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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경북도, 퇴계선생 귀향길 통해 시대정신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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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14일간 여정

쿠키뉴스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걷기 노정지도(경북도 제공) 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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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서 ‘지방시대 혁명’이란 새로운 역사의 드라마가 쓰여지고 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서울 쏠림과 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끊어내려는 진지한 노력이다.

경북도는 이와 같은 지방시대를 이끌 정신의 축을 ‘퇴계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에서 찾는다.

퇴계선생은 16세기 한양으로 쏠리던 국가의 자원과 인재를 ‘서원운동’을 통해 지방으로 되돌려 놓은 위대한 학자다.

경북도가 이런 가르침을 지방혁명의 시대정신으로 되살리기 위해 안동시, 도산서원과 함께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 행사를 연다.

27일 서울 경복궁 사정전에서 시작되는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 행사는 오는 4월 9일까지 14일간의 여정으로 진행된다.

45명으로 구성된 재현단이 선조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귀향길에 오른 경복궁에서 도산서원까지 총 270㎞ 거리에 이르는 퇴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남양주, 양평, 여주), 강원도(원주), 충북도(충주, 제천, 단양), 경북도(영주, 안동) 등 5개 광역자치단체를 지나는 긴 여정의 서막이 올랐다.

퇴계는 벼슬이 달갑지 않은 자리였다.

1569년 3월 4일, 선조 3년, 69세의 퇴계(이황, 1501~1570)는 임금과 조정 신료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향길에 올랐다.

몇 달에 걸쳐 사직 상소를 올린 끝에 겨우 얻어낸 윤허였다. 퇴계는 벼슬이 달갑지 않은 자리였다.

그가 귀향길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퇴계는 왜 귀향길을 염원했을까?

퇴계의 귀향길은 그의 필생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소망했다.

그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사람다운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 일은 조정에 머무는 것보다 고향에 내려가서 더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 퇴계의 꿈은 ‘참사람’을 키워내는 지역의 사립 교육기관 서원 설립운동으로 이어진다.

퇴계의 귀향길은 물러남의 길이면서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퇴계 귀향길 걷기 행사' 본궤도에 올라

퇴계선생 귀향길 걷기는 경복궁 사정전에서 그의 고향인 안동 도산서원까지 454년 전 그가 걸었던 행로 약 270km를 그대로 따라 걷는 행사다.

이 행사는 2019년 4월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주최한 1회성 행사로 시행됐다.

하지만 당시 참가자들의 찬사와 요청이 이어지면서 매년 열기로 기획했으나, 이듬해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과 2022년 행사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간소하게 치렀다.

4회째를 맞는 올해는 코로나 그늘을 벗어나 초중고생 17명, 성인13명, 경상도, 안동시, 도산서원 및 선비문화수련원 관계자, 진행요원 15명 등 총 45명으로 재현단을 꾸려 대장정에 올랐다.

우리는 왜 퇴계의 귀향길을 걷는가?

수백 년 전 인물 퇴계의 귀향길을 오늘 다시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길을 걷는다는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가르침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여전한 울림으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퇴계의 학문과 사상의 핵심은 그의 실천적 삶 속에 있다.

그는 권력의 부정부패에 엄격하며, 청렴을 지키기 위해 늘 검박한 생활을 했다.

조선시대 엄격한 신분사회에서도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인본주의자다. 약하고 부족한 이들에 대한 그의 공감능력과 여성에 대한 존중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특히 ‘자신만 옳고 남은 그르다’고 보는 태도를 극구 경계하면서 학문적으로 대립되는 상대와도 능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은 늘 남보다 나를 먼저 돌아보는 태도가 체화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그가 소망했던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깨닫고 어떤 행동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길을 걷는다.

행로 중 ‘퇴계가 골짜기로 간 까닭은?’(배병삼 교수, 2일차 봉은사), ‘퇴계와 이지번을 둘러싼 조선의 선비사회’(이문원 교수, 9일차 청풍 한벽루), ‘퇴계는 왜 서원운동을 펼쳤나?’(정순우 교수), ‘이산서원과 퇴계의 제자들’(강구율 교수, 이상 12일차 영주 이산서원) 등의 강연도 펼쳐진다.

경북도, 퇴계선생의 삶과 정신으로 지방시대를 연다!

퇴계는 당시 인재들이 성균관과 향교 같은 관학으로 집중되는 현상과 남을 비방해 자리를 유지하는 선비들을 한탄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봉착한 수도권 집중, 지방소멸, 인구감소, 세대갈등 불공정과 차별 등과 같은 현상이다.

‘참사람’이 많아지길 소망한 퇴계는 당시 도산에 서당을 지어 실천함으로써 유능한 인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퇴계와 제자들은 새로운 강남농법을 몸소 실험하고, 의료·보육·교육의 질까지 개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부모임·관광모임·창작모임 등 다양하게 형성된 공동체는 지역 관계망까지 확대되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경제는 활력이 넘쳤다.

이철우 지사는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을 통해 실천과 공경, 배려, 존중의 선비정신을 실천해야 한다”면서 “특히 서원을 통한 지방 인재 양성, 지역공동체 형성, 지방인구 유입 등 지방시대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신 퇴계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겨 지방시대를 열어가는 제2 퇴계혁명의 정신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안동=노재현 기자 njh2000v@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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