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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과학을읽다]무중력의 매직…우주공장 시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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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 '보령', 상업용 우주정거장 투자 눈길

무중력 환경, 첨단 제조기술 연구 유리

세계 각국 우주궤도환경 활용 적극적

우리나라는 미개척, 유인우주기술 등 갈 길 멀어

"왜 미국과 중국 등 우주 강국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우주정거장을 만들었을까?"

최근 국내 제약사 보령의 ‘외도’가 관심을 모았다. 미국 민간 우주 개발 회사 엑시엄스페이스의 상업용 우주정거장 건설에 약 6000만달러(약 786억원)를 투자한 것이다. 물론 미국은 연간 3조7000억원이 넘는 돈을 국제우주정거장(ISS) 유지 관리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중국도 지난해 11월 수조 원을 투입해 독자 우주정거장 톈궁(天宮·Tiangong)을 완성했다. 도대체 우주정거장에 무슨 ‘꿀’을 발라 놓은 것일까? 단순히 우주개발 전진기지가 아니라 미래 경제에서 큰 몫을 차지할 ‘우주 제조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지구상에선 중력 때문에 불가능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바이오·제약, 반도체, 의학, 첨단 제조업을 우주정거장의 미세중력(micro gravity) 상태에선 훨씬 더 쉽고 저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우주 공장’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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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정거장, 왜 필요한가?

지구상 공장·실험실이 중력 때문에 갖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컨대 반도체의 경우 지상에선 웨이퍼를 생산할 때 최대 크기가 중력 때문에 300㎜로 제한된다. 하지만 우주정거장에선 500㎜로 키울 수 있다. 웨이퍼 크기가 클수록 반도체 수율이 높아 수익을 몇 배 더 올릴 수 있다. 또 특수반도체의 제조도 쉬워진다. 지상에선 밀도 차가 커 합성하기 힘든 물질도 우주에선 완벽하게 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알루미늄과 납은 이론적으로 섞을 수 있지만 지구상에선 비중 차가 커서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주로 나가면 분자 단위로 완벽히 혼합된다. 이 같은 특수 물질을 이용한 특수 성능의 반도체 제조가 가능해진다.

바이오·신약 개발 분야에도 마찬가지다. 지구상에선 중력 때문에 만들기 어려운 ‘결정’이 훨씬 잘 만들어진다. 결정은 특정 물질의 순수한 덩어리를 말하는데, 무중력 상태에선 더 빨리 성장한다. 당뇨 치료를 위한 인슐린 생산 공장이 우주에 들어서면 생산성이 몇 배로 뛴다. 줄기세포 배양도 빨라져 연구가 수월해진다. 인공장기 배양도 우주정거장 연구의 주요 항목이다. 지상에서도 할 수는 있지만 물컹물컹한 인체 조직의 특성상 지지대가 필요하다. 닿는 부분이 자라지 않고 무게에 따라 처지면서 눌리는 부분이 생기는 등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우주정거장의 미세중력 상태에선 인공장기 자체가 둥둥 떠 있어 지지대가 필요 없고 골고루 성장한다. 똑같은 원리로 단백질을 재료로 만든 바이오잉크로 3D 프린팅을 해 연골·방광 같은 인공장기를 생산해내는 것도 한결 손쉽다. 화학 반응·세포 배양도 중력으로 인한 한계가 사라져 완벽하게 일어나는 등 신약 연구개발(R&D)에 이상적인 환경이다.

실제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9년 바이오패브리케이션 퍼실리티(BioFabrication Facility)를 ISS에 보내 장기 제작 실험을 진행했고, 러시아도 2020년 연골 조직 제작 실험을 했다. 민간에선 와인 제조, 클린미트(clean meat) 제조, 커피 제조 등의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중국도 톈궁 우주정거장에 20개 이상의 소형 실험실을 설치해 10년간 1000건 이상의 과학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원심 분리기, 영하 80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저온 체임버 및 고온 가열기, 다중 레이저 및 광학 원자시계 등 온갖 첨단 과학 장비를 설치했다. 특히 중국은 자국 내 R&D에서 한계를 겪고 있는 첨단 반도체 개발에 우주정거장을 적극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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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모든 물질 자급자족"

심우주 개척 등 우주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의학 연구에도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NASA는 최대 3년이 걸리는 화성 탐사에 대비해 인간이 장기간 우주에 체류할 때 무중력·방사선·우주선(線) 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ISS에서 집중 연구하고 있다. 우주 장기 체류 시 암 발생률이 30% 이상 높아지고 시력 저하, 골밀도 상실, 심장 질환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견돼 방지·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모든 것을 뚫고 지나가는 아주 미세한 우주 입자들이 치명적이다. 세포 내 DNA 사실을 끊어 버려 돌연변이 또는 암을 유발한다. 아직 뚜렷한 방호책이나 치료약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다. NASA는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주에서 필요한 모든 물자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올해부터 10년간 3D 금속 프린팅에서 원자 수준(nucleation)까지 모든 레벨에서의 자기 조립(또는 3D 프린팅) 현상 및 관련 물성 측정 연구를 진행 중이다.

동식물·생명 과학 연구도 주요 분야다. 우주정거장에서 쥐·양서류·어류를 키워 혈액·뼈·단백질의 변화나 행태 분석 등을 통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중력 감지 메커니즘을 갖춘 식물을 미세 중력 환경에서 재배하면서 생산성 확대·바이오 연료화 등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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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공장이 뜬다

이 같은 우주공간에서의 장점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상업용 우주정거장 건설은 물론 소규모 무인 우주 공장 프로젝트도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자동 설비를 갖춘 소형 우주선을 발사해 지구 저궤도 무중력 상태에서 특정 제조·연구 실험을 실시한 후 돌아와 결과물을 수확하는 ‘우주선+공장’ 개념이다. 세계적으로도 우주정거장 등 우주공간 활용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미국은 당초 2024년까지만 운영하려던 ISS를 2030년까지 연장 운영하기로 했고, 추후 이를 대체할 상업용 우주정거장 구축을 엑시엄스페이스와 블루오리진 등 민간회사들에 맡긴 상태다. 달 궤도를 오가는 중간 기착지로 루나게이트웨이도 발사한다. 중국에 이어 일본의 한 민간회사도 2030년대 3000억~5000억엔의 구축 비용을 들여 자체 우주정거장 발사를 계획 중이다.

사실 이미 우주공간은 첨단 제품 R&D 전진 기지다. 암·알츠하이머·근이영양증 치료제, 섬유유연제 등이 ISS에서 개발됐다. 시판도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한 우주 인프라 업체는 지난해 7월 우주 생산 크리스털 2g을 판매했다. ㎏당 200만달러의 가치를 가진 고가의 광학 결정이다. 통신용 광섬유·고출력 레이저 송신기 등에 폭넓게 활용되는 이미지 센서에 쓰인다. 2040년쯤엔 우주정거장을 포함한 우주 경제 활동 규모가 1조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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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탑승한 우주인 이소연씨. 자료 사진.


우리나라는 아직 이 같은 미세중력 등 우주궤도환경 활용 분야가 미개척지대로 남아 있다. 우주식품 연구를 진행해 2008년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ISS에 탑승했을 때 섭취하고 러시아 유인화성탐사 모의시험(Mars 500)에서 활용되는 등 국제적 인증을 받은 게 유일무이한 실적이다. 다만 올해부터 시행된 4차 우주개발진흥계획에서 2045년까지 유인우주기술 개발 및 우주과학·우주에서의 기초과학 연구 확대를 목표로 잡아놨을 뿐이다.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위성우주탐사체계설계부 책임연구원은 "우주 강국들이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우주정거장을 만드는지 봐야 한다"며 "관광도 하루 이틀이고 우주개발도 돈이 되어야 하는데 우주정거장이 그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NASA 관계자들을 만나 보면 자신들은 물리학·기계공학·전자공학 쪽은 우주에서 연구할 것들을 다 했지만 의생물학 분야와 우주인 장기 체류 연구는 아직 할 게 많다고 한다"면서 "반도체·전자 다음의 차세대 먹거리는 바이오 분야인데, 우리나라는 바이오·의학 분야에서 최고의 인적·물적 인프라를 갖고 있는 만큼 우주의학 연구에서도 큰 장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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