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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위기의 마크롱 때리며 '급' 올린다…조롱받던 포퓰리즘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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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전 대표.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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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연금 개혁 혼란 속에 파리 시내가 불타오르는 걸 미소 지으며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마린 르펜(54) 전 국민연합(RN) 대표다. 오랫동안 프랑스 주류 정치계의 지탄 내지는 조롱거리가 돼 왔던 르펜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헛발질’을 틈타 강력한 위협 상대로 부상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국익’을 내세워 헌법 제 49조3항(정부 단독 입법) 하에 개혁안을 통과시킨 걸 두고 르펜은 “정부가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맹비난한다. “(대통령의 의회 패싱은) 연금 개혁안 추진으로 프랑스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모욕감을 강화했다”고도 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의 약 70%가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 처리 방식이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응답한 데 기반했다. 정부의 연금개혁에 부정적인 국민 정서를 부추겨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행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이포프 여론조사에서 르펜의 RN 정당 호감도는 35%로,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당(28%)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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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연금개혁 반대 시위 도중 거리의 쓰레기통이 불타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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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더 타임스는 프랑스 정치분석가 제롬 자프레를 인용해 “분노한 민심이 대통령과 엘리트 정치 계급을 응징하길 원한다면, 르펜이 승리할 모든 여건이 갖춰졌다”면서 “지금까지 연금 개혁 이슈에서 확실한 승자는 포퓰리스트 르펜 뿐”이라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연임으로 2027년 대선 출마를 할 수 없는 만큼 르펜이 이번에는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면서다. 르펜은 작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42.5%를 득표해 마크롱 대통령(58.5%)의 뒤를 바짝 쫓았다. 2017년 마크롱 66.1% 대 르펜 33.9%였던 것을 보면 격차를 크게 좁혔다.

르펜의 정치적 기반은 반(反)이슬람, 반이민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세운 국민전선(NF, RN의 전신)은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낙인이 깊었다. 그의 딸 르펜도 과거 무슬림 인구 확산을 “나치 점령”에 빗댄 적이 있다. 르펜은 대선 출마를 계기로 당명 교체를 통해 아버지 색채를 지우고, 중도 우파 이미지를 앞세워 외연을 넓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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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민족주의 포퓰리즘 정당 핀란드인당(핀인당) 대표 리카 푸라 대표가 15일(현지시간) 수도 헬싱키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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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극우 정부 나오나…이탈리아선 “여자 무솔리니 총리”



포퓰리즘 정치 세력이 중앙 정치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건 프랑스 뿐이 아니다. 오는 2일 핀란드 총선에선 극우 성향 핀란드인당이 산나 마린 총리의 사회민주당(사민당)을 위협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8일 현지 여론조사 기준 핀란드인당과 사민당은 각각 19.2%로 동률로 나타났다. 중도 우파인 국민연합당이 19.8%로 근소한 차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오차 범위 내(2.1%)여서 최종 결과는 ‘깜깜이’ 상태다.

선거 결과에 따라 “핀란드에서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극우 정부가 탄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핀란드인당은 반이슬람, 반이민 정책, 유럽연합(EU) 탈퇴를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리카 푸라(45) 당 대표가 소셜미디어(SNS) 틱톡을 기반으로 선거 캠페인을 공격적으로 펼쳐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작년 9월 총선에서 승리를 거머쥔 조르자 멜로니(46) 이탈리아 총리는 이탈리아의 전체주의 정당 국가 파시스트당에 뿌리를 둔 ‘이탈리아의 형제들’ 소속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멜로니를 “(2차 세계대전 당시)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이탈리아의 첫 극우 지도자”로 설명했다. 2012년 창당한 이탈리아의 형제들은 2018년 총선 4%대의 득표에서 불과 4년 만인 지난해 총선에서 26%라는 대승을 거뒀다. 코로나19 기간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악화하면서, “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 등 기성 정치 엘리트들도 별 수 없다”는 프레임이 먹혔다. 멜로니 총리는 선거 기간 “전통 가족은 예스(yes), 성소수자·이슬람 폭력·EU 관료주의는 노(no)!”라는 구호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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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8일(현지시간)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의 의회·대통령궁에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이 난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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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SNS, 좌파는 ‘오일 머니’가 무기



유럽 자유주의 진영의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정당 중심으로 뭉쳤다면, 미 대륙에선 도널드 트럼프(76) 전 미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68) 전 브라질 대통령과 같이 인물 중심 포퓰리스트들이 강성 팬덤층을 기반으로 정권을 잡았다. 부동산 재벌로 유명했던 트럼프는 미 공화ㆍ민주당의 정통 정치인들을 향한 대중의 회의론 속에 돌풍을 일으키며 미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우소나루 역시 브라질의 오랜 포퓰리즘 좌파 정권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의 몰표를 받으며 화려하게 집권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동시에 집권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소셜미디어(SNS)로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는 가짜 뉴스로 공격하고,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등 포퓰리즘적 행보로 비판 받았다.

’포퓰리즘의 원조’로 꼽히는 중남미는 고질적인 좌파 포퓰리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2018년 부정 선거 의혹이 불거진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60)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마두로 정권은 그간 베네수엘라 정부가 흥청망청 써온 석유 판매 대금 30억 달러(약 4조원)가 사라졌다는 초대형 부패 스캔들에 직면해 있다. 베네수엘라는 전세계 매장량 1위를 자랑하는 석유를 팔아 무상 복지를 남발하다가 경제 파탄의 늪에 빠졌다. 식량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국민들이 강제로 살이 빠진다는 ‘마두로 다이어트’란 말까지 생겼다.

2019년 집권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63)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남미의 원조 좌파 포퓰리즘 ‘페론주의’를 표방한 정의당 소속이다. 아르헨티나는 9차례 국가부도 사태를 맞고도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정부 보조금·복지 지출 규모를 줄이는 데 실패하면서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다. ‘멕시코 트럼프’로 불리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69) 대통령도 포퓰리즘 성향 지도자로 분류된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선 기성 정당들이 선거에서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혐오, 공세에 기반한 ‘네거티브 당파성’에 의존하게 된다”며 “SNS를 통한 편향된 정보가 재생산 되는 미디어환경의 변화가 근본 원인”이라고 짚었다. 그는 “연금 개혁 등 민감한 이슈일수록 이해 관계를 제대로 따져 정치권이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이후 국민들의 평가를 거쳐 정책을 수정하는 환류 체계를 되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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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박형수·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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