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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프랑스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드러낸 지방 소도시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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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24 “연금개혁 반대 최전선” 주목

불안정 일자리, 공공서비스 등 후퇴 원인

경향신문

프랑스 북동부 도시 낭시에서 28일(현지시간) 열린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서 시민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사진을 붙인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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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두 달 넘게 진행되고 있는 연금개혁 반대 시위는 한풀 꺾인 모양새이다. 그러나 지방 도시와 농촌 소규모 마을은 인구 대비 높은 참여율을 보이며 과격한 시위의 중심에 섰다.

프랑스 전역에서 연금개혁 반대 10차 시위가 열린 28일(현지시간) 지역 곳곳에서 방화 등 파괴행위와 경찰·시위대 간 충돌이 보고됐다. 프랑스앵포, 르몽드에 따르면 인구 규모 제3도시인 리옹에서는 시위대가 은행과 상점 유리창을 부쉈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네 차례 최루탄과 물대포를 쐈다. 남부 프롱티냥에서는 버스 차고지에 화재가 발생해 버스 10대 중 4대가 불에 탔다. 북부 샤를빌메르지에서는 경찰을 향한 염산 투척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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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프랑스 리옹에서 벌어진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서 경찰이 검은 복면 차림의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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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24는 “중소규모 도시와 마을이 연금개혁 반대 시위의 최전선에 있다”며 파리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진 몽타르지의 시위를 소개했다. 인구 1만5000명 가량인 몽타르지에서 이날 약 2000명이 시위에 참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몽타르지는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축에 속하는 지방자치단체로 인구 3분의 1이 월 1000유로 미만으로 생활한다.

유통센터에서 일하는 크리스틴(60)은 “마크롱은 실업률이 감소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진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에 불안정한 직업을 갖고 살고 있다는 것이며 특히 여성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18세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로 완전한 연금을 받으려면 몇년 더 일해야 한다고도 전했다. 정부 법안에 따르면 경력단절 여성에게 보너스 연금이 지급되지만 43년 동안 일을 해야 완전한 연금을 수급할 수 있다.

고무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한 카를로는 “타이어를 만든 지 40년 만인 57세에 실업수당을 받았다. (노동강도와 작업여건상)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면서 “이 정부는 이런 종류의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은 이미 55세 노동자를 밀어내려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온전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퇴직연령 연장은 말이 안 된다고 전했다.

노동조합 CGT 조끼를 입고 나온 미리암은 “연금만이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내가 사는 곳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일자리든 기름이나 식료품이든 우체국이든 뭘 찾고자 하면 차를 몰고 20㎞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의 과격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검은색 줄무늬 죄수복 차림에다 발목에 족쇄를 차고 나온 전직 공무원 파트릭(69)은 “시위를 더 강화해야 한다”며 “프랑스 노동자들이여 족쇄에서 벗어나자”고 외쳤다.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흑백 깃발을 들고 나온 청소노동자 카린(49)은 “편안한 소규모 행진으로는 정부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것을 부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24는 다른 지역의 중소규모 도시와 농촌 마을에서도 주기적으로 시위가 열리고 있다며 이들 지역의 인구 대비 높은 참여는 지난 수십년 간 프랑스에서 벌어진 시위의 특징이라고 전했다. 지방 소도시와 농촌에서 빈곤, 열악한 일자리와 공공서비스의 질의 악화 문제가 두드러지면서 분노가 쌓여온 것이다. 몽타르지와 인접한 샬레트쉬르루앙의 안 파스코 부시장은 “여기 사람들은 농촌에서 자원과 공공서비스 제공을 거둬들이는 국가에 버림받았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파리에서는 에펠탑, 개선문, 베르사유 궁전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이날 오후 2시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시작된 행진은 도로에서 화재가 발생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오후 8시쯤 시위대가 해산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일부 시위대가 돌을 던지는 등 산발적 충돌이 있었다. 과잉 진압으로 논란이 된 경찰특수조직 브라브엠(Brav-M)도 여전히 투입됐다. 파리 청소노동자들은 수주째 이어진 쓰레기 수거 파업 종료를 선언했다.

프랑스 내무부는 이날 시위 참여 인원은 전국 74만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23일 9차 시위 참여 인원인 109만명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 내무부는 또 전국에서 201명이 체포됐고 경찰 17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파리에서는 55명이 체포됐다. 9차 시위에서는 전국 457명이 체포되고 경찰 441명이 부상당했다.

정부와 노동조합은 격화되는 연금 시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타협책은 손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는 다음주 월요일 또는 화요일에 노조를 초청하겠다고 밝혔다고 CFDT가 전했다. 연금반대 파업을 이끄는 노조 가운데 온건 성향인 CFDT의 로랑 베르제 사무총장은 앞서 법적 퇴직연령 64세 상향 추진을 일시 중단하는 중재안을 정부에 제안했지만 거절됐다. BFM-TV는 보른 총리 측근이 “연금개혁은 계속되지만 다른 방법을 찾는 데 열려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조는 다음달 6일 11차 시위를 예고했다.

파리 |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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