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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80살 넘으면 죽음이 반가워요” 세상 떠난 ‘지식인 큰어른’ 감동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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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녹야 블로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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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Q: “죽음이 두려운 게 자연스러운 건가요? 나이 먹는 것도 무서워요.”

A: “어릴 땐 다 그래요. 80살이 넘으면 오히려 죽음이 반갑고 그리워지기도 해요. 그러니 그때까지라도 살아야 합니다. 살면서 죽음이란 공포를 이겨내세요.”

Q: “산타 할아버지 나이는 몇 살인가요?” A: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

Q: “사는 건 무엇일까요?” A: “주눅들지 마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외다.”

5만3000여개의 질문과 답들. 질문도 답도 그냥 우리의 삶과 인생 얘기다. 어떤 고민은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깊은 비밀이고, 어떤 고민은 그냥 길 가다 생각난 엉뚱한 질문이다.

답도 마찬가지다. 때론 인생의 선배처럼 깊은 철학이 담겼고, 또 어떤 답변은 배꼽 잡을 만큼 엉뚱하기도 하다.

녹야(綠野)란 아이디로 누리꾼 사이에선 ‘지식인 할아버지’로 칭송받던 조광현 옹이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이다. 그의 블로그엔 애도글이 쇄도하고 있다. 챗GPT의 시대라지만 아무리 기술이 진화한다 해도 인생과 연륜이 담긴 그의 조언은 따라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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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 블로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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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지난 27일 오후 10시께 서울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9일 전했다. 향년 87세.

그의 죽음이 더 애달픈 건 불과 1년 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가 운영한 블로그엔 사진이 많지 않다. 하지만 몇장 없는 사진 속에서도 먼저 고인이 된 아내와 찍은 사진은 여러 장 있다.

그는 남편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매일 돌봤다. 매일 요양원에 가 아내를 돌보며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다. 2022년 3월 아내를 떠나보내고, 마치 거짓말처럼 1년 뒤 그 역시 하늘나라로 떠났다. 생전 그는 서예가였던 아내가 큰 상을 수상했던 때를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으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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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 블로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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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경복고, 서울대 치대를 졸업 후 치과를 운영했다. 이후 61살 때 치과를 그만두고, 2004년부터 네이버 지식인으로 활동한다. 네이버 지식인은 등급이 있는데, 고인은 ‘절대신’ 다음으로 높은 ‘수호신’ 등급이었다.

하지만 그가 ‘녹야 할아버지’, ‘네이버 할아버지’ 등으로 널리 불린 건 단순히 등급 때문이 아녔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은 세뱃돈이 얼마나 될까요?”란 질문에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살기 힘들어집니다”라고 답하는 등 인생 지혜가 담긴 답변으로 유명했다.

그는 수차례 지식인 활동을 그만두려 했다. 하지만 “제발 다시 답변해달라”는 팬들의 성화로 다시 활동을 복귀했었다. 시력도 크게 떨어져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자판도 익숙지 않아 ‘독수리 타법’로 써갔던 답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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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인터뷰에선 답변을 위해 지금도 공부한다고도 했다. 그는 “나이를 먹어서도 모르는 건 알고 싶어 공부한다. 궁금해서 스스로 알아본 건 안 잊어버리더라. 지식은 늘 이렇게 늘려왔다”고 했다.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다면 초등학생도 은인이죠. 내 선배라고 생각해요.”

그의 마지막 답변은 2022년 11월 10일. 이제 더는 촌철살인의 인생사를 들을 수 없다. 한 누리꾼은 블로그에 이런 추모글을 남겼다.

“이 시대 가장 큰 도서관이 사라진 느낌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늘 행복하세요.”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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