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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K조선’ 화려한 부활 비결은…화물창·연료 공급 시스템 기술 한 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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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LNG로…친환경 선박 싹쓸이


중국의 추격으로 위기에 몰렸던 국내 조선업이 부활했다. LNG 운반선 수요 증가와 환경 규제 강화 등 상대적으로 기술력에서 우위에 있던 한국 조선업에 기회가 열렸다는 분석이다. 다만, 중국이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만큼 핵심 기술 국산화 등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2018년 이후 최대 점유율

LNG 운반·추진선 모두 석권

지난해 한국 조선업계는 전 세계 발주량의 40%에 가까운 453억달러(약 57조5808억원) 규모를 수주했다. 2018년 이후 최대 점유율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발주량의 37%인 1559만CGT를 가져왔다. 발주량은 전년보다 22% 줄었으나 세계 시장점유율은 지난해보다 4%포인트 높은 37%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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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실적을 주도한 것은 LNG 관련 선박이다. LNG 관련 선박은 크게 두 종류다. LNG, 그 자체를 실어 나르는 LNG 운반선과 LNG를 연료로 추진되는 선박 등이다. 두 분야 모두 우리 조선사가 맹활약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최근 역대 최고 가격을 경신한 대형 LNG 운반선 부문에서는 전 세계 발주량(1452만CGT)의 70%에 해당하는 1012만CGT를 우리 기업이 다 거둬들였다.

LNG 운반선 수요가 급증한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첫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 두 번째는 카타르의 LNG선 발주 효과다.

카타르의 경우, 앞바다 노스필드 지역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전이 발견돼 개발에 속도를 내는 과정에서 LNG선 발주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카타르 국영 석유 회사인 카타르페트롤리엄(QP)은 2020년 6월 한국조선해양을 포함한 국내 ‘빅3’ 조선 업체와 100척이 넘는 LNG 운반선 건조 슬롯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계약의 일환으로 국내 발주가 급증했다. 슬롯 계약은 신조(새 선박)용 독을 미리 선점하는 것을 말한다.

LNG 추진선 시장도 사실상 싹쓸이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LNG 추진 선박 분야에서도 전 세계 발주량의 54%를 수주하며 해당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LNG 추진선 수주가 급증한 것은 IMO 환경 규제 강화 덕분이다. IMO는 UN의 산하기구로 선박의 항로나 교통 규칙 등에 관한 국제 표준을 만들기 위해 설치된 조직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170여개국이 가입돼 있다. IMO는 전 세계 모든 선박에 2020년 1월 1일부터 연료의 황산화물 함유량을 3.5%에서 0.5%로 대폭 줄이라는 규제를 가했다. 규제를 따르지 않을 경우, IMO 회원국 항구에 입항이 불가능하다.

이뿐 아니라 연료 내 황산화물 함유량 0.1%를 넘는 선박은 다닐 수 없는 ‘ECA 해역’도 만들었다. 현재 발트해, 북해, 미국 대다수 해역과 카리브 해안, 중국 해역 등이 ECA 해역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의 5대 대형 항만인 인천, 평택·당진, 여수·광양, 울산, 부산항도 ECA 해역이다.

황산화물은 선박의 연료인 벙커C유가 소모될 때 배출되는데, 미세먼지와 산성비의 주된 원인으로 알려진다. 반면, -162℃로 냉각해 만드는 LNG는 벙커C유와 비교해 황산화물이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 LNG 추진선은 선박 연료비용 절감 효과도 월등하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 기준 하루 7700달러, 약 900만원가량을 아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2025년 전 세계에서 새로 만들어질 선박의 60%를 LNG 추진선이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이유로, LNG 추진선이 대안으로 급부상하면서 관련 수요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친환경 선박 기술력 탁월

中 조선사 건조 역량 한 수 아래

한때 우리 조선업계가 중국의 맹추격을 받으며 위기에 몰렸지만,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부문에서는 아직 비교우위가 확실하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지속적으로 LNG 운반선 시장 공략을 노렸지만 인도된 선박에서 고장이 나는 등 문제가 빈번해 선주들의 주문이 끊긴 것으로 알려진다. 2016년 중국 국영 조선소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글래드스톤호가 건조 2년 만에 해상에서 고장 나 멈췄던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LNG 운반선의 건조 역량과 LNG를 싣는 화물창 제작 역량에서 우리 조선사의 활약이 주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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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역대 최고 가격에 LNG 운반선을 계약했다. 한국조선해양이 최근 새로 썼던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것으로, LNG 운반선 가격은 연일 상승세다. 사진은 대우조선해양의 최신 기술인 축 발전기와 공기 윤활 시스템이 적용된 LNG 운반선의 항해 모습. (대우조선해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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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의 선박 자율운항 전문 회사인 아비커스가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보트쇼인 ‘포트로더데일(Fort Lauderdale)’에 참가해 선박 자율운항 분야의 앞선 기술력을 선보였다. (아비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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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 운반선에는 ‘화물창’이라 불리는 LNG 저장고가 설치돼 있다. LNG를 운반할 때는 이 저장고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LNG가 -162℃ 이하의 극저온을 유지하고 파도와 해풍을 비롯한 외부 충격에서 안전하려면 세밀하게 설계된 화물창이 제 역할을 다 해줘야 한다. 만약 특정 수준 극저온을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할 경우, LNG가 운항 중 기화돼 대형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조선사가 만든 LNG 운반선은 ‘멤브레인형 화물창’을 쓰고 있다. 이는 한국 조선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력으로 제작하는 화물창으로, 화물창과 선박이 일체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화물창과 선박을 일체화하는 과정에서 고도의 용접 역량이 필요한데, 이 부문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졌다는 평가다. 일본을 비롯한 경쟁 국가가 주력으로 제작한 화물창보다 적재 용량이 30~40%가량 많은 점도 호평받는다.

LNG 운반선 건조 역량도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다. 중국 국영 기업 후동중화조선이 만들 수 있는 LNG 운반선은 1년에 5척에 불과한 반면, 한국 조선 ‘빅3’는 1년에 약 50척을 건조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과거 SCS조선이 LNG 운반선을 수주했다가 예정된 인도 시기보다 1년 가까이 늦게 선박을 인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LNG 추진선은 연료 공급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 이 부문에서도 비교우위를 갖췄다는 평가다. LNG 추진 장치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LNG를 일정한 온도와 압력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우리 조선 빅3는 독자적인 LNG 연료 공급 시스템(현대중공업 Hi-gas·삼성중공업 FuGas·대우조선해양 HiVar)을 갖춰 세계 시장에서 호평받는다. 결국 아직까지는 LNG 운반선 기술력에서도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근 소화하지 못한 수주 물량의 상당수를 중국이 가져간 것은 긴장할 대목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내항선을 통해 LNG 운반선 기술을 검증해왔는데, 최근 국내 조선 3사의 도크가 꽉 차면서 웃돈을 줄 여력이 안 되는 선주들이 중국으로 가는 것으로 안다”며 “중국이 LNG 운반선 건조 기술을 축적해 2~3년 뒤 선주에게 인도된 선박이 별 무리 없이 운항한다면 피 말리는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화물창 설계 기술 국산화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조선사의 LNG 운반선 핵심 역량으로 평가받는 ‘멤브레인형 화물창’의 경우, 프랑스 엔지니어링 업체 GTT가 설계한 것을 한국에서 건조한다. 이 때문에 선박 가격의 5% 안팎 수준의 로열티를 GTT 측에 지급한다. 국내 조선 ‘빅3’와 한국가스공사가 화물창 기술 자립을 위해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조선업계에서는 최근 GTT 측이 화물창 기술 국산화를 서두르는 우리 조선업계를 견제하려 중국 조선소로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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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1호 (2023.03.22~2023.03.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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