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오늘과 내일/이진영]4·19세대와 6·3세대의 뒤늦은 깨달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있어 4·19 가능”

“불가능하다던 산업화, 日 손잡고 성취”

동아일보

이진영 논설위원


4·19혁명 51주년이던 2011년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이 4·19묘지에 참배하려다 4·19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이승만과의 화해는 4·19정신 폄훼라는 것이었다. 12년이 흐른 지난 26일 이번에는 4·19 주역들이 이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그의 묘역을 찾았다. 대학 시절 “이승만은 하야하라”고 외치던 이들이 백발이 되어 “이승만의 공은 인정하자”고 했다. 참배객 중 한 명인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85)에게 단체 참배의 배경을 물었다. 그는 4·19 때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이었다.

“이 대통령의 하야 성명을 들었을 땐 민주주의를 살려냈다는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살면서 그가 아니면 이 나라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늦었지만 우리가 (이승만 재평가에) 솔선수범하자고 했다.”

―그에 대한 평가가 바뀐 계기는….

“솔직히 진짜 하야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국민이 원하면 내려가야지’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더라. 내심 그를 다시 봤다. 그 후 한국정치사를 연구하며 서울시 인구가 200만 명이던 해방정국에 정치 단체가 600개였고 그중 약 80%는 좌파 성향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대로 뒀으면 공산화됐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해 막아낸 것이다.”

―그의 공을 인정하는 건 4·19정신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4·19세대의 정치 이상과 이승만의 이상이 다르지 않다.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켰기에 4·19도 가능했다. 우리의 참배가 4·19정신 중 지금 가장 절실한 관용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4·19 주역들이 이 대통령 묘역을 찾던 즈음 1960년대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했던 6·3세대가 이를 재평가하는 칼럼을 일간지에 게재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과 주일 대사를 지낸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83)는 국교 정상화에 찬성했던 부친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인 백봉 라용균 선생으로 당시 야당 몫의 국회 부의장이었다.

―1960년대 한일협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함석헌 선생은 ‘이 나라의 政府냐, 일본의 情婦냐’라고 규탄했고, 야당 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지를 표했다가 ‘왕사쿠라’ 소리를 들었다.

“부친에게 정부 편을 드는 이유를 따져 물었더니 ‘우리나라가 농업만으로는 살 수 없는데, 다른 선진국들은 한국 산업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유일한 기회가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전두환 정부 경제수석을 지낸) 김재익 수석과 학생 시절 친했는데 그땐 김 수석도 ‘우린 능력도 자본도 시장도 없어 자동차 공업 같은 건 못 한다’고 하던 시절이다. 결국 부친의 정치인생은 그걸로 끝이 났다.”

―언제 부친이 옳았음을 깨달았나.

“6·3항쟁 20여 년 후 미국 외교문서를 연구하며 알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 3만 달러로 인하공대를 설립했는데, 당시 미 외교관들은 ‘벼 품종 개량에나 쓸 일이지’ ‘가당찮은 야심’이라고 했다. 우리가 산업화하는 길은 일본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친은 정치인이면 ‘지금 여기서(hic et nunc)’ 가장 요긴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적이 쳐들어오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은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얘기해도 정치인은 일단 맞서 싸우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4·19세대와 6·3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챈’ 정치인들을 생각했다. 그런 인물이라면 더더욱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뿐 아니라 저것 또한’이라는 원칙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나.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