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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2 (월)

    모험자본 위축…‘규제의 틀’ 네거티브로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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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


    미국의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벤처업계는 ‘데스밸리’를 넘는 중이다. 상당수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의 자금 조달 환경은 악화일로다. 대형 은행이 스타트업 투자를 기피하는 가운데 자칫 모험자본의 혈맥이 막힐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위기 국면에서 한국벤처캐피탈협회는 새 수장을 맞았다. 제15대 회장으로 취임한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모태펀드 예산은 줄었고, 벤처 투자 심리 역시 위축되고 있다”며 “고금리,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정부의 마중물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협회명을 ‘한국벤처투자협회’로 바꾸는 방안을 ‘1호’ 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모험자본 투자 단체로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협회명을 변경하고 새로운 정체성 정립을 통해 벤처 투자의 외연을 확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매경이코노미

    1962년생/ 경북대 전자공학과/ MIT 경영학 석사/ 1988년 LG종합기술원/ 1999년 LG텔레콤/ 1999년 한국기술투자/ 2007년 LB인베스트먼트/ 2012년 DSC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현)/ 제15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현)


    Q. VC업계와 스타트업이 ‘데스밸리’를 넘는 중인데.

    A. 이런 국면에서는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 모험자본 공급이 위축되지 않도록 심리를 섬세하게 다뤄줘야 한다. 지금처럼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상황에서는 금융 시스템이 자발적으로 모험자본을 공급하기 녹록지 않다. 작금의 위기는 시스템 문제라기보단 심리적인 측면이 크다. 모험자본의 질적 성장을 저해할 정도로 시장이 위축되지 않도록 적시에 모태펀드 추경 등 제도적 인프라 조성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Q. VC업계와 스타트업 시장이 더 성장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나.

    A. 현재 우리 벤처캐피털 시장 구조는 모태펀드를 비롯한 정부 정책자금과 민간자금 등 크게 두 줄기로 이뤄져 있다. 정부 공적자금은 그 목적상 특정 업종이나 VC에 집중 투자를 하기보다 여러 업종으로 분산되는 특성을 보인다. 정부 정책자금이 골고루 분산되면서 그 위에 민간자금이 집중 투자를 하는 식으로 ‘T자형’ 구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우리 VC업계와 스타트업이 세계 시장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려면 자금 구조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모험자본 공급에 소극적이던 새로운 투자 주체를 적극 발굴해 시장 외연 확장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 정부가 생각하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장기 성장 로드맵상에 나온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가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코스닥 시장에서도 테크 기업에 상장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회수 시장에서의 변화만으로도 민간에서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에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Q. 민간 VC 부문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나.

    A. 우리 VC는 역사가 짧아 아직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 쪽에서 모태펀드 규모를 지속적으로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민간 부문에서도 대형 VC가 나올 때가 됐다는 판단이다. 다만, 우리 VC 생태계가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려면 VC의 성장 전략도 지금보다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모든 VC가 종합주의 조직으로 대형화를 추구할 수는 없다. IT나 바이오 등 각자 전문 영역을 확보한 전문주의 조직으로서 정체성을 가진 VC도 다수 출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대형화에 주력하는 종합주의 조직으로서 VC와 특정 전문 영역에 천착하는 전문주의 VC가 서로 상생하는 이원화된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Q. 글로벌 수준 딥테크 기업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우리 경제는 소득 3만달러 시대에 접어든 뒤 변곡점에 서 있다. 이제부터는 성장 전략 프레임을 과감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3만달러까지는 유형자산을 기반으로 고속 성장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기술을 비롯한 무형자산을 기반으로 모험적인 시도가 꾸준히 축적돼야 한다. 바이오, 모빌리티, 인공지능(AI) 등 전략 기술 분야에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축적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 바이오 산업이 성장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질적 도약이 가능했던 것은 기술특례상장 제도 덕분이다. 당장 매출과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상장을 시켜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가능한 토양을 만들어준 덕분에 훌륭한 인적 자원을 양성할 수 있었다.

    Q. 개선이 시급한 벤처 투자 관련 조항은.

    A. 금리 인상으로 그렇지 않아도 투자 심리가 위축돼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회수 시장 활성화가 시급하다. 문제는 회수 시장에서 세컨더리펀드에 부과된 신주 투자 의무규정이 시장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행 벤처투자촉진법에서 벤처조합은 약정총액의 20% 이상을 신주로 투자하게 돼 있다. 그런데 특수목적펀드인 세컨더리펀드에도 똑같이 신주 20% 룰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건 문제다. 신기술금융사나 사모운용사의 경우, 신주 20% 룰에서 자유로운 점은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초기 기업의 구주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 완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규제의 틀도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것만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 산업의 창발성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Q. 앞으로 유망하다고 보는 투자 섹터는.

    A. 인공지능과 바이오 산업은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국민 소득 3만달러 이상 국가에서는 주거비, 재료비 등 각종 서비스 비용 인상이 필연적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결국 자동화를 해야 하고 그 역할을 AI와 로봇이 하게 될 것이다. 과거 사람이 수행했던 단순 반복 업무는 로봇과 AI 기반 자동화 시스템이 모두 대체하게 될 것으로 본다. 바이오 산업도 투자하기에 적기라고 판단한다. 바이오 산업의 전반적인 밸류에이션도 과거보다 합리적인 수준까지 내려왔고 지난 10여년 동안 훌륭한 인적 자원이 투입됐기 때문에 앞으로는 좋은 성과를 내는 바이오 기업이 늘어날 것이다.

    Q.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A. 첫 번째는 교육이다. 벤처캐피털은 기술이나 산업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건전한 버블’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정교한 예측 능력이다. VC가 제대로 알고 투자하면 새로운 산업의 마중물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타격을 입는다. 각종 심화 교육을 통해 VC 심사역의 안목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다. 두 번째는 통계 데이터 확립이다. 제도라는 게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사후 단계에서 이를 수정하거나 의견을 반영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체계적인 정책 기능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결국 벤처 투자가 어느 정도로 신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지 눈에 보이는 숫자로 증명이 돼야 한다. 데이터 기반 정책 대응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 과제다. 마지막으로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명칭을 ‘벤처투자협회’로 바꾸고 벤처 투자에 관심이 있거나 지금 활동하고 있는 주체를 모아 다수의 유니콘 기업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상장 VC 최악 상황에도 DSC인베 홀로 흑자
    윤건수 회장은 1988년 LG종합기술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1999년 한국기술투자에서 벤처투자업계에 입문했다. LB인베스트먼트를 거쳐 2012년부터 DSC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를 역임 중이다. DSC인베스트먼트는 2012년 2월 LB인베스트먼트 출신 윤 회장과 하태훈 전무(현 위벤처스 대표)가 각각 17억원과 7억원을 출자해 총 60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됐다. 벤처 투자 위축으로 지난해 국내 14개 상장 VC 대부분이 최악의 적자를 냈으나 DSC인베스트먼트는 유일하게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3호 (2023.04.05~2023.04.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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