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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라이프칼럼] 달맞이꽃과 ‘자그로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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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21일은 절기상 춘분(春分)이다. 남녘보다 봄소식이 더디긴 하지만 강원도 홍천산골에서도 요즘 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한편 필자는 때 아닌 수확을 하느라 바빴다. 그 수확물은 다름 아닌 달맞이꽃 뿌리. 사실 달맞이꽃은 농촌에서는 대개 잡초로 취급한다. 필자 또한 그랬다. 지난해 가을까진 과수밭에 절로 자라는 무수한 달맞이꽃을 ‘적’으로 간주해 닥치는 대로 베어버렸다.




오래전 일이다. 이웃 동네 할머니 두 분이 찾아오셨다. 방문 목적을 여쭈니 “여기가 예전부터 달맞이꽃이 무성했다”면서 “관절염에 좋다고 해 조금 얻어가려고 왔다”고 했다. 아쉽게도 예초기로 싹 밀어버린 상태라 두 어르신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필자의 과수밭은 예전부터 자생 달맞이꽃 군락지였던 것이다. 늦겨울과 초봄 사이 과수밭에 올라가 보면 뿌리잎을 땅바닥에 붙인 달맞이꽃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잡초가 아닌 작물로 받아들인다면 대풍이 따로 없다. 사실 밤에 피우는 달맞이꽃과 그 뿌리, 종자는 기관지질환, 갱년기 증상, 생리통·관절염 등을 완화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며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적(풀)’으로 여길 이유가 없다. 이번에 달맞이꽃 뿌리를 첫 수확한 것도 적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감사한 선물임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써 씨를 뿌리고 관리하지 않아도 자연이 알아서 키워준다. 내 땅에 자생하는 몸에 좋은 식물이니 그저 취하기만 하면 된다. 더는 풀과의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한 마디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자그로(자연 그대로)농사’인 셈이다.

아내는 한술 더 떠 “올해부터는 일반작물 밭도 더 이상 무거운 트랙터로 땅을 짓이기면서 갈지 말고 좀 더 자연친화적으로 농사를 짓자”고 제안했다. 화학비료·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경운 농사를 하자는 것. 귀농 초기 몇 년간 시도한 끝에 좌절했던 경험이 있지만 ‘자그로농사’를 지향한다면 가야 할 길이다. ‘자그로농사’와 일반 관행농사로 키운 농산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약성’이다. 작물은 사람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효능 또한 갖고 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이 곧 약이고 약은 곧 음식이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고 강조했다. 인위적인 관행농사로 재배한 인삼과 무위자연이 기른 산삼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필자는 십수년의 농사를 통해 그 차이점을 거듭 확인했다. ‘자그로농사’는 비록 그 열매의 크기도 작고 모양과 색깔도 볼품없지만 맛과 향은 관행농사의 그것과는 비교 불허다. 자연 그대로 키운 농산물은 자연의 맛, 특히 자생력의 맛을 간직하고 있기에 약성이 뛰어나다. 먹는 사람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자연 백신’임은 말할 것도 없다.

새봄을 맞아 필자와 아내는 몸은 더 고될지라도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온전한 ‘자그로농사’를 또다시 꿈꾼다. 이맘때면 전원에서 행복한 인생 2막을 꿈꾸는 도시민이 다양한 귀농·귀촌교육, 살아보기 프로그램, 현장 답사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그 길을 모색한다. 가급적 많은 이가 실제로 자연의 품에 안겨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자그로농사’를 통해 생명에너지와 치유를 얻는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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