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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바람피운 약혼자…파혼 위자료 받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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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더한 파혼 싸움



중앙일보

당신의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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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가명)씨와 이현우(가명)씨는 지인 소개로 만나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결혼식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 현우씨는 영은씨가 전 남자친구와 만남을 지속하고 성관계까지 맺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삼자대면까지 거친 끝에 현우씨는 파혼을 통보했고 “결혼비용과 위자료를 달라”며 소송을 냅니다. 소장에는 신혼여행 항공료, 예식장 계약금, 신부 지인·가족 식사비까지 계산한 표가 적혔습니다. ‘프러포즈 식비’ 20만원도요.

당신의 법정

이혼 부부의 재산 분할 소송만큼이나 예비부부의 ‘파혼 소송’도 치열합니다. 민법 804조는 ‘당사자 한쪽에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은 약혼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 중 하나가 ‘약혼 후 다른 사람과 간음한 경우’입니다. 영은씨가 여기에 해당하겠죠. 법을 어겼으니 손해를 배상할 책임도 생깁니다. 현우씨가 만일 영은씨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쓸 필요가 없던 돈을 영은씨가 메워놓고 헤어져야 하는 겁니다.

법원은 현우씨가 써내려간 청구서를 꼼꼼히 확인한 뒤 이런 판결을 내립니다. ▶예식장 계약금, 상견례 비용은 파혼으로 인해 입은 손해이니 영은씨가 모두 내야 한다. ▶신혼여행 항공료도 영은씨가 모두 배상해야 하지만 취소 수수료 25만원을 내고 환불받았으니 수수료 25만원만 내라. ▶영은씨 지인 식사비, 신부 화장품비, 프러포즈 식비는 교제 중에 지출한 비용이고 결혼을 위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니다. 배상해야 하는 돈은 아니지만 영은씨가 절반을 줄 수 있다고 하니 절반은 줘라. ▶현우씨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도 1700만원 줘라.

영은씨도 맞소송을 냈습니다. 예단비 500만원을 돌려달라는 겁니다. 그러나 무려 1976년에 나온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파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예물(예단)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 시대가 변해 약혼의 의미가 과거와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지 않긴 하지만, 재판부는 영은씨가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기기도 했기 때문에 예단비를 도로 가져갈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한편 대법원은 예물을 돌려받을 때는 구매비용을 현금으로 받아야 하는지, ‘원물’로 받아야 하는지도 정해놨습니다. 결혼이 잘 성사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증여와 비슷한 성격이어서, 파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반지 등 예물을 그대로 돌려주면서 원상회복을 하면 된다네요.

여기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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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설명 〈민법 804조〉


▶약혼식 올려야만 약혼?

그럼 ‘약혼한 사이’에 대한 기준은 뭘까요. 법원은 “예물 교환이나 약혼식을 올리지 않았어도 당사자 사이에 혼인 합의가 있다면 성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혼집이나 결혼식장을 계약한 내용이 있으면 명백하겠죠. 구체적인 계약이 없는 상황이라 해도 법원은 청혼은 했는지, 주변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라고 소개했는지, 양가 부모님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등 다양한 사정을 살펴봅니다.

문제가 되는 건 ‘나만 진심이었지…’와 같은 사례들입니다. “애인 남동생의 군대 면회도 함께 가고, 할머니 생신 잔치에도 함께 가고, 애인 누나 집들이에도 갔었다”며 약혼 관계를 주장한 사건에서 법원은 “결정적 약혼 징표는 아니다”고 판단했습니다. “친밀한 이성 친구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요.

서로를 ‘여보’라고 불렀다? 이 역시 애매합니다. 법원은 “약혼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사귀는 사이에서도 ‘여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고, 이 호칭만으로는 앞으로 결혼하기로 하는 진정한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신혼에 깨졌다면

“단시일 내에 혼인·사실혼에 이르지 못하고 관계가 해소돼 결혼식이 무의미하게 돼 결혼 비용이 ‘무용의 지출’로 보이는 경우엔 비용을 지출한 당사자는 유책 당사자에게 배상을 구할 수 있다.” 1984년에 나온 판례입니다.

결혼식을 올린 뒤 3개월 만에 신랑이 사기로 구속된 한 부부의 사건에서 법원은 신랑이 결혼식장 비용, 드레스 비용, 폐백 비용, 신혼여행 비용, 웨딩플래너 비용 등을 다 내라고 했습니다. 예물과 예단도요. 신랑은 자신이 형사사건 피고인이라는 사실도 숨기고, 법원의 선고 당일에도 해외 출장을 간다며 집을 나섰다고 하네요. 알고 보니 신랑은 자신의 출신 대학과 실제 직장까지 숨기고 있었죠.

▶신랑이 결혼식장에 안 왔다면

증권사에 다니고 있으니 투자금을 맡기면 원금을 보장해 주겠다던 예비신랑, 신혼여행비와 예물 구매비까지 쏠쏠하게 챙겼다가 결혼식 직전에 사라졌습니다. 법원은 “결혼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결혼할 것처럼 속였다”고 보고 신랑이 결혼비용을 다 메우고 위자료도 주라고 했습니다.

신랑은 신혼집으로 전셋집을 마련했다고 거짓말까지 하며, 가구를 배송하려는 신부를 이 핑계 저 핑계로 막으며 연극을 이어갔다네요. 신부는 신랑의 부모를 상대로도 소송을 냈는데, 법원은 부모의 ‘공동불법행위’ 책임도 인정해 위자료를 내라고 했습니다. 당시 신혼집이나 회사를 직접 찾아가 확인하려는 신부를 신랑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막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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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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