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4 (토)

크레디스위스 인수한 UBS, 2008년엔 파산 문턱서 기상회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WEEKLY BIZ] Biz Pick: 금융계 새옹지마

조선일보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UBS 건물에 새겨진 로고.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나의 큰 승리자와 여러 패배자를 낳았다.”

스위스 1위 은행인 UBS가 파산 위기에 몰린 2위 크레디스위스를 지난 19일 인수하기로 결정하자 블룸버그통신이 이런 평가를 내놨다. UBS가 저렴한 비용에 몸집을 키우는 승자가 됐다는 해설이다.

금융사(史)에 밝은 이들은 UBS와 크레디스위스가 물고 물리는 경쟁을 펼친 과정을 들여다보면 위기 관리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크레디스위스보다 6년 늦은 1862년 설립된 UBS는 161년간 끊임없는 인수·합병(M&A) 과정을 거쳤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의 UBS의 일원이 된 금융회사가 무려 370개에 달한다. 현재의 UBS 외형은 1998년 스위스 2위 은행이던 UBS와 3위였던 SBC가 합병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1위였던 크레디스위스는 UBS 인수를 시도했다. 압도적 1위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UBS는 이를 거부한 뒤 SBC와 전격적으로 합쳐 크레디스위스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올해 UBS는 자신을 집어삼키려 했던 크레디스위스를 인수하게 됐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1998년 합병 후 UBS는 공격적으로 영업을 확장했다. 미국 투자은행(IB) 페인웨버를 인수하고, 헤지펀드 부문을 강화했다.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부실이 곪고 있었다. 2007년에 이르자 파생 상품에서 큰 손해를 입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당시 UBS는 남보다 한발 빠르고 솔직하게 환부를 공개하며 위기 돌파를 시도했다. 2007년 7월 IB 부문 확장을 주도한 최고 경영자를 경질했다. 그해 10월에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40억스위스프랑(약 5조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해 상각 처리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은행 중 최초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 때가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기 11개월 전이었다. 2007년 12월에는 싱가포르국부펀드 등으로부터 130억스위스프랑(약 18조3000억원)의 투자금을 당겨와 자본을 확충했다.

전체적으로 UBS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관통하면서 500억달러(약 64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고 1만1000명을 감원하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래도 다른 글로벌 은행들보다 선제적으로 2007년부터 대비에 들어간 덕분에 생존은 가능했다. 위기를 넘긴 이후 UBS는 체질 개선에 나섰다. IB 부문을 대폭 축소하고, 위험이 적은 소매 금융을 확대했다.

파산 문턱까지 갔던 UBS와 달리 크레디스위스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무사히 넘긴 모범생이었다. “정부 도움 없이도 수많은 경쟁 은행보다 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게 독이 됐다. 거침없이 IB 부문을 확대하고 무리한 투자를 남발하다 돌이키기 힘든 손실을 입었다. UBS와 크레디스위스의 처지는 15년 만에 정반대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간신히 기사회생한 은행들은 위험 부담이 큰 IB 부문을 점차 줄였지만, 크레디스위스는 IB 분야를 배로 늘리며 공격적이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스위스 베른에 있는 크레디스위스 지점. /로이터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손진석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