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취임 후 지난해 총 3조1227억원
재정준칙 없이 국회, 예타심사 완화
총선용 선심성 예타면제 사업 봇물 우려
"10년, 20년이 돼도 예비타당성조사 (예타) 범위에 들어갈 수 없는 소외지역은 예외 규정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예를 들면 창원의 경우 대구와 부산까지는 고속철이 가고, 창원까지는 옛날 철도다."(김영선 국민의힘 의원(경남 창원시의창구)
지난해 12월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예타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예타는 도로나 공항, 철도 등을 건설할 때 경제 효용성을 따져보는 제도로, 현재는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당시 여야는 2023년 예산안을 놓고 첨예하게 맞섰지만, 지역구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예타 사업 기준금액을 1000억원으로 상향하는 안건은 일사불란하게 잠정 합의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12일 소위를 통과하면서 윤석열 정부 들어 주춤해진 예타 면제 사업이 다시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국회 기재위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윤 대통령 취임 후 총 3조1227억원 규모의 사업에서 예타가 면제됐다. 이는 역대 정권 중 집권 첫해 예타 면제 사업 규모가 가장 적은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첫해 4대강 사업을 비롯한 공약 이행하는 과정에서 13조7590억원 규모의 예타가 면제됐고, 박근혜 정부는 5조1834억원, 문재인 정부는 16조5519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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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취임 첫해 '묻지마 예타 면제' 안된다며 대상 축소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120조원 규모의 재정 투입 사업을 예타 면제로 추진하면서 혈세를 낭비했다며 예타 면제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예타 제도 개편 방안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의 예타면제 사업 규모는 2018년 12조8798억원에서 2019년 35조9750억원으로 뛰었는데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김경수 경남지사가 추진하던 남부내륙철도사업(4조 6562억원)과 평택~오송 복복선화(3조 904억원) 등 지역 사업을 포함시켰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관련 긴급 재난지원금(9조6630억원) 등 정부 재정투입 사업 예타를 면제하면서 총 사업 규모가 30조215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퇴임 직전까지 13조7584억원에 달하는 가덕도신공항 사업 예타면제를 승인하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묻지마 예타 면제'를 없앤다면서 발표한 개편 방안은 예타 면제 요건을 분야별로 구체화해 국가재정법에 명시하는 것이 골자다. 또 사업 규모와 사업비 등의 세부 산출 근거가 있으며 재원 조달·운영계획 및 정책 효과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사업만 예타 면제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당시 정부는 1999년 예타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난 23년간의 경제 규모 확대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사회간접자본(SOC)과 연구개발(R&D) 사업은 예타 금액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에 국비 300억원 이상 투입’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 이상에 국비 500억원 이상 투입’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이번에 기재위 재정소위를 통과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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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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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여야 간 잠정 합의 당시 회의록을 보면, 예타 면제 대상을 구체화한 조항에 대한 의원들의 우려가 잇따랐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경북 김천시)은 "‘도로법 2조 1호에 따른 도로’ 라고 (명시하면) 다른 광역도로나 지방도는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느냐는 의심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고, 재정소위위원장인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예타를 면제했는데, 그것을 엄격하고 더 까다롭게 하는 것인지,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정리를 하자는 것인지 의미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재정준칙 뒷전…지역구 표심 겨냥 '깜깜이 입법'
정부가 예타 면제 요건을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면제 금액 기준만 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혜영 의원은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예타제도 개편방안을 통해 예타 면제를 최소화 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 만큼, 선거를 앞두고 선심 쓰듯 예타를 대규모로 면제하는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지역 재정사업이 무분별하게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재정 건전성을 담보할 ‘재정준칙’ 관련 법안은 여야 간 이견으로 뒷전으로 미루면서 '재정 방파제' 없이 지역구 표심을 겨냥한 '짬짜미 입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 여야는 이미 10조원 이상의 재정 투입이 예상되는 대구·경북 신공항특별법과 광주군 공항 특별법을 각각 관련 상임위에서 나란히 통과시킨 바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은 무조건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지 않고 예산을 집행하고 배정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면서 "정부가 빚을 질 수 있는 한도가 얼마까지인지에 대한 총액 규제 같은 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가 포퓰리즘으로 가면 남미국가와 남유럽 국가 같은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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