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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제대로 된 연금개혁 논의의 전제 조건들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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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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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 참석차 파리를 수십 번 오가면서도 프랑스 연금에 관심 가졌던 적이 없었다. 서유럽 국가 중 국토 면적이 가장 넓고 토지도 비옥해서, 일년 농사지으면 2년 먹고살 수 있는 나라라는 말을 들어서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축적한 부와 문화유산에 기인한 막대한 관광 수입 등, 우리와는 환경이 다른 나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리 환경 좋은 국가일지라도 방만한 국정운영에는 대적할 장사가 없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주변 국가가 노동시장과 연금개혁을 서두를 때, 국민이 좋아한다고 정년을 5년 단축시킨 나라가 프랑스다. 그 후유증을 제대로 겪고 있다. 위정자의 잘못된 판단이 국가혼란을 초래한 단적인 예다.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연금개혁을 통해 절약하려는 적자액이 한 해 20조 원(2030년 기준)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126만 명 대상 공무원연금의 2023년 한 해 적자 보전액만 6조 원이 넘는다. 4대 공적연금의 미적립 연금부채는 GDP 대비 13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미적립 부채란 이미 지급을 약속한 연금액 중에서 부족한 액수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 동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최소 15%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전문가 주장이,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복지부 장관 발언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한 술 더 떠서 국회 연금특위는 '차 떼고 포를 뗀' 내용을 담아 경과 보고서로 제출하려 한다. 재정안정의 필수 사항인 보험료·소득대체율 조합을 뺀 보고서라서 그렇다. 정부는 보험료 인상이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반박했고, 국회는 중요한 수치는 모두 뺀 맹탕 보고서를 제출하려 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행정부와 국회 행보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회 예산정책처는 중요한 수치를 발표했다. 정부가 부인했던, 소득대체율은 40%를 유지하면서 매년 0.6%포인트씩 10년 동안 보험료를 15%까지 인상할 경우, 향후 70년 동안 3,699조 원(2023년 불변가격)이 절약된다는 내용을 공개해서다. 이 천문학적인 수치조차도 70년 동안 늘어날 누적적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왜 그리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소득대체율을 50%로 10%포인트 인상하고 보험료를 15%까지 인상할 경우에는, 누적적자 절감분이 283조 원에 불과하다. 일부 주장처럼 공적연금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되, 보험료는 12%까지만 인상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누적적자가 줄어들기는커녕 훨씬 더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산정책처의 재정절감액은 지난 수년 동안 기금소진 시점 몇 년 연장을 재정안정 방안이라 호도해 온 주장의 허상을 밝혀주는 수치다. 그런데도 행정부는 왜 이런 수치를 제시하지 못할까? 국회와 행정부가 동시에 재정절감 수치를 내놓는다면, 연금개혁 목적이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 절감에 있다고 하면서, 연금개혁에 반발이 심한 MZ세대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수급자를 포함하여 기존 가입자의 연금액도 삭감해야 한다는 MZ세대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연금개혁 논의가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연금을 개혁할 의지가 있다면,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를 포함하여, 대안별 재정평가 연도말 시점에서의 재정절감액을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연금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서다.
한국일보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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