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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스프] "할아버지 빚, 손주는 안 갚아도 된다"…뒤집힌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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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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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빚을 손주들이 떠안아야 할까요? 지금까지는 '빚 대물림'이 손주까지도 가능했는데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기존 판례를 변경한 거죠.

"엄마 아빠가 상속 포기했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까지 참여하는 재판부인데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루거나 기존 판결을 뒤집어야 할 때 구성되죠.

오늘(23일) 판결도 중요한 판결인데요, 무슨 사건인지 살펴볼까요.

2015년 A 씨가 사망했습니다. 사망 당시 배우자와 4명의 자녀, 손자녀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A 씨는 빚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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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배우자와 아들·딸은 빚을 물려받지 않기 위해 법률이 허용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배우자는 '한정승인'을 하고 자녀는 모두 상속을 포기한 거죠.

여기서 '한정승인'은 재산도 빚도 상속받되 물려받은 재산 범위에서만 빚을 갚는 조건이 붙은 상속을 말합니다. '상속 포기'는 말 그대로 재산과 빚을 모두 포기하는 것을 말하고요.

이처럼 고인이 재산보다 많은 채무를 남긴 경우 유족이 빚을 떠안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배우자가 한정승인을 하고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하는 사례는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 A 씨로부터 받아야 할 돈이 있던 채권자는 돈을 떼일 처지인데요, 법인인 채권자 B 회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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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회사는 A 씨의 배우자와 손자녀를 상대로 빚 상환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문서, 법률용어로는 '승계집행문'을 받아냈습니다. 승계집행문은 A 씨 배우자와 손자녀를 상대로 구상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도록 강제하는 문서입니다.

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따르면 고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모두가 상속을 포기하면 자동으로 고인의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으로 상속인이 된다고 돼 있습니다. 빚도 떠안아야 하는 거죠.

A 씨 손자녀들이 승계집행문 부여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자신들은 고인의 상속인이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이의제기는 1심 법원에서 기각됐는데요, 그러자 A 씨 손자녀들이 특별항고 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까지 사건이 올라간 거죠.

뒤집힌 판례…"손주가 안 갚아도 된다"



그러면 쟁점을 다시 정리해 볼까요. 기존 대법원 판례를 쉽게 풀면 '고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고인의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는 겁니다.

이 판례를 유지할 것이냐, 바꿀 것이냐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쟁점이었던 거죠. 오늘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변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인의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된다고 봐야 한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상속인이 아니라는 손자녀들의 주장을 대법원이 받아들인 거죠. 손자녀들은 할아버지 빚을 떠안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민법의 법리가 다소 복잡하지만, 보도자료를 잠시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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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견(11명): 종래 판례와 달리 망인의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녀와 직계존속이 있더라도 배우자만 단독 상속인이 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종래 판례에 따른 원심 결정은 파기되어야 함.

대법원 보도자료


대법원은 "민법은 공동상속인 중 어느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면 그 사람의 상속분이 '다른 상속인'에게 귀속된다고 정한다"며 "이때 '다른 상속인'에는 배우자도 포함돼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그 상속분은 배우자에게 귀속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숨진 A 씨의 손자녀 4명이 채권자 B 회사를 상대로 낸 승계집행문 부여에 대한 이의 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습니다.

다만, 이동원·노태악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냈는데요, "종전 판례가 우리 법체계와 사회 일반의 통념을 벗어나지 않는다"며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빚 대물림 끊은 또 하나의 판례"



이 판결은 빚을 대물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고인의 자녀들은 부모의 채무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에게도 승계되는 효과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대와 법 감정에 반한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상속에 대한 해석론 하나를 명확히 정립했다"는 점과 "상속인들 의사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간명하고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이번 판결의 의미로 꼽았습니다.
이 결정으로써 상속에서 배우자의 지위 및 이에 관한 민법 제1043조의 해석론을 명확히 정립하고, 상속채무를 승계하는 상속인들이 상속에 따른 법률관계를 상속인들 의사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간명하고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

대법원 보도자료


A 씨 사망 당시 손주들은 모두 미성년자였는데요, 대법원이 판례를 바꾸지 않았다면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의 빚을 떠안을 뻔했습니다.

'빚쟁이' 낙인 청소년 외면하지 말아야



미성년자가 사망한 부모의 빚을 떠안는 상황을 막기 위해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가 속속 법제화되고 있는데요, 지난해 말부터는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이후 스스로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상속 개시 시 미성년자였던 사람은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3개월간 상속을 한정 승인할 수 있게 된 거죠. 여러 지자체가 '빚의 대물림' 방지를 위한 조례도 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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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minpy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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