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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신입이 눈치 없이 어떻게 다 써요"…연차 다 못쓰는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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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양윤우 기자, 유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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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설 연휴를 마친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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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제 개편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주어진 연차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연차 사용에 대한 유연한 사내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연 평균 17일의 연차 휴가를 부여받고도 실제 11.6일만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쓰지 못한 휴가가 5일 이상인 것이다.

조직 규모가 300인 이상인 사업장은 사용 휴가 횟수가 약 12일이었다. 그러나 임시·일용 근로자는 약 6일, 시간제 근로자 등 5인 미만 규모의 조직이나 특수형태근로자·플랫폼 종사자는 약 9일로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실태조사는 지난해 9월 20일부터 10월 7일까지 전국 만 19~59세 2만2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비교적 자유분방하다고 평가받는 2030세도 연차를 쓰기 어려워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20대 응답자(176명) 중 '연차를 자유롭게 못 쓴다'는 비율이 62.5%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또 20대 응답자의 55.1%는 지난 한 해 쓴 연차휴가가 '6일 미만'이라고 답했다. 연차 휴가 사용일이 6~8일이었다는 20대 응답자는 13.6%였다. 법정 의무 연차휴가 15일(근로기간 2년차 이상)을 모두 썼다고 응답한 이들은 9.7%에 그쳤다.


"연차 내고 일해요…일 많고 눈치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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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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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 직장인들이 연차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원인으로는 △대체인력 부족 △상사 눈치 △업무량 과다 △조직 분위기 등이 꼽혔다.

마케팅 업계에서 4년 동안 일한 이모씨(29·여)는 "연차휴가사용촉진제도 때문에 연차는 무조건 전부 써야 된다"며 "연차를 다 안 쓰면 다음 해로 이월이 안 되고 이에 대한 수당도 받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위에서는 연차를 쓰라고 한다. 그런데 일이 너무 많고 눈치가 보이니까 나 혼자 쉬겠다고 일을 내팽개칠 순 없다"며 "팀마다 다르지만 우리 팀은 절반 이상이 연차 기간에 재택이나 회사에 출근해서 일한다"고 밝혔다.

유명 글로벌 투자은행(IB) 직원 1년 차인 A씨(29)는 입사 첫날부터 현재까지 공휴일을 제외하고 주 7일 출근하고 있다. A씨 회사의 직원들은 업계 특성상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한다. 클라이언트들에게 월요일에 보낼 보고서를 전날 작성해야 되기 때문이다.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금요일에 끝내지 못한 일을 토요일 낮 12시쯤 출근해 마무리한다.

A씨는 "연차를 못 쓰게 하는 사람은 없다"면서도 "일이 원래 많은 업종인데 업계 상황도 안 좋아서 휴가를 못 가고 있다. 특히 다들 매일 야근하는데 신입이 눈치 없이 휴가 다녀오겠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워라밸을 챙길 수 있을 거라고는 입사 전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힘들게 입사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면서도 "갈수록 힘이 부치는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4년 차 증권사 직원 이모씨(32·남)도 "일이 많으면 연차를 알아서 안 쓰게 된다"며 "2월달에도 연차 올려놓고 여행 계획을 짜놨는데 일이 많아서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차가 남는 연말에 몰아서 쉰다. 그때라도 쉬어서 다행이지만 정작 자기가 필요할 때 내는 게 어렵다"며 "대학병원 같이 큰 병원은 평일에만 방문할 수 있어서 평일에 연차 쓰고 가야 한다. 연차 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한다"고 하소연했다.


"법 규정보단…유연한 사내 문화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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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디자이너 /사진=이지혜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연차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사내 문화가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훈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상 연차 관련 규정은 완비돼 있다"며 "현실에서는 눈치도 많이 보이고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므로 법률과 연차 사용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조인선 변호사(법무법인 YK·중대재해센터장)도 "근로자들은 적정한 휴식을 취해야 업무 의욕이 높아지기 때문에 현존 연가 사용 촉진 제도를 잘 활용하고 미사용 연차 수당을 굳이 소송을 통하지 않고도 지급받을 수 있도록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소율의 김남석 변호사도 "여러 제약이 많아서 연차를 쓰는 게 구조적으로 힘들다"며 "근로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건데 본인이 원할 때 쓰도록 눈치와 압박 없이 문화를 유연하게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근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의 손익찬 변호사는 "법을 새로 만들거나 바꾸지 않고 근로감독을 충분히 하는 것만으로도 연차 보장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회사에서 연차를 쓰면 그 일을 대체할 사람이 없고 다른 직원들에게 미안해서 연차를 잘 못 쓰고 있다"며 "적정 인력을 보장하고 지금의 연차 관련 법안을 잘 준수하게끔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근로자가 원하는 시기에 연차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유예림 기자 yes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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