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김정일 위원장, 김대중 대통령에 '김용순 발언' 확인
김일성, NYT 통해 대미 우호제스처도…끝내 핵개발의 길로
특히 당시 김용순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이 아널드 캔터 미 국무부 정무차관에게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용인'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면 김용순의 발언은 어떤 맥락에서 나왔을까. 당연히 북한 최고지도자의 의지와 지시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북한은 미중 데탕트 무드가 확산된 1970년대부터 미국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취하고 직접 접촉을 제의했다.
김일성은 1972년 5월26일 뉴욕타임스(NYT) 기자들과 가진 대담에서 "미국 정부는 큰 나라들과만 관계를 개선할 것이 아니라 응당 작은 나라들과도 관계를 개선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은 북한을 사실상 외면했다.
김용순의 발언 내용은 이미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의 대화 속에서 확인된다.
김용순 전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 |
월간조선 2000년 8월호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주한미군은 남북간의 전쟁 억지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데도 필요한 존재이며 통일 후에까지 주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992년에 방미한 김용순 동지를 통해서 미국 정부측에 이런 뜻을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인민들은 갑자기 생각이 바뀌지 않으므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김정일은 2000년 6월15일 오찬장에서 다음날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날의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전해주려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어 있었던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에게 "어제 말한 것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북한 김정일과 김용순 전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 |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중재자로 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을 상기하면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북한은 전략적 위기 상황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동서냉전 체제의 붕괴 속에 사회주의 진영 대국인 소련이 사라지고 중국마저 북한을 방기한 채 한국과 수교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북한은 미국을 향해 관계 개선의 제스처를 취했고, 한국과 일본과의 협상에도 임했다. 물론 생존을 위한 비밀 핵개발 프로젝트도 가동했다.
미국은 북한을 향해 핵문제 해결 이전에는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사찰 문제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1차 북핵 위기 발발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후 30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lwt@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