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고갈론, 건강보험 위기론….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회보장제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머지않은 시점에 적립금이 바닥나 '보험 혜택을 못 받을 것'이란 전망이 쏟아져 나오면서다.
# 관건은 적립금 고갈을 피할 '대안'이 뭐냐는 거다. 성난 민심은 '연금 폐지론' 등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한편에선 프랑스 마크롱 정부처럼 연금 개혁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 하지만 국민연금이든 건강보험이든 운용방식을 혁명적으로 손실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가장 직접적인 대안은 두가지다.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수령할 금액을 줄이거나다. 두 방법 모두 쉽지 않다. 보험료를 끌어올리는 건 사실상 증세이고, 보험액수를 줄이는 건 '내가 낸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격이어서다. 정부가 먼저 '공론의 장'을 열고 국민을 설득할 만한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공론장을 마련할 준비가 돼 있을까.
# 더스쿠프가 視리즈 '쉽게 풀어본 건강보험'을 준비했다. 건강보험의 태생적 문제, 국민연금과는 다른 적립금 체계, 보험료율에 숨은 함의 등을 순차적으로 짚어봤다. 그 첫번째 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운용방식은 다르지만, 적립금 문제는 똑같이 심각하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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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5년과 MZ세대
지금으로부터 18년 후인 2041년은 국민연금공단의 적립금(누적)이 사상 처음으로 줄어드는 해다. 2041년 그해부턴 국민연금공단에 들어오는 돈(보험료 수입)보다 나가는 돈(연금 급여)이 더 많아진다는 얘기다. 이렇게 적자가 이어지면 수십년간 쌓아온 적립금은 끝내 사라져 버린다. 이게 국민연금 고갈론의 뼈대다(그림 참조).
# 적립금의 함의
이번엔 건강보험공단의 적립금 고갈론을 살펴보자.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엔 먼저 살펴봐야 할 게 있다. 적립금의 개념이다. 숱한 미디어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적립금을 '한 테두리'에서 다루곤 하는데,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반면, 건강보험은 한해 걷은 보험료를 그해에 쓴다. 받은 돈만큼 사용한다는 거다. 당연히 건강보험에서 말하는 적립금은 국민연금과 다르다. 건강보험의 적립금은 금고가 아니라 예비비다. 현행법상 건강보험공단은 1년간 보험금을 지출한 뒤 남은 돈을 적립금으로 쌓아야 한다.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에서 적립금이 고갈됐다는 건 쟁여놓은 예비비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그럼 건강보험의 적립금 고갈론은 국민연금과 달리 허튼소리에 불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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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년 건보 바닥론
답을 찾아가보자. 건강보험공단의 적립금은 23조8701억원(2022년 기준)이다. 아픈 이들에게 지급하는 월 보험액이 통상 9조4000억원이니까 설사 건강보험공단이 아무런 수입을 올리지 못해도 적립금만으로 2.5개월어치의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다.
이럴 때 건강보험 수입이 지출보다 많으면 다행이지만, 출산율이 떨어진 인구구조상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는 건강보험료를 충실히 내고도 적립금이 없어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세대가 머지않아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미움 사는 개혁
이처럼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고갈론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야 하지만, 적립금 위기에서 파생하는 고민거리는 똑같다. 고갈론이 현실화하면 안 된다는 거다. 국민연금을 미래세대에게 문제 없이 지급하려면 적립금이 동나선 안 된다.
건강보험 역시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 보험금이 부족해질 경우를 대비해 예비비 성격의 적립금을 차곡차곡 쌓아놓을 필요가 있다. 보험금이 떨어졌을 때 이를 충당할 재원이 적립금 말고는 없어서다.
국민연금이든 건강보험이든 운용방식을 혁명적으로(폐지 등) 바꾸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가장 직접적인 대안은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수령할 보험액을 줄이거나 두가지다. 사회·경제학적으로 둘 모두 쉬운 접근법이 아니다. 보험료 인상은 사실상 증세다.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연금 수령액을 줄이거나 건강보험의 보장범위를 축소하는 건 사람들이 지금까지 납부해온 보험료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행위다.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걸 달갑게 여길 이들은 없다. 역대 정부가 '해답이 뻔히 보이는' 연금·건강보험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석열 정부 역시 다르지 않다. "국민에게 인기가 없어도 반드시 연금 시스템을 개혁하겠다(2022년 12월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던 윤석열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개혁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국민연금은 차라리 약과다. 건강보험을 개혁하겠다던 이들은 여태껏 개혁의 테이블조차 차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거칠게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은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 집단에서 ‘프랑스식으로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따져봐야 할 점이 수없이 많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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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론화의 장
그럼 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뭘까. 답은 간단하다. 연금을 왜 개혁해야 하는지, 적립금이 고갈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등을 '공론의 장場'에 올려놓은 뒤 국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밟는 거다. 한편에선 윤 정부를 향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처럼 연금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면서 속도론을 요구하지만, 위험한 발상이다.
똑같이 연금 고갈 위기에 놓인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배경은 완전히 다르다. 프랑스 노동자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부담률(세금+4대 보험)은 45.1%(2021년 기준)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보다 17.1%포인트 높은 수준으로, 1억원의 연봉을 받는 노동자가 그중 4510만원을 국가에 헌납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마크롱 정부가 제시한 '정년 2년 연장안案'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이유는 여기에서 출발한다.[※참고: 더스쿠프 통권 537호 '佛 노동자 정년 2년 연장 거부하는 속내-안창남 교수.]
프랑스 노동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껏 보험료를 낼 만큼 내왔는데, 왜 2년이나 더 노동력을 제공하라는 건가. 부족한 연금은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을 통해 메워라." 여기엔 마크롱 정부가 부유세를 축소하는 등 고소득층 감세책을 쓰면서 정작 노동자에겐 연금 고갈의 책임을 덧씌우려 한다는 반감도 깔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윤 정부가 프랑스 노동자 집단을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으로 해석할 이유도 없고, 마크롱 정부의 강공책을 비판 없이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안창남 강남대(세무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구절벽이 가까워진 상황에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고갈 가능성'을 해소하는 방법은 정년 연장, 보험료 인상, 수령액 감축밖에 없다. 어떤 방법론이든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순 없다. 그래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개혁하고 싶다면 '공론화 과정'을 밟는 게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올 상반기에 연금‧건강보험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개혁 약속은 한낱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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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골든타임
어쨌거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개혁할 주체는 윤 대통령과 정부다. 개혁의 성패도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친 않을 듯하다. 정치 시계가 워낙 빠르게 돌아가서다.
반년만 지나면 '총선의 시간'이 도래한다. 표를 얻어야 생존하는 정치권이 국민의 반발을 감수하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개혁 작업에 착수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반대로 말하면 개혁의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란 건데, 현재로선 윤 대통령의 의중을 알 수 없다. 정책의 결정권자이자 중재자인 윤 대통령은 언제쯤 공론의 장을 만들어 낼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 참고: 538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은 3월 27일 발간한 더스쿠프의 총론입니다. 이어지는 파트 기사들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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