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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건의 재구성] 사형 구형 받자 법정 둘러보며 "다들 수고했다"…남편·아빠 아닌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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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두 아들 살해 40대, "죽을 자유 달라" 당당

치밀 계획·잔혹범행 뒤 '눈물 연기'…들통나자 가족 탓·거짓 변명

뉴스1

아내와 두 아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고모씨.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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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뉴스1) 최대호 기자 = "잠시나마 자유를 줬으면 좋겠다. 죽을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사형 (집행을) 안 하지 않냐. 부디 자비를 베풀어달라. 이상이다."

아내와 10대 두 아들을 흉기와 둔기로 수십여 차례 휘둘러 잔혹하게 살해한 40대 고모씨. 그는 검사로부터 사형을 구형 받자 법정을 둘러보며 마치 남의 일인 듯 "다들 수고했다"고 덤덤하게 말문을 열었다.

판결 선고 전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발언 기회였지만, 가늠할 수 없는 고통 속에 하늘로 간 가족들에 대한 사죄는 없었다. 도리어 '죽을 자유를 달라'며 사법부를 농락했다.

고씨는 지난해 10월25일 저녁 8시10분쯤 경기 광명시 소하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아내 A씨(42)와 아들 B군(15), C군(10)을 살해했다.

보살핌의 대상인 가족 구성원 모두를 둔기와 흉기로 무참히 내려치고 찔렀다. 횟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잔혹했다.

'가족들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고씨의 과장된 사고에서 시작된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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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일가족 살해 사건 발생 아파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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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밀한 계획 그리고 잔혹한 범행


고씨의 범행은 치밀한 계획 하에 진행됐다. 애초 그는 '투신자살'을 위장한 완전 범죄를 꿈꿨다. 거주 아파트가 15층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계획이었다.

고씨는 머리를 가격해도 상처가 나지 않는 재질의 둔기를 미리 구매했다. 의식을 잃으면 베란다 밖으로 던져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처럼 꾸밀 생각이었다.

범행 약 3시간 전. 고씨는 첫째 아들을 불러다 "그동안 미안했다" 사과하며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안심시켰다. 잔혹 범행의 시작이었다.

범행 20분 전. 고씨는 CCTV가 있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1층으로 내려간 뒤 CCTV가 없는 복도 창문으로 들어와 계단으로 15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고씨는 둘째 아들이 샤워하기 위해 욕실로 향하자 아내에게 "1층에 가방이 있으니 가져오라"고 말했다. 아내가 집 밖으로 나가자 그는 둔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하고 있는 첫째 아들의 머리를 둔기로 무참히 내리쳤다.

그 사이 아내가 올라왔고, 고씨는 다시 둔기를 들어 아내를 공격했다. 그는 쓰러져 있는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기어서 첫째에게 향하는 아내를 따라가며 둔기를 휘둘렀다.

샤워를 마친 둘째 아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하지만 고씨는 두려움에 떨던 둘째마저 같은 방법으로 쓰러뜨렸다.

둔기만으론 '투신 위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고씨는 계획을 수정했다. 주방에 있던 흉기를 가져와 항거불능 상태인 아내와 두 아들에게 수십여 차례에 걸친 2차 공격을 가했다.

고씨는 '나 죽는 거죠? 그렇지!' '아디오스 잘 가' 등의 혼잣말을 하며 잔혹한 범행을 이어갔다.

고씨의 당시 범행 상황은 첫째 아들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첫째는 고씨가 욕설과 폭언을 하는 일이 잦아지자, 이 사건 이전부터 고씨의 욕설 등을 녹음했고, 사건 당일에도 범행 약 3시간 전부터 휴대전화 녹음 기능을 켜 뒀다.

범행 후 고씨는 태연하게 PC방으로 향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곳에서 2시간가량 애니메이션을 시청한 그는 집으로 돌아와 전화기의 119를 눌렀다. 고씨는 "외출하고 오니 가족들이 칼에 찔려 죽어있다"며 울며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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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일가족 살인사건' 범인 고모씨가 취재진에 기억상실을 주장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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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유족 행세하다 증거 나오자 자백…기억상실·다중인격 주장

고씨는 현장에 출동한 119대원과 경찰관에게 범죄 피해로 가족을 잃은 가장 행세를 했다. 그러나 양의 탈은 오래가지 못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이 피 묻은 옷가지와 범행 도구를 찾아내 들이밀자, 이내 범행을 실토했다.

하지만 반성은 없었다. 범행 동기를 진술하는 과정에 자기합리화에 급급했다. 2020년 6월 직장을 그만둔 후 이렇다 할 벌이가 없었던 그는 '(아내가) 그동안 ATM 기계처럼 일만시켰다'는 거짓말로 범행을 정당화하려 했다.

급기야 기억상실을 주장했고, 나아가 다중인격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검찰청 통합심리분석 결과 이는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국립법무병원 정신감정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오히려 '범행 당시에 정상적인 사고를 했다고 사료되며 인지능력과 지능이 우수하다'는 소견이 재판부에 회신됐다.

검찰에 따르면 아내 A씨는 직장을 잃은 고씨가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을 때 묵묵히 일하며 혼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사건 20여 일 전 고씨의 슬리퍼를 신었다는 이유로 고씨로부터 욕설과 폭언을 들은 첫째 아들은 친구들에게 '오늘 죽는 날인가 보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죽음 공포에 시달려왔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열린 이 사건 결심공판에서 고씨에 대해 사형을 구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해자(아내)는 사랑하는 두 자녀가 아버지로부터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눈을 감았고, 두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 범행의 반인류성, 피해의 중대성 등 모든 양형요소를 종합하면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는 게 마땅하다. 그것이 국가의 책무고, 그래야만 피해자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다."

고씨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이달 28일 열린다.

sun07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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