨는 뚜렷한 이유 없이 자신 소유 땅을 전재용씨에게 헐값에 넘겨 수백억원의 이익을 안겨주는가 하면 거액의 사업 자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창석씨는 전재용씨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개발업체 ‘비엘에셋’에 161억원을 빌려주는가 하면 여러 업체를 함께 운영하며 부동산 사업 등을 벌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자금을 세탁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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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전우원씨는 자신도 수십억원대의 증여를 받았는데 구체적으로 ‘비엘에셋’ 회사 지분 20%, ‘웨어밸리’ 회사 비상장 주식, 준아트빌이라는 고급 부동산 등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비엘에셋은 앞서 이창석씨가 자금을 빌려준 회사이고, 웨어밸리도 전재용씨가 설립한 회사로 2013년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비자금이 흘러든 것으로 의심되는 회사들이 추징을 피해 3대째 후손들에게 상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전우원씨는 자신의 사촌형제들이 물려받은 재산은 더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우원씨는 이밖에도 “연희동 자택에 구비되어 있는 스크린 골프시설”, 고모인 전효선씨 자녀의 “호화 결혼식”, “초호화 호텔에 며칠씩을 빌려 가며 풀코스로 가족들 전원이 음식을 시켜먹고” 등 전두환 일가의 호화 생활상을 전했습니다. 자신도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직장 생활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일년에 몇억씩 하던 자금들 때문”이라며 “깨끗한 돈은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전두환 일가가 보유한 막대한 재산이 ‘검은돈’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구체적으로 제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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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님의 침실 옆에 큰 유리가 있다. 그게 옆으로 슬라이드가 된다. 거기에 현금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할머니께서 연희동 자택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계좌로 학자금을 지원해줬다.”

“어머니가 연희동 자택 금고 안에 엄청난 비자금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시고 이혼 위자료를 받으셨는데 그 돈이 정당한 돈이라면 은행에서 인출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인들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었다.”

“돈의 출처는 그들(가족)인데 서류상의 시작은 지인들로부터 나오게끔 했다. 예를 들어 웨어밸리도 경호원이 설립하게 해서 그런 조직들을 양도하는 것이다.”



추징 협조하겠다더니 돌변한 전두환 일가


숨겨놓은 전두환 비자금을 찾아내 추징하기 위해 그동안 검찰이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우원씨의 폭로를 접한 많은 시민들은 과연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미심쩍어합니다.

1997년 추징금 2205억원 확정판결이 나온 뒤 10년이 지나도록 추징 액수는 미미했습니다. 검찰은 2013년에야 미납 추징금 전담 추적팀을 설치하고 본격 수사에 나섰습니다. 같은해 ‘전두환 추징법’이 국회를 통과해, 제3자가 불법재산임을 알고도 취득한 경우 그 재산도 추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압박이 이어지자 전두환 쪽은 2013년 9월 장남 전재국씨가 나서 남은 추징금 1672억원 납부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전재국씨는 “앞으로 저희 가족 모두는 추징금 완납 시까지 당국의 환수 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며 90도로 허리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약속을 뒤집고 재산을 지키기 위한 법적 싸움에 나섰습니다. 2018년부터 연희동 자택 압류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내고 ‘전두환 추징법’에 대해서도 위헌소송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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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2020년 ‘전두환 추징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연희동 자택의 경우 대법원은 본채와 정원에 대해선 ‘불법재산으로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압류가 무효라고 판단했고, 별채에 대해선 압류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2022년 내렸습니다. 그러나 추징 당사자인 전두환이 그 사이 사망함에 따라 추징을 집행할 수는 없게 됐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추징금 922억여억원은 더 이상 환수할 방법이 없는 걸까요?

현행법상으로는 어렵습니다. 다만 범죄 수익의 몰수·추징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한 ‘추징 3법’이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이 가운데는 추징금을 미납한 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그 상속재산에 대해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형사소송법 개정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 법안들은 지난 2021년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는데 아직 본격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입법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입법이 이뤄지더라도 전두환이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소급 적용’을 해야 하고, 이 경우 전씨 일가가 위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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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큰 손자의 말 “할아버지는 학살자”


전우원씨의 발언 중에서 ‘검은돈’ 못지 않게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할아버지는 학살자”라는 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학살자다, 영웅이 아니다, 범죄자다, 이렇게 얘기한 것은 상당히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죠. 제3자가 이야기하는 거야 쉽잖아요. 그런데 자기 친손자가 우리 할아버지는 영웅이 아니라 학살자고 범죄자다, 이 말은 상당히 울림이 클 거예요. 역사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도 클 거고.”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 15일 KBS ‘최영일의 시사본부’)

전우원씨는 “광주 사태로 인하여 무고하게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신 모든 분들의 고통이 느껴진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아버지인 전재용씨는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아들은 심한 우울증으로 입원 치료를 반복했다”며 “아비로서 아들을 잘 돌보지 못한 제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폭로를 정신질환 탓으로 돌려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전우원씨는 이를 예견한 듯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나와 지금 몇달간 일을 잘했다”고 미리 해명성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17일 새벽 에스엔에스를 통해 ‘마약 범죄를 자수하겠다'고 예고한 전우원씨는 유튜브 방송 도중 마약이라고 언급한 알약을 먹었고, 현지 경찰로 추정되는 외부인들이 진입한 뒤 방송이 종료됐습니다. 전씨는 앞서 “제가 마약범이라는 거를 다 공개를 하고 있는데 제가 감옥에 안 간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믿고 살아가겠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안쓰러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전씨의 정신적 건강 상태를 왈가왈부 하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책임자에게 “학살자”라고 말하는 게 정상입니까, 아니면 이 죄과에 침묵하고 아무런 참회나 반성도 하지 않는 게 정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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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학살의 책임에 대해 한마디 인정도 참회도 하지 않고 사망했습니다. 아내 이순자씨는 전두환의 영결식에서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특히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두루뭉술한 말로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했습니다. ‘무엇’에 대해 ‘누구’에게 사과하는지조차 불분명한 이 ‘대리 사과’에 걸린 시간은 단 15초였습니다. 이씨는 2017년 자서전에서 전두환의 5·18 책임에 대해 “정략적인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고 2019년에는 “남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궤변을 늘어놨습니다. 전두환의 자녀들도 아무런 죄책감을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정신적 질병 상태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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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지우려는 국민의힘의 비정상 역사인식


전씨 일가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특히 현 집권세력 내부에서 5·18 학살의 책임과 역사적 정의를 덮으려는 목소리가 틈만 나면 비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3일 국회에 출석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허위로 판명된 ‘북한 개입설’을 국회 공개석상에서 되풀이한 것입니다. 이미 2020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주장을 했던 김 위원장에 대해 지난해 임명 당시부터 임명 철회 요구가 일었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통합에 기여할 적임자”라며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또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한 자리에서 전 목사가 “(김기현 대표가)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아느냐. 전라도는 영원히 10%”라고 하자,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이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뒤집은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5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했는데, 이게 모두 정치적 쇼에 불과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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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환영 만찬에는 전재만씨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이 사용됐습니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와 그의 비자금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우리 사회, 특히 현 집권세력 내부에서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 드러낸 상징적 풍경이라고 할 만합니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는 불현듯 낯선 방식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추악한 전두환 비자금의 잔여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리고 역사적 정의를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해답은 우리 모두가 함께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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