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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역사와 현실] 1896년, 예천회맹(會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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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년 전인 1896년 음력 2월9일. 경상도의 작은 고을 예천(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이 의병들의 열기로 뜨거워졌다. 7일부터 호좌의진(湖左義陣) 대표 서상렬과 소속 의병 150여명이 선두에서 행진했고, 그 뒤를 안동의(병)진·순흥의진·봉화의진이 함께했다. 8일과 9일에는 예안의진과 영주의진, 풍기의진이 속속 도착하면서, 500명이 넘는 지역 의병들이 예천에 모였다. 예천회맹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김정섭, <일록>/박한광 외, <저상일월>).

경향신문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영남을 대표하는 안동의진은 250여명이나 되는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기호학 계열의 호좌의진과 서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 권세연을 대장으로 하는 안동의진은 안동부를 점령한 후 의성 수령 이관영을 효수하여 그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유인석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 역시 제천을 비롯한 충북과 강원 영서 지역 10여개 고을을 장악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었다. 영남과 기호를 대표하는 의진들이 300년도 더 된 해묵은 이념을 뒤로한 채 모였으니 잠깐의 기싸움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여러 의병장들의 환영과 중재로, 이들은 금세 동지 의식을 확인했다. 행진에서도 호좌의진을 앞세우고 안동의진은 중간을 자처했다. 실제 이들은 교감 없이도 한 해 전인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 때부터 각 지역 상소운동을 주도하면서 관련자 처단을 요구했다. 그리고 유교 이념과의 단절을 요구하는 단발령이 내려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장봉기에 나섰다. 지역별로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의병들이 산발적으로 거병했지만, 이들은 모두 일제와 그에 영합한 친일 정치인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런 그들이 이제 힘을 합칠 필요를 느꼈다.

영남 중심일 수 있었던 예천회맹이 호좌의진의 참여로 전국 규모가 되었다. 기호와 영남이 같은 목표로 뭉쳤으니, 상징성 역시 강했다. 이튿날인 음력 2월10일, 회맹 의식이 거행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말 그대로 ‘혈맹(血盟)’을 맺었다. 비록 백마의 피였지만, 이를 나누면서 그들은 같은 피를 공유하는 의식을 다졌다. 이날 나눈 피가 머지않아 자신이 흘리는 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피를 나눈 의병들을 위해 자신의 피도 아끼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실천 맹세를 담은 글을 한 사람 한 사람 읽어 내려갈 때는 모두 가슴으로 끓어오르는 ‘의로운 분노(義憤)’를 참기 힘들었다.

이 상황을 기록한 박주대의 말처럼, 처음 여기저기에서 의병이 봉기할 때에는 누구나 그 대오가 군대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무기의 열악함이나 훈련되지 않은 조직력은 당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회맹을 통해 이들은 상대의 가슴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다. 명분이 올바르다면 ‘곧바로 실천해야 한다’는 의지를 서로에게서 재확인했다. 하필 이날 지난 행적을 속이고 의진 참여를 위장하려 했던 예천군수 류인형의 존재는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 기세를 몰아 이들은 연합해서 태봉(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면 태봉리)에 주둔한 일본 병참부대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음력 2월16일 전개된 태봉리 전투의 패배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의병의 의기는 이러한 패배로 꺾인 것이 아니었다. 의병 봉기가 성공할 수 없음은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로운 분노’를 실천하라고 배운 그들의 신념은 종종 자신의 안위를 무시한 채 올바름을 향해 자기 생명을 던지는 애국심으로 무장케 했다. 실천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나라 잃은 부끄러움이 되지 않도록 그들은 자신의 의분에 따라 행동했다. 1896년 예천회맹은 이 같은 의분을 함께 확인하는 계기였고, 이러한 정신은 을미의병을 넘어 국망 이후 독립운동 정신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바로 이러한 선대 의병 운동가들의 의분에 빚지고 있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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